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bye Cross!

21살 봄부터 지난주까지 온갖 풍상을 함께 겪어온 크로스 볼펜을 버로워즈에게 앗겼다. 앗긴 충격이 어느 정도냐면 ‘너복설과’에 해당하여 적당한 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다. 크고 작은 시험을 함께 치렀고, 진심을 담은 수많은 말들을 함께 써내려갔으며, 수많은 커피집과 여행지에서 벗이 되어주었던 친구는 이제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기차에 앉아 혹은 비행기에서, 차창 너머를 보며 어깨너머로 흘러가버린 사건과 사람들을 묘사하던 녀석의 마지막이 이렇게 허무할 줄은 몰랐다. 누구보다 내 속마음을 잘 알던 녀석이었는데, 쓰기는 했지만 보내지 못한 채 사그라진 그 불꽃을 기억하는 유일한 녀석이었는데.


만약 알았다면 그 흔한 각인 한 번 해주지 못하고, 쓰는 말이라고는 고작 ‘이런 까닭으로’ 밖에 쓰지 않는 펜들 사이에 너를 무심히 놔두는 일은 없었을 텐데. 사람들은 고작 볼펜 하나에 치졸할 정도로 과민한 반응을 보인다고 나를 비웃겠지만 사랑하는 여인이 떠난 들 이렇게 헛헛하지는 않을 것이다. 너에게 새로운 리필심을 선물 할 때 짓던 표정 없는 그 미소를 본 사람은 나 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명예로운 은퇴를 허락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난 네가 지닌 행운을 포기할 여유가 되지 않았단다. 부디 나보다 더 좋은 주인을 만나 새로운 이름을 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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