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erious Flame of Queen Loana

어제서야 에코의 마지막 소설인 『mysterious flame of queen Loana』를 다 읽었다. 지난여름에 사들인 책이었으니 거의 1년이란 시간이 걸린 셈이다. 사실 1년이란 시간이라면 책을 읽는 정도가 아니라 통째로 번역해도 충분한 시간이다. 하지만 이 소설 앞에서 시간을 운운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2004년에 출간된 이 책이 아직까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리고 출간 계획은 잡혔지만 이래저래 계속 늦춰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소설이 지닌 난해함을 알 수 있다.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계륵 같은 소설은 없다. 역자 입장에서는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20세기 전반기의 서브 컬쳐를 설명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고, 출판사 입장에서는 기존의 열렬한 독자층에게마저 외면 받을 소설을 간행해야만 하는 부담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 책을 출간하며 인터뷰에서 밝힌 바 그대로 이 책은 에코의 마지막 소설이 될 수 밖에 없다. 삶을 정리하며 젊은 시절 맹세한 일들을 하나씩 수행하는 사람처럼 이번 소설에서 에코는 그다운 필치로 유년 시절과 첫사랑을 그려낸다. 『장미의 이름』, 『푸코의 추』, 『전날의 섬』, 『바우돌리노』를 통해 보여준 그의 전형적인 소설과 다르게 이 소설은 순수 문학에 가깝다. 에코 특유의 이리저리 비꼬고 방대한 기호학적 지식이 여기저기 삽입되어 있지만 이 소설은 본질적으로 사랑과 한 남자의 유년 시절에 대한 소고이다. 마치 에코가 코엘료풍의 소설을 썼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에코의 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그의 다른 소설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수많은 기호학적 농담 사이에 배치된 숨겨진 감정선의 해답을 이 소설에서 얻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짐짓 소설에서 언급했던 에코의 경험들이 이번에는 보다 솔직한 태도로 인물에 직접 투영된다. 더 이상 써야할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다는 태도로 말이다.

이 소설은 어떤 면에서는 <시네마 천국>가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밀라노의 고서적상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얌보는 토토와 비슷한 추억을 지니고 있음과 동시에 『푸코의 추』의 벨보의 분신이다. 그의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기 이탈리아는 격동의 시기였고 한 가족을 둘러싼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놀랄 만큼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mysterious flame of queen Loana』의 백미는 두 부분인데 하나는 ‘그라놀라’라는 저항 세력의 운동원과 주인공이 나누었던 우정과 이들이 함께 겪은 Gorge라는 험준한 언덕에서의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시라노>를 배경 삼아 묘사되는 릴라에 대한 주인공의 관념적 풋사랑이다. 자동차 사고로 기억을 잃게 될 때까지 평생을 그녀를 찾아 헤맸다는 묘사와 최후의 순간에야 떠오른 첫사랑의 얼굴은 일견 유치해 보이지만 거의 모든 사내들이 꿈꾸는 부정할 수 없는 로망이다.

문득 몇 달 전 강의실에서 스물 남짓한 사내아이가 『장미의 이름』을 꺼내며 거만한 표정으로 친구에게 ‘이제부터 문화생활을 좀 하기로 했어’라고 뱉던 말이 떠오른다. 『mysterious flame of queen Loana』의 운명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야기 속에서 소설이 줄 수 있는 재미를 찾는 대신 난해하다고 평가받는 에코의 소설을 읽으며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위인인 척’하기 위해 가방 속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또 다른 장식품이 되지 않을까 저어한다.

P.S.
이렇게 써놓고 나니 몇 줄 앞에 언급한 ‘~척’에서 나 또한 자유롭지는 못할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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