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
희극 역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가운데 하나를 뽑으라면 열에 아홉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린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난 이 걸출한 희극을 연극 무대에서 본 적이 한번도 없다. 너무 널리 알려진 작품이기에 되려 만나기 힘들다고나 할까? 아니면 이미 너무나 다양한 변주를 접해왔기에 여간 특이한 해석이 아니라면 성에 차지 않기 때문일까?

어찌되었건 난 올리비아 핫세 보다는 루즈 바어만의 <Romeo + Juliet> 세대에 속한다. <바스켓볼 다이어리>의 이미지를 더욱 섬세하게 스크린에 투사한 레오에 열광했던 누이들을 바라보았고, 결코 미인은 아님에도 눈길을 끄는 클레어 데인즈를 극장에서 목격한 세대에 속하기 때문이다. 사실 라디오헤드의 ‘exit music’과 카디건스의 ‘lovefool’이 들어 있는 O.S.T.를 들으며 입가에 걸렸던 만족감이 십 년이란 시간에도 불구하고 선하다. 그런데 발레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이 글이 어째서 이런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일까? 아직 베로나에서 만난 줄리엣은 시작도 못했는데 말이다.

Romeo and Juliet Op.64 composed by Sergey Prokofiev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스코어를 처음 접한 것은 시기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밤이었다. 그 시절에나 지금에나 난 좀처럼 라디오를 듣지 않는데 그 날에는 까닭 모르게 친구의 워크맨을 빼앗아 들었고 야간자율학습 시간 내내 이름 모를 클래식 프로그램에서 나온 연주에 심취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로얄 오페라 하우스 혹은 코벤트가든으로 불리는 장소에서의 실황 연주라는 말에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기행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런던을 떠올리던 내 표정은 지금도 선하다. 어두운 창문에 반사되는 그 표정을 발견하는 일은 그 후로도 수 없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프로코피예프의 곡은 3막 전반부까지는 경쾌하기 그지없다. 언제인가 내 친구는 이런 분위기를 ‘steppe-like’라고 설명한 적이 있는데 아직도 난 이 말 이상으로 그 느낌을 설명하는 적절한 단어를 발견하지 못했다.-물론 지리학에서의 의미는 다르다- 빠르고 적당히 경쾌하며 못내 사랑스러운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 가운데에서도 난 3막의 ‘Romeo bids Juliet farewell’를 가장 좋아한다. 이 시점을 경계로 긴장감이 점차 고조되면서 비극이 최고조로 이르기 때문이다. 마치 톨스토이를 읽다가 갑자기 도스토예프스키로 넘어가는 분위기랄까? 하지만 3막 후반부의 ‘Dance of the girl with lillies’ 분위기는 정말 독특하다. 어찌 보면 극적 긴장의 최고조이고, 다르게 보면 통일성을 깨는 불필요한 스코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발레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확연하게 달라지게 된다. 평범한 비극으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비극을 뛰어넘는 가슴을 찌르는 절규로 남느냐의 경계선이기 때문이다.

BRB’s R&J choreographed by Kenneth MacMillan vs Universal Ballet’s R&J choreographed by Oleg Vinogradov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아직 리뷰를 쓸 정도로 다양한 발레를 보지는 못했다. choreographer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각자의 특징을 구분하며 발레를 즐기기에는 내 몰입의 정도는 미천하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발레 안무의 스타일을 구분하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한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난 가을에는 Birmingham Royal Ballet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볼 기회가 있었고 지난주에는 Kirov Ballet로 구분되는 유니버셜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볼 기회가 있었다. 사실 확연히 다른 스타일의 안무를 볼 기회는 많지 않다. 게다가 설령 본다하더라도 그 차이를 구분하는 작업은 녹녹하지 않다. 더욱이 나처럼 발레의 문외한이라면 말이다.

키로프 발레(혹은 마린스키 발레)는 상페테르부르크에서 비롯되었다. 아직 러시아가 차르의 지배하에 있을 무렵에는 임페리얼 발레로 불렸던 이 발레단은 이후 수많은 클래식 발레를 새롭게 안무했고, 결국 스탈린 시기에는 클래식 발레와 구분되는 모던 러시안 발레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이 스타일은 <스타르타쿠스>에서 절정을 보인다. 이후 키로프의 명성은 볼쇼이 밀려 점차 희미해지지만 여전히 키로프 발레가 배출한 안무가들은 활동은 전설에 가깝다. 반면 로얄 발레의 경우 그 성격은 모호하다. 과거의 로얄 발레의 코리어그래퍼들이 연출한 발레는 확연하게 키로프 혹은 볼쇼이 스타일과 차이를 보이지만 오늘날에는 볼쇼이보다 더 볼쇼이적인 발레를 선보이는 것으로 정평이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이 라는 발레로 주제를 한정시키면 로얄 발레의 맥밀런의 스타일이 조금 더 낫다. 그는 키로프 발레 스타일의 완성된 동작을 광범위하게 사용하면서도 극의 서사 구조 안에서 죽음이 가져다주는 불쾌한 증거와 운명의 부조리함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반면 비노그라도프는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너무 클래식하기 때문이다. 맥밀런의 안무가 서사극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무언의 몸짓이 만들어내는 절규를 관객에서 전달했다면 비노그라도프의 안무는 흐름은 아름답지만 평범하다. 물론 이런 비판에는 발레리노의 잦은 실수가 한몫 거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그의 안무에서 러시안 발레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안무 동작을 발견하기란 되려 쉽지 않았다. 설령 pas de deux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전개되었다 하더라도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고전 희극을 해석하는 능력과 이를 안무로 형상화하는 능력은 맥밀런이 한 수 위다.

하지만 비노그라도프가 키로프 발레가 변신하는 과정의 부산물이라면 이런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그의 발레는 완성작이 아니라 변화를 모색하는 진행형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과거와 변화가 함께 공존하는 기인한 발레로 연출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최근 유니버설 발레단의 외도와 연습 부족으로 클래식 발레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기에 너무나 평범한 인상의 발레로 전락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의 문제가 아니다. 기나긴 그의 삶에 대한 헌사로 받쳐진 졸렬한 발레 한편이 그의 세련되고도 우아한 태도와 도대체 어울리지 않은 점만 빼면 말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