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딱 한 가지 뿐이다. 이탈리아를 여행하기 전에 읽어야 할 책을 여행을 끝낸 다음에야 읽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이 책이 2년만 빨리 번역되었어도 내 로마 여행이 한층 즐거웠을 것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저 시스티나의 천장화를 보면서 30분 동안 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두 시간쯤 책장에 코를 박는 편이 작품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하는 첩경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실 대부분의 회화 작품이 그럴 테지만 천장화는 유독 다른 매체로 인한 간접 경험의 감동이 크게 떨어지는 형태의 예술이다. 대성당의 천장화를 감상하는 동안 원형의 궁륭을 따라 하늘로 날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은 관찰자의 신경증 때문이 아닌 의도된 효과다. 하지만, 시스티나의 천장화는 특별한 예외에 속한다.  좁은 공간을 차지한 수많은 관람객의 틈바구니에서 어떤 의미 있는 감상이 이루어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성가로 공명 되어야 할 예배당 내부는 아름다운 음악 대신 바벨탑처럼 수많은 언어가 섞여 내는 소음으로 어지럽다. 뭐 이런 환경에서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어서 이 머리아픈 예배당을 벗어나 맑은 공기를 쐬고 싶다는 희망사항일 테니 감상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만약 내가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가톨릭 세계의 권력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관광객의 처지에서 보자면 그림의 떡이 바로 이 천장화가 아닐까?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이런 불평등한 세계에서 해방될 수 있다. 굳이 그 세계의 권력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책을 통해 숨겨진 이야기에 접근할 수 있다. 미세하게나마 기울어진데다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는 예배당의 비밀과 천장화의 모델들에게서 받는 인상. 르네상스 시기 후원자와 예술가의 관계. <닌자거북이>에서는 다정한 동료겠지만 실제로는 맞수였던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관계를 되집어 가는 것은 여행이 줄 수 없는 매력이다. 로마를 여행하기 전 여행안내서보다 먼저 챙겨야 할 책.

P.S.

이 책이 재미난 진짜 이유는 책상에서 쓰인 책이 아니라 현장에서 발로 쓰인 책이기 때문이다. 상상력과 문헌 정보에 의존해서 쓰인 글과 실제로 경험한 공간을 토대로 쓰인 글은 독특한 시점 차라는 것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 책의 경우 그 경험이 놀라우리만큼 섬세하다. 책을 읽는 동안 기억 속에 흐릿하게 남아 있는 공간을 짜맞추어 환영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 로마의 르네상스를 바라보는 일은 놀라운 경험이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작품과 예술가. 역사와 기록을 짜임새 있게 결합시킨 이런 글은 흔하지 않다. 미켈란젤로와 시스티나 예배당에 대한 책으로서는 전설에 속할 것이 분명한 책이다. 아울러 예술사가들이 본받아야 할 귀감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기도 하다.

2 thoughts on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1. 하이얌님 리뷰를 읽고 나니까 정말 이책이 너무 읽고 싶어졌습니다 😀
    저는 거의 책 읽는 시간이 출퇴근 시간이다 보니까 다른 분들은 단순에 읽어 버리시는
    신조협려도 느긋느긋하게 읽고 있네요 ^-^;
    신조협려 다 보면 이책을 구입해야 겠습니다.
    좋은 리뷰 고마워요 ㅋ

    1. 바사리가 쓴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삶을 다룬 전기의 번역본은 정본이 절판되는 바람에 전 편집본만 읽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이 그 편집본보다는 휠씬 재미나더라구요.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그리고 로마에서의 활동을 다룬 책가운데 가장 나은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전체적인 삶을 다룬 개별 전기는 휠씬 나은 것이 따로 있습니다만 미켈란젤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어느 소설보다는 휠씬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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