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

『연금술사』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가 스테디셀러로 군림하기 시작한 이래 그의 작품을 비평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 되었다. 세계 곳곳에 명망을 날리는 작가로서 이런 소설을 출판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느냐는 의문이 목울대까지 넘실거리지만 이런 원색적인 비난만큼은 자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읽는한, 혹은 누군가의 생일 선물로 코엘료의 책을 선물하는 한 말이다.

게다가 아직도 그의 소설은 아찔한 농짓거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일부 지인들의 견해에 따르자면 기호를 탐색하는데 있어 꽤 유용한 접근 방법이다. 『연금술사』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로 시작하는 대화는 정이현이나 안애금의 소설로 트는 말문만큼이나 쉽다고 한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자면 코엘료는 우호적이면서도 심각하지 않은 합리적인 접근 경로로써 사용될 만 하다.(very hideous bias!)

사용자 삽입 이미지하지만, 아주 가끔 코엘료의 소설을 선물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면 난 뜨악한 표정을 감출 수 없다. 언제인가 조엘 오스틴의 강연회를 시청하고 계신 아버지에게 발작적으로 ‘아버지 어떻게 저런 사람 강연을 보실 수 있어요.’라고 소리쳤던 그 표정을 말이다. 물론 그의 소설이 전부 형편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재능보다도 세련된 광고문구로 치장된 포장지 속에 담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명상적이고 아름다운 문학이란 이미지를 파는 데 더 능수능란하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려워 보인다.

사실 『11분』에 대한 평은 극도로 나쁠 수밖에 없다. 브라질 출신의 어느 창녀의 자전적 이야기를 코엘료의 펜을 빌려 그려낸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창녀의 삶은 사실 예상외로 무미건조하다. 사실 소설의 소재가 되기에는 너무나 평범하고 범용해서 그녀의 삶에서 무언가 특별한 빛을 발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무도한 점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서두에서 코엘료 자신은 성과 창녀에 관련된 이야기를 쓰는 일이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쓸 수밖에 없었다는 말로 그에 대한 비난을 원천봉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문장은 마치 ‘네가 지금 불쾌한 이유는 네가 이런 이야기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보수적이기 때문이야. 빅토리아 시대에 leg란 말만으로 흠칫 너스레를 떨던 위선자이기 때문이지. 너의 불쾌함은 내 작품이 아닌 너 스스로의 이중성에 있어. 그러니 내 작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도록 해’하고 속삭이는 듯 하다.

뭐 어쨌든 불쾌감은 잠시 접어두자. 창녀, 만족, 오르가즘. 행복. 삶의 목적. 성교로 축약되는 이 소설은 어떤 주제 의식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데에도 실패했고, 등장인물의 캐릭터라이징과 독특한 배경을 구상화하는데에도 실패했다. 소재가 떨어져 버린 어느 봉이 김선달에게 나타난 브라질 출신의 창녀 이야기가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문화와 출판이라는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독자 앞에까지 흘러들었다는 표현 이외에 더 이상 이 소설에 대하여 쓸 말은 남아 있지 않다.

[#M_P.S.|less..|

어린 시절 신분에 관계없이 일생의 하루는 신전에서 그녀를 원하는 누구에게든 동전 한 닢에 팔려야만 했던 관습을 지닌 고대 오리엔트의 신전 매음문화를 읽었을 때, 난 그 관습이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역사가 지속하는 동안 유지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악마적인 관습이 지닌 가능성의 매력을 간파하는 순간 프네우마를 되찾고자 한참동안 생각을 가다듬어야 했다. 최소한 부족을 넘어서서 계급의 분화가 일어난 사회에 있어 무지의 베일이 존재한다면 거칠고, 폭압적이며, 한편으로는 야만적이며 남성중심적이기는 하지만 성에 관하여 이보다 더 롤스적 정의에 알맞은 관습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소설의 주인공을 입을 빌려 꽤나 교묘한 언변을 창출할 수 있는 소재라고 믿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소재마저도 코엘료 앞에서는 아주 간단한 삽화로 처리되고 말았다. 그렇기에 이 소설을 더더욱 용서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 이 소설은 2003년에 출간되었는데 2005년 작인 『오! 자히르』와 비교해 볼때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나쁜 소설이다. 만약 코엘료가 아닌 다른 작가가 이 글을 출판하려 했다면 자비 출판을 제외하면 세상에 태어날 방법은 따위는 애초에 없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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