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ifornication

드라마를 보고 주인공에게 정서적 일치감을 느끼는 일은 이미 오래전에 졸업한 줄 알았는데 기실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그 허무하면서도 상황을 조금씩 씹어 삼키는 듯한 표정 앞에서 남 이야기인 마냥 초연하기란 쉽지 않다. 점잖은 에세이와 소설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불량한 대화로 점철된 드라마지만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재미있게 다가서는 것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한 남자의 삶이 내 삶의 축소판처럼 느껴지는 순간들 때문이리라.


책의 행간을 읽는 순간 독자는 작가와 머릿속으로 이어져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의 고뇌와 직접적인 ‘접촉’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첫째로 고뇌의 현실성이 떨어지고, 둘째로 감정의 파동이 극적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속되는 좌절 앞에서 허탈한 표정을 짓기는 쉬워도 그 허탈함 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고의 흐름과 관조의 결과, 그리고 변화하는 태도까지 보여주는 경우란 꽤 드물다.


십 대 시절 내 문학 선생님은 ‘왜 사냐면 그냥 웃지요.’에 해당하는 정서가 지니는 강력한 힘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즐겼다. 그렇기에 스물넷 겨울 국가에 적을 둔 세 명의 지기들은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대사에 그렇게 울적했으리라. 시간은 흘러도 상황은 변해도 문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 남자의 표정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사람이 단지 시청자뿐이라는 사실이 그지없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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