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위의 상념

로디아 메모지에 쌓인 상념들. 상념이 상념인 이유는 그것이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을 벗 삼아 변하는 마음이란 것의 그 비난받아 마땅한 성실함을 탓할 이유는 충분하지만 탓해 봤자 변하는 것은 없고, 변할 것도 없다.

1. 낯선 남자에게서 온 편지

그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생각이 이내 손이 멈춘다. 지금껏 보고 읽은 수많은 형상으로부터 닮은꼴을 찾아내려는 습관은 종적이 묘연하고, 영리하게 반짝이는 눈동자에 반사된 이채를 두 손으로힘껏 잡고 싶은 욕망만이 남아 꿈틀거린다. 소년처럼 수줍게 입맞춤하고 싶고 그녀의 쾌활한 웃음을 미운 일곱 살 아이처럼 나 홀로 독점하고 싶다. 그녀가 연인이라면 어떻게 말할까? 내 무릎에 앉아 귓가에 속삭이는 그녀의 작은 목소리를 상상하고, 그녀와 함께 보는 심야영화나 함께 떠나는 기차여행 따위를 떠올려 본다. 연인으로서의 그녀를 상상해보는 일은 너무나 즐거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를 찾을 수 없다. 해맑게 웃고, 온전하게 생각하고, 명랑하게 말하는 그녀는 너무 매력적이어서 다른 꿈을 꿀 여유가 없다. 때로는 암사자처럼 당당하고 대범하게, 때로는 세이렌의 노래처럼 고혹적으로 내 앞에 선 그녀를 꿈꾸고 있노라면 호흡이 가빠지고 마음이 몽롱해져 내가 어디쯤을 범주하고 있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즐겁기에 입술을 떠나 눈꼬리까지 파도 치는 그 미소가 나의 것이라면 내 삶은 얼마나 행복할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2. 비밀일기

우유빛 젖가슴을 가진 하렘의 여인들을 바라보면서 그녀들을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에, 사랑하는 여인에게 다가설 수 없다는 사실에 마냥 고통스럽기만 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어느 환관의 이야기를 읽다가 그가 흘려 버린 열정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별로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그와 나 사이에는 어떤 일치감이 존재한다. 아니 우리는 세월의 힘에 색이 흐릿해져 가는 흑백인화지 위의 사진처럼 열정으로 괴로웠던그때를 그리워하며 그 순간을 직시하고자 노력하는 의지를 어깨에 나누어 매고 있다. 이제는 그 고통스러웠던 열정이 식었기에 되려 더더욱 그립고 안타깝기만 하는 그 정조를 소설 속의 환관과 나는 비밀스럽게 공유한 셈이다.

3. 사전에 없는 말

책은 많은 것을 가르쳐주지만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입가에 올려야 하는 웃음이라든지, 적절한 축하말 같은 것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결혼에 대한 그녀의 전언을 들었을 때 ‘결혼 축하해’라는 말이 왠지 진부하고 부족하게만 느껴졌지만, 그 상황에 적절한 말은 아쉽게도 내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기꺼이 ‘내 삶의 축제기간’이라고 불렀던 그 시간을 함께 해주었고, 우정을 나누어주었던 그녀에게 느끼는 것은 비단 아쉬움만이 아니다. 멈출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청금석처럼 늘 한결같이 푸르기를 바랐던 우정은 빛이 바래고, 인연의 고리들은 헐거워졌으며, 서로에게 무덤덤해지고, 종국에는 가장 아름다운 추억마저 불완전해졌다는 깨달음이 마음속을 흔들었다. 지나간 것들에 대해, 기억 속에서 사라져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사진첩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후회하는 것들에 대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해, 아름다운 햇살을 함께 걸었던 친구들에 대해, 웃음과 울음이 다시 웃음과 울음이 교차했던 그 시간과 역사에 대하여 말했어야 했는데 내가 남긴 말은 억지스럽고 상투적이었으며, 난 당혹해 하고 있었고 냉담했다. 세상에는 많은 말이 있지만 어느 사전에도 내 마음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내가 진심으로 순수한 즐거움만을 담아 사랑했었고, 사심 없이 내 마음의 너그러움을 풀어놨으며, 불편함 없이 나를 꺼낼 수 있었던 그녀에게 했어야만 했던 ‘말’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사용자 삽입 이미지

4, 친구의 결혼에 대처하는 자세

다음날 나는 JY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똑같은 전언을 내게 고한다면 이번에는 한 삼십 분쯤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것처럼 귀머거리 장님 흉내를 내리라. 헤아릴 길 없는 거센 마음의 풍랑이 끝날 때까지, 추억을 충분히 정리해 조리 있게 꺼낼 수 있게 될 때까지 벙어리 흉내를 내리라. 그리고 절름발이가 되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내 마음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을 찾아 여행을 떠나리라. 여행에서 찾은 그 말을 건네고는 나다운 가면과 분장을 모두 벗어버리고 마음이 따스한 벗들의 어깨를 빌려 새벽이 올 때까지, 더는 마음이 먹먹하지 않을 때까지 취해보리라 다짐했다.

5. 다시 시작되는 것들

그 병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지난 일요일 저녁에 재발했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소리는 악마처럼 내 귓가에 오래된 서언 같은 것은 치워버리라고 종용하기 시작했고, 바람 소리는 여기에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5년 동안 참아왔던 보람도 없이 맹세는 헌신짝처럼 버려질 위기에 처했다. 내가 했던 수많은 헛된 맹세의 행렬에 새로운 서언을 하나 더하는 것은 아무리 반복되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사실 그 병의 시작은 낯선 이불 밑에서 깨어나 덥수룩한 수염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은 분방한 차림으로 길을 걷다가 든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진한 에스프레소를 도피오로 마시고 싶다는 생각. 그전에는 마치 내가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는 듯 진한 커피에 대한 갈증은 커져갔다. 보헤미안의 진한 커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풀려고 결국 에스프레소를 마시기시작했다. 하지만, 에스프레소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차가 아니다. 좋은 브랜딩의 홍차가 상대방에게 기분 좋은 편안함을 선사하는 것과 달리, 향이 풍부한 커피가 상대에게 따스한 추억을 연상시키는 것과 다르게 에스프레소는 철저하게 혼자만을 위한 차다.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에 그해 겨울 에스프레소를 버리고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했다. 아이리시 커피를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것처럼. 그런데 어느 날 소리 없는 불청객이 되어 과거의 습관은 다시금 내 몸속에 자리를 잡았다. 에스프레소 도피오를 주문하는 나 자신을 위한 수많은 변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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