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역사 핑크 카네이션

오랫동안 난 로맨스 소설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해 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어린 시절의 단순한 치기에 불과하지만 그 시절 겁 없이 손 댄 수 십 권의 책무더기가 준 교훈을 마음으로나 몸으로나 허투루 잊지 않았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플롯과 묘사, 판에 박힌 듯 똑같은 등장인물 틈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곤 권태 밖에 없다는 것이 그 당시 내가 이 장르를 빠져나오며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 결론은 시간이 흐를수록 확고해져 하나의 의지가 되었다. 혹자가 제인 오스틴 역시 조지언 시대의 로맨스 소설 작가가 아니겠느냐고 변명을 늘어놓을 때면 로맨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키스라든지, 애무를 인용하며 짓궂게 사람들을 놀려대던 편벽하고 못된 습관 역시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하지만, 관능이 무엇인지 이미 오래전에 알아버린 스물여덟의 청년이 되어서 다시 읽은 로맨스 소설은 조금 새로운 느낌이다. 올바르게 키스하는 방법마저 가물거릴 만큼 긴 시간 지속된 비자발적 독신증후군의 병폐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어보기도 하나 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금단의 열매를 맛본 이전과 이후가 같을 수 없는 것처럼 로맨스 소설 속의 묘사 역시 어린
소년이던 때와 전혀 다른 감각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오래전 로맨스 소설을 독파하던 친구가 나한테 던진 말처럼 참으로 ‘뻐근한 느낌과 함께 사지가 노곤해지는’ 경험을 간만에 얻어 쓸 수 있었다. 입가에는 고양이처럼 만족스러운 웃음이 걸린 채 의자에 앉아 얼굴을 붉게 불든 스물여덟 청년의 모습은 참으로 대책이 없지만 말이다.

사실 로맨스 소설에 대해 뒤바뀐 내 감상을 구구절절이 늘어놓는 이유는 이 소설이 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스파이라는 포장을 뒤집어쓰고
있긴 해도 본질적으로는 로맨스 소설이기 때문이다. 첩자들이 벌이는 활극은 이 소설에서 부수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복잡하고, 정교하며 세련된 이언 플래밍식의 스파이를 발견하기란 불가능하지만 대신 사랑에 빠진 샐쭉한 청년 스파이가 하나 있다. 이중 스파이가 등장하지 않는 점이 흥미롭긴 하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청년 스파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시골 처녀를 아페리티프 삼아 음미하는 부분이다.

『핑크 카네이션, 비밀의 역사』『검은 튤립 마스크』『에메럴드 링의 기만』『크림슨 로즈의 유혹』으로 이어지는 이 시리즈에서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을 설명하는 서장에 불과하다. 핑크 카네이션이란 스파이링이 형성된 시작에 초점을 맞추면서 앞으로 전개될 애정 전선의 서막을 살짝 들춘 정도가 이 소설에서 다룬 전부다. 하지만, 일견 유치해 보이는 제목만으로 이 소설을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프란체스코파의 수도사 같은 엄격한 눈빛과 결연하게 치켜든 턱으로 무관심을 가장해도 실상 그가 보는 것은 깊게 파진 앞섬 사이로 보이는 앙가슴이나 살품, 얇은 셔츠 사이로 보이는 르느와르의 <목욕하는 여인들>에서나 발견할 수 있을 만한 곧은 등, 혹은 한 팔에 감길 것 같은 세류요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나 여성미를 우아하게 그려내는 둔부라는 사실을 이 소설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2 thoughts on “비밀의 역사 핑크 카네이션”

    1. 며칠 전에 확인해 봤는데 누나가 올려 놓은 노래가 문제야.
      노래를 재생할 때마다 트래픽을 잡아 먹는데 대략 120번 정도 들으면 트래픽 제한에 걸리겠더라. 누군가 누나 블로그를 라디오삼아 듣는 거겠지. 그런데 한 곡만 6시간 이상 듣는 사람이 누굴까 궁금한 정도는 내가 더해.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