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vior saltare cum deformibus mulieribus est vita

_길에서 옛 친구를 만났다. 뜬금없이 그녀가 전하기를 봄바람처럼 기분 좋게 살랑거리는 맑고 뽀얀 얼굴의 옛 연인이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그녀의 어설픈 친절이 밉살스러웠다. 그녀의 상냥한 마음이 내게는 풍문의 여신인 파마의 주름진 얼굴을, 유배지에서 고통받은 시인의 삶을 떠올리게 하였다는 것을 빼곤 사실 그녀의 잘못은 없다.

세상에는 좋은 소식이 분명한데도 모르고 넘어가는 편이 나은 소식도 있다. ‘잘 됐네’ 하고 대답하고 바보처럼 웃는 것이 이리도 힘든 일이었을 줄이야. 차라리 주정뱅이처럼 소리치고, 착한 것을 빼고는 가진 것이 없는 자처럼 불쌍한 표정을 지을 줄 알았다면 어땠을까? 먼 훗날 길에서 이 아이를 안은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난 어떤 표정을 지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어느 사이에 ‘서른 즈음’에란 노래를 부르기에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on the street where you live’를 콧노래 하며 걸었던 그 길은 도시개발에 지워졌고, 처음 아라비카 커피를 맛보았던 찻집은 볼썽사나운 음식점이 되었다. 단 하나 변하지 않고 남아있으리라 믿었던 나무 등걸도 지난여름 태풍에 몸쓸 정도로 상해버렸다. 어느새 소년이 청년으로, 소녀가 처녀가 될 만한 시간이 지났음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렸다.

_인파에 시달리는 퇴근시간이 한가로운 퇴근길보다 좋은 유일한 이유는 핸드폰을 만지막거릴 공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사라졌다 믿었던 옛 버릇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되돌아왔다. 빡빡한 장문의 문자메세지를 작성했다가 이유 없이 지우기를 반복한다.

통화버튼을 눌렀다가 이내 연결종료버튼을 눌러버린다. 사람의 마음을 정직하게 전달할 방법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마음은 항상 조심스럽다.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지 않도록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언제까지 마음을 여밀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불행은 나를 지나치지 않기에 풀린 여밈 사이로 보인 언저리만으로도 난 반 보 전진 일 보 후퇴의 행로를 반복하게 될 것이란 사실이다. 그렇기에 내 삶은 또다시 책읽기를 좋아하고, 쉬이 술 한 잔을 비우자 청할 수 있으며, 홀로 있는 것이 자연스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될 것이 명백하다. 사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밀린 책이 책장 가득 이고, 공부할 것이 쌓여 있으며, 배울 것이 많으니 이런 것들에 시간을 보내며 서른을 맞는 것도 좋지 않을까? 다시 쌓인 십 년을 비웃으며 서른을 맞이하는 끝에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_나에게는 아주 가끔 ‘힘내’란 말을 건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친구 하나가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삶의 고비마다 이 녀석에게 대가 없이 얻은 ‘힘내’란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오늘도 이 녀석에게 힘내란 말을 또 한 번 염치없이 요구해버렸다. 걱정스레 시작한 녀석과의 통화는 유쾌한 농담으로 끝났다. 이 녀석이 아무에게도 가지 않았으면, 평생 좋은 친구로 남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또 혼자 되뇌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나란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참으로 무치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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