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죽음의 연대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를 익히 아는 친구들에게 난 100퍼센트라는 개념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하루키의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만큼 공감을 얻은 적은 한 번도 없으며, 되려 길고 구차하며 초라한 오욕의 기록에 새로운 한 획을 더할 뿐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하지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즈의 이 소설에는 꼭 ‘100퍼센트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만나는 기분’이란 표현을 써줘야 한다. 그 외의 어떤 표현도 이 소설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고 초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만약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뒷머리에 전달되는 아찔한 멍함 따위의 표현을 이 소설에 쓴다면 그것을 이 책은 욕되게 하는 것일 뿐더러 내 삶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오랫동안 사람의 뇌리에 남을 화려한 결혼식 다음 날 아침 처참하게 살해된 한 남자의 운명을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극중 화자인 나의 해석을 통해 재구성한 소설이다. 그렇지만, 얇은 책장과 단순한 줄거리임에도 이 소설의 느낌을 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걸출한 문학적 재능을 선사 받은 사람들만이 투사해낼 수 있는 삶의 정수를 독자로서 느끼는 것과 표현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비련의 주인공이 잠에서 깨어 살해되기 전까지 몇 시간 동안 그가 걷고 만난 사람들을 추적하며 마르케즈는 수많은 여러 우연이 만들어 낸 살인사건을 조명한다. 동시에 독자는 카브리해의 작은 항구 마을과 그 주민들의 삶을 내 이웃의 삶처럼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눈앞에 영사기가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주변인물들의 나래이션을 듣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한 남자의 최후와 그 뒷이야기들을 바라보며 한편으로는 잔인하기 그지없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삶의 참모습을 깨닫게 된다.

마르케즈가 『납치일기』에 보여주었던 르뽀르타쥐에도 충분히 감탄했던 나로서는『예고된 죽음의 연대기』에 더 남길 말이 없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과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능가하는 숨겨진 보물이라는 부연 아닌 부연이 내가 이 책에 더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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