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의 거짓말

아름다운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줄어드는 책장에 아쉬움이 앞선다. 그리하여 종막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를 따라잡길 잠시 멈추고 차를 우려낸다든지, 산책을 한다든지 따위로 유예를 연장하고 만다. 더욱이 이런 소설은 풋사랑의 내음이 밴 연애편지를 읽듯 한 줄 한 줄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시처럼 아름답고, 작은 계류처럼 섬세하게 흐르는 문장을 음미하려면 말이다. 사실 부팔리노의 『그날 밤의 거짓말』을 평범한 추리소설처럼 플롯과 반전을 중심으로 읽는 것은 바보들이나 할 짓이다. 경험 많은 독자라면 작가의 의도를 쉬이 짐작할 것이 분명하고 반전에 깜짝 놀라기보다는 게임에 참가한 죄수들이 풀어놓는 이야기 속에 뒤섞인 진실과 거짓이 만들어 내는 정체성의 혼란과 욕망. 두려움에 공감하며 젖어오는 마음을 추스르러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하지만, 나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데카메론’이란 표현의 마수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대개의 사람들은 구성의 유사성과 본문에 언급된 ‘하룻밤의 데카메론’이란 표현 때문에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중심으로 이 책을 설명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구성보다도 중요한 것은 각각의 이야기들이 지니는 ‘데카메론적 풍미’다. 십여 년 전 『데카메론』을 읽던 소년이 접한 다채로운 삶을 소설 속 이야기들은 한층 위트 있게 겹쳐 놓는다. 묵직한 장정을 자랑하는 책 두 권을 가득 채운 이야기를 단 네 편의 이야기로 함축해내는 재주와는 별개로 말이다.

『그날 밤의 거짓말』의 매력은 사형수들에 대한 연민에 있다. 사형을 하룻밤 앞둔 죄수들의 고백에는 속임수라는 당과가 발라져 있지만 진실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되려 거짓의 이면에 놓인 것은 죽음을 받아들인 이들이 삶을 정리하며 내뱉은 회고다. 젊은 ‘학생’은 『지붕 위의 기병』 같은 사랑을 고백하며 삶을 갈구하고, 남작은 태 속에서 시작된 자기 복제의 저주를. 병사는 파괴적이고 부평초 같은 삶을, 시인은 시인이 꿈꿀 법한 자극적인 사랑을 노래하며 사형대로 걸어간다. 죽음이라는 사랑과 희망도 절망도 모두 무로 돌려버리는 최후의 종언과 입맞춤하려고 말이다.

죽음과 직면할 때 사람들은 가장 솔직하게 속내를 드러낸다고 한다. 부팔리노의 『그날 밤의 거짓말』은 이런 명제를 다시 한 번 증명한다. 삶을 꿈꾸지만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네 명의 사형수들이 겪는 하룻밤의 게임을 통해서 말이다.

2 thoughts on “그날 밤의 거짓말”

    1. 하지만 그 가능성을 실제 활용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어.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소설에 고작 이런 코멘트라니. 이 소설 절대 집으로 안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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