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선 (La Ligne noire)

오래전 친구들과 떠난 여행길에서 가장 잔인한 묘사에 대한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누가 어떤 의견을 내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온전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내가 했던 말만큼은 분명히 기억한다. 등뼈가 드러난 날씬한 등허리에 떨어지는 핏방울. 헤모글로빈에서 산소가 환원되기 바로 직전 검은색에 가까운 진한 보랏빛의 핏방울이 백합처럼 하얀 살결에 떨어지는 묘사가 가장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는 가장 잔인한 묘사라는 것이 요지였다. 버스 뒤에서 텁텁한 팩소주를 돌리며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찌른 부분은 빅토리아 시대의 고리타분함만이 아니라 섹슈얼리티와 결합한 이단의 제단에 봉헌된 피의 전승과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폭력과 성의 끈끈한 유대라는 주절거림이 첨언 되었다는 것도 기억이 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 기억을 거꾸로 되감아 가다 보니 다른 누군가가 현대 범죄 소설의 문제가 바로 범인들의 불능이라고 언급했던 점도 떠오른다. 사내란 동물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살인의 긴장 속에서 강간의 기회를 함께 읽는 법이라고, 작가들은 범인의 불능이 그의 가학적 취향이나 살인의 동기를 해명하는 중요한 모티브라고 판단하겠지만, 독자로서는 불능이나 사정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성적 불안감과 함께 폭력에 대한 동화를 고조시키는 주범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종국에 그는 ‘차라리 잭 더 리퍼가 더 깔끔해. 그의 이야기에서는 최소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거든. 조니 뎁이 아편에 손을 대는 이유처럼 말이야. 잭은 잔혹하기는 하지만 그와 자신을 동화시키려면 간접 장치가 필요해. 왜나면 우리는 가장 오래된 직업의 소유자가 아니기에 살해당할 염려가 없잖아? 그런데 근래의 소설들은 그 거리를 지워버려. 프로이트와 융 이래 왜 모든 범죄 소설 작가들은 왜 심리학적인 병인을 따라 이야기를 끌고나가며 그 틀에 독자를 힘들게 만드는지 모르겠어. 내색하지는 않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일말의 동일성에서 비롯된 그 죄책감이 뒤섞인 쾌감. 정말 불쾌하지 않아?’라고 토로했던 듯싶다.

사실 범죄 소설에 대한 이야기로 서두를 여는 이유는 오랜만에 이 같은 느낌을 선사하는 소설을 읽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양들의 침묵』을 읽으며 내가 가졌던 느낌. 한니발 렉터와 스털링 사이의 창살을 두고 피어나는 성적 긴장감(이제야 고백하자면 나와 지기 하나는 이 성적 긴장감이 해소되길 기다리며 수능 보름 전에 출간된 『한니발』을 탐독했던 미친 짓을 태연스럽게 실행에 옮겼다), 잔혹한 동시에 아름다운 범죄.
긴장과 이완을 오가는 통에 시작된 동화현상. 살인에 대한 매혹. 육체에 대한 묘사 없이도 느껴지는 섹슈얼리티. 부적절한 즐거움.
표현해서는 안 되는 금기가 가져다주는 쾌감. 그 느낌을 다시금 선명하게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 바로『검은 선』이다.

물론 『검은 선』 자체는 격찬받을 정도로 매끄럽고 훌륭한 소설은 분명 아니다. 빼어난 부분이 많지만, 전체적인 골격은 조금 덜 다듬어지고 성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매끄럽게 이어지던 매혹적인 핏빛 이야기는 어설프게 서두에서 흘린 사건의 복선과 끝이 훤히 보이는 결말 사이에서 빛이 바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은 과거의 잔혹한 범죄 소설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다. 살인의 유사성이나, 상징성, 인물에 대한 묘사와 잔혹함의 본질에 접근하면서 겪게 되는 변화가 때로는 초연하고 담담하게, 때로는 사냥개에게 쫓기는 들짐승이 되어 숨이 턱에 걸려 헉헉거리는 마냥 기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팩소주의 그 텁텁함과 잔혹한 소설이 가져다주는 guilty pleasure를 직시할 수 있었던 친구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어수룩한 묘사 속에서 광기의 맛깔스러움을 찾아내 수 있는 이에게.(프랑스에서 『늑대의 제국』과 거의 연달아 출간된 것을 고려하면 한국어판 출간은 정말 늦지 않았나 싶다)

[#M_P.S.|less..| 며칠 전 좋은 리뷰의 조건으로 줄거리를 반드시 나열할 것. 누구나 공감이 되는 개인적 경험에 바탕을 둔 서두를 사용할 것. 어렵거나 복잡한 개념을 사용하지 말 것. 친근하고 쉽게 다가설 수 있으며 책에 대한 흥미를 유발해 읽고 싶은 동기를 강화시키라고 언급한 기사를 읽었다. 하지만, 확언하건대 저 조건은 좋은 리뷰의 조건이 아니라 알 리스도 감탄할 만큼 좋은 광고가 되기 위한 조건의 나열이다. 만면 웃음을 띤 채 나긋나긋하게 긁적거리느니 오해를 감수하는 편이 훨씬 나을 때도 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위선의 흉내만 내는 아이들과 몸만 어른이 된 청년들에게는 다소 버겁더라도 well-refined, sophisticated 혹은 impeccable man인 양 거짓 가면을 쓰는 수고에 비하면 그들의 버거움 따위는 무시해도 좋을 듯싶다. _M#]

2 thoughts on “검은 선 (La Ligne noire)

  1. 읽고 느낀 대로 솔직하게 쓴 글이 좋은 리뷰이겠죠. 객관적으로 좋은 글이라는 잣대야 존재하겠지만은… 모든 글이 객관적으로 좋아야 할 필요도 없고…받아들이고 싶으면 받아들이고 아니면 마는 겁니다. 그래야 다양성이라는 것도 발전할 테고…

    잘 읽고 갑니다.

    1. 답글이 정말 늦었네요. 한 달이란 시간이 정말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지나가 버려서요. 쓰기는 저렇게 썼지만 사실 겸손을 가장한 채 저런 것이 좋은 리뷰라고 읊는 한심한 사람들에 대한 비웃음이죠. 몇해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기사형식의 전면광고와 본질적으로 전혀 차이 없는 리뷰는 정말 싫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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