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잡상

때때로 늦은 밤 향이 진한 커피를 마시며 비틀즈를 들으며 책을 읽고 싶은 밤이 있다. 또렷한 눈망울로 창밖을 바라보며
소리없이 쌓이는 눈을 구경하고 싶은 밤. 다음날 같은 것은 상관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보내고 싶은 저녁. 꼭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할 누군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필요한 것이 있다면 정갈하면서도 담백한 문체로 쓰인 70년대 수필이나 대가들의
짧은 연애 소설. 너무 어둡지 않은 조명과 따스한 담요 정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기억을 거꾸로 따라가다 보면 아직 턱수염이 나지 않았던
열 다섯 무렵에는 이런 밤 비틀즈 대신 스팅을 들었고 좁은 문과 달과 6펜스를 즐겨 읽었던 것 같다. 십대 후반에는 아이작 스턴의
바이올린 콘체르토와 이름 모를 연주자의 콘트라베이스 연주를 들으며 츠바이크의 단편들을 읽어 나갔고, 스물 초반에는 별 의미 없는
메세지를 보내고는 밤새 답신을 기다리며 무심한 척 핸드폰과 창문을 바라보며 멍하게 보냈던 때도 있었다. 스무 살 넘은 사내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라고 애써 믿어버렸기에 이제는 별다른 애잔함조차 남지 않은 나의 사랑.

그때는 너무 괴로워서
어서 잊을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던 기억들도 시간 속에 흩어지고 바래 더는 조각을 이어 맞출 수가 없다. 나에게도 사랑에 들떠
있는 청년 시대가 있었던 것을. 안부 인사를 묻는 점잖은 편지인양 써내려갔지만 행간에는 간절한 소망과 들뜬 흥분을 담고 있었던
서간들로 채워졌던 시기가,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건강한 친구들과 봄바람처럼 기분 좋게 살랑거리는 맑고 뽀얀 얼굴의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때로는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덧없는 한 조각 감정의 먼지에 불과하지만 아주 가끔은 나에게도 그런 과거가
있었노라고 소리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바쁜 세상에 어느 누구도 그런 외침에 귀 기울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마음속에 품은 단호한 결심 때문에 얼굴마저 서늘해진 지인들과 지친 일상에 표정마저 헐거워진 사람들 틈에서 나까지
메마르고 건조해졌다. 그리하여 더 이상 산들바람처럼 경쾌한 문장을 쓸 수도,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애정을 듬뿍 담아 안부 인사를
건넬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이런 것이야말로 진짜 삶이고 쓰고 싶지 않지만 쓰지 않을 수 없는 늦은 밤의 지껄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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