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

기나긴 이야기의 끝은 언제나 허무하다. 두 해 걸러 나의 여름 휴가를 책임져 주었던 긴 이야기의 끝은 까닭 없는 황량함을 마음에 선사한다. 사람마다 시간을 인식하는 방법에는 다양한 차이가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책 또한 그 방법 가운데 하나다. 가령『H.P. & the order of Phoenix』가 출간되었을 때 난 나이에 어울리는 사랑에 힘겨워 했고 긴 여름 동안 외출 한번 하지 않은 채 빗소리가 좋다더라 따위의 소리를 늘어 놓으며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또 『H.P. & the half blood prince 』가 나왔을 때에는 출간 이틀 만에 돌기 시작한 해적판 파일을 스크린에 띄어 놓고 홍차를 벗삼아 긴 유배 생활을 견뎌내야 했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인 『H.P. & the deathly hallows』 함께한 이 여름의 난 학생으로 보내는 마지막 여름이고, 어느 때보다 혼자라는 상태를 절박하게 인식하는 상황이다. 물론 먼 훗날 아이를 낳고 이 이야기를 다시 읽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할게 될까 따위의 상상을 하는 순간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생각해 보면『해리 포터』시리즈는 극단적인 평가를 모두 받고 있는 것 같다. 톨킨에 버금갈 만한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는 일면을 강조하는 긍정론과 유치한 구성의 아동 소설이라는 부정론. 그리고 여기에 이 시리즈를 읽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우월적 관망론까지 뒤섞여 있다. 솔직하게 『H.P. & the philosopher’s stone』을 처음 접했던 1998년의 나는 해그리드의 분절된 어투를 해석하며 이를 갈아 마지 않았다. 당시의 나로서는 관대한 태도라든지, 이야기 전체의 부분으로서의 낱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결여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000년과 2001년 사이에 불어 닥친 해리포터의 열풍을 바라보며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관망론을 펼쳤던 것이리라.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시리즈의 맨 마지막 이야기인 『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는 모든 전작을 뛰어넘는 섬세함을 종막 100페이지 전까지 보여주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심리가 섬세하고 감정의 고조를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물론 작가의 횡포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우연에 호소하는 비인과적 사건 전개는 여전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 100페이지는 힘겹게 읽었던 650여 페이지에 대한 배반이나 다름 없다. 최종 전개에 있어 작가의 횡포는 지나칠 정도이며, 급하게 사건을 마무리 하느라고 갈등을 서투르게 봉합했다. 출간에 맞추니라고 급하게 서두른 티가 난다고 할까? 하지만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재미가 빠지는 것은 아니다. 기나긴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 대단원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다른 단점을 보완해주고도 남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곱 권의 책을 읽으며 모아온 정보를 토대로 인물과 사건을 재구성하며 음미해보는 재미만큼 강력한 여흥을 참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고 인물들의 숨기고 싶었던 인물들의 진의가 들어나며 과거 그들이 내뱉었던 말 속에 담긴 행간이 읽히는 재미가 재미있지 않다면 무엇이 재미있을까?
 
모두의 예상대로 4명의 메인 캐릭터 가운데 3명의 죽음으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전편에서 언급되었던 7번째 Horcrux가 해리라는 추측은 현실로 들어나지만 현실이 예상했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결국 이 이야기는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잔혹함을 선택한 한 남자와 사랑을 지키기 위해 부당함을 감수한 또 한 남자. 후회 속에 고립되고 지친 한 노인의 운명이 한 소년의 운명과 결합되어 벌어지는 비극인 셈이다. 그들의 죽음이 당위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마지막 역할로써 남겨진 것이 죽음 밖에 없기에 이들의 이야기는 해피 엔딩일 수 밖에 없다.

P.S.
롤링의 말대로 이 이야기는 이미 10년 전에 완성된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이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시간은 이들 네 명의 캐릭터에게 생동감을 줄 수 있는 장치와 보조 캐릭터를 만들어 낼 시간이었을 뿐이다.

4 thoughts on “Harry Potter and the deathly hallows”

  1. 아, 해리포터 1,2권만 책으로 읽고 나머지는 영화로 대신해버린 작품이네요. 어서 읽어야할 텐데…이번에 또 영화가 나오는 바람에 영화부터 볼 것 같아요;; 그렇다고 영화를 굉장히 잘 만든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영화로 눈이 갑니다. 더 접하기 쉽기 때문이어서일까요?

