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처럼 찾아오는……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한 교정에 앉아 서로 고민과 꿈을 두서없이 늘어놓을 수 있었던 시기 친구 하나는 내게 사랑은 새벽처럼 찾아온다고 말하곤 했다. 새벽처럼 찾아오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하고 한 숨을 내쉬는 그의 표정에는 무언가 간절한 것이 있었다. 어둠 속에 찾아오는 빛처럼 그 사랑은 녀석에게 소중한 것이었겠지. 하지만, 그 후로 난 다신 그에게 무엇이 새벽 같은 사랑인지,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 물을 수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 대신 그를 감싼 것은 높이를 알 수 없는 격랑이었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는 격랑에 완벽하게 침몰해 버렸다. 메마른 표정을 지닌 그에게 새벽 같은 사랑을 묻기에는 난 덜 무뎠고, 그 역시 그 순간을 잊은 듯 입을 닫아버렸다.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남긴 채로 말이다. 그리고 나 또한 조금씩 그의 메마른 표정을 베껴가기 시작했다.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다시 생각난 것은 좀 의외의 순간이었다. 술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느낀 알콜의 향에서 철없던 어린 시절에 소독약 냄새가 나는 손을 잡고 평생을 살 수 없다고 말하던 나를 연상했기 때문이었다. 스무 살의 난 내 인생이 더욱 커다란 것일 줄 알았고, 내 야망의 크기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단단할 줄 알았다. 그랬기에 소소한 행복보다는 거센 물결에 내 자신을 맡기고 싶었다.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난 변하지 않았다. 예의 바르고 이해심 많지만 사랑에 있어서 결정적인 한 걸음만큼은 주저하며 머뭇거리기를 반복하는 그런 헛된 인물이 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헤아릴 수 없는 날들이 지난 지금 난 그때의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리고 부질없는 꿈이었는지를 알고 있다. 이제는 작고 소소한 것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내일에 몸을 맡기는 일상 속에서 절로 깨닫기 때문이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술의 힘을 빌려 오랜 지기에게 그 말을 전하는 순간 난 그제야 이십 대의 한밤중을 넘겼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오래전 그가 말하던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이 무엇인지, 한밤을 넘겨야만 진실을 볼 수 있다던 어느 소설 속 문구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 애써 부정해왔던 것이지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옛 지기가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던 것은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매일 찾아오는 새벽처럼 사랑은 항상 다시 찾아오는 법이고, 사랑 자체를 결코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 앞에서 ‘to be or not to be’를 읊는  나를 모른 채, 그는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으리라.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남아있다고 믿었던 당시의 나로서는 이해하기 버거운 이야기로 그는 나와 소통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우습지만 스무 살의 난 복잡하고, 난해한 것에 끌리면서도 늘 바람꽃 같은 사람을 꿈꾸었다. 그리고 서른을 눈앞에 둔 이제 바람꽃 같은 여자가 영화속 한 장면처럼 내 눈앞에 서 있다. 사랑은 늘 새벽처럼 찾아온다고 하지만 어쩌면 이제는 이것이 마지막 새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내 마음을 풀어놓겠다고 굳게 다짐해보건만 제자리를 맴도는 이 버릇만큼은 어찌할 수 없다. 새벽처럼 찾아오는 사랑을 내가 더는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홀로 마음속에 담아두지 못하겠음에도 말이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녀를 사랑한다는 말인데 무슨 서설이 이리 긴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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