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복남!

시골집에서 키우던 복남이가 죽었다. 반가움에 어쩔 줄 모르고 빠르게 뛰는 녀석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마음이 푸근해지곤 했는데…… 기쁨을 온몸