    그러고보니 예전에 어느 인터넷 서점에서 해리포터 마지막 권 출간 전에 퀴즈 이벤트를 했는데, 누가 죽는지 맞춰보는 것이었어요. 그 때 많은 분들이 해리를 죽이던데, 전 해리를 살리고 대신 론을 죽였죠. 해리의 천적과 함께…아직 책을 안 읽어서(순서대로 읽으려면 아직 멀었네요) 누가 죽는지 모르겠지만, 죽지 말았으면 하는 몇몇 사람은 꼭 살았으면 좋겠네요. 아하하, 아동용 책을 읽고 이런 마음을 품다니 2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해지네요^^;

    1. 아무래도 이 소설의 기회 비용이 예상 외로 높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요. 이 시리즈보다 더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이야기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해리 포터’와 동시대에 출간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을 법한 책들이 어깨 너머로 사라지는 장면을 꽤나 자주 목격했거든요.

      친절하게 영화로까지 만들어주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면서까지 읽을만한 이야기라고 말하기에는 양심이 꺼려지네요. 그래서 좀처럼 손이 닿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제가 해리 포터를 읽게 된 것은 ‘한번 읽기 시작한 소설을 끝까지 읽는다’라는 어린 시절부터 지켜온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한 권 한 권 간행될 때마다 제 삶의 이정표마냥 특정 시기의 추억이 매치되기도 하구요. 또 ‘세기의 이야기’라는 마케팅 조어를 보고 있자니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아예 눈을 감아버릴 수가 없더라구요. 퀼트처럼 문화적 취향을 기어 만든 소비 지향적 소설이라는 평론이 있긴 하지만 마음과 기억을 가감 없이 상대에게 전달하는 점에서 펜시브 같은 도구에 끌리기도 했던 것 같아요.

      덧붙이자면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그래도 영화보다는 소설이 약간 나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영화의 경우 러닝 타임의 제약으로 말미암아 사건 전개와 인물의 극적 역할. 동기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게 되더라구요. 시나리오 에디터들의 고생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 자체가 영화라는 매체에 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더라구요. 물론 맨 마지막 권은 영화를 염두에 두고 썼다는 사실이 소설에서 느껴질 정도로 속도감과 장면성을 중요시하는 서술용법이 사용되기는 했지만요.

      제가 언급한 메인 케릭터에는 론과 헤르미온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7권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캐릭터는 해리. 톰. 알버스. 세베루스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론과 헤르미온느의 극적 비중과 역할은 권을 거듭해 질수록 낮아져서 종국에는 이들의 운명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문장 서너줄로 처리할 수 있는 비중으로 격하되었거든요. 해리의 장식품 정도랄까요. 어찌 되었건 제가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그 퀴즈 이벤트에 정답을 맞춘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는 점 하나뿐이네요.

      P.S.
      그런데 여태 안부를 물은 적이 없네요. 게릴라성 폭우가 반복되는 여름은 잘 보내고 계신가요. 그리고 저 역시 20대 후반이지만 맨 마지막 권에서 F.W.의 죽음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답니다. 그런 기대감과 아쉬움은 진갑을 넘어서도 계속되지 않을까요?

  2. 닉네임이 바뀌셨군요!

    사실 폭우 때문에 별로 즐겁지 못한 요즘입니다. 다행히 재난은 없지만, 제가 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어렸을 때는 무척 좋아해서 우산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를 맞고 다니는 청승을 부리더니, 산성비라는 경고와 함께 비를 점차 잊어가더니 어느새 비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저 나이 들어서 귀찮아졌기 때문인지도…정확히는 비가 싫다기보다 비오는 날 외출하기가 싫어진다고 해야겠네요.

    찬익 님은 비를 좋아하시나요? 시도때도없이 쏟아지긴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만족스러운 여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1. 언제부터인가 ‘맨인블랙’에 등장했던 바퀴벌레 외계인이 뒤집어 쓴 껍질처럼 닉네임이란 것이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게 느껴지더라구요, 본명을 사용한들 심각하게 우려할만큼 사생활이 침해될 것 같지도 않고요.

      전 지금 시골집에 내려와 있는 상황인데 이곳은 사위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지독한 폭우가 내리고 있네요. 궁벽한 시골인데다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진 곳이라 우산으로 폭우를 피해보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그냥 몸으로 맞아주고 있답니다. 그렇게 비를 맞으며 정원 의자에 앉아 구름이 산사면을 타고 오르는 모습이라든지 ,기차 선로가 비방울에 수채화처럼 이그려지는 모양이라든지 혹은 그냥 비오는 것 자체를 바라보기도 하구요.

      이렇게 쓰고 나니 비 맞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실제로는 비오는 날 외출하는 것은 그것이 의무 상황일 때를 제외하면 저 역시 썩 내켜하지 않는답니다. 눈오는 날이 더 이상 기분 좋은 날이 아닌 것처럼 비 오는 날 역시 생활인의 견지에서 보자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날이 아니겠어요.

      음. 기억을 거슬러 탐험해 보니 비에 관한 감정도 항상 똑같았던 것은 아닌 모양이네요. 하지만 올해처럼 내리는 비는 환영 받기에는 너무 밉살맞은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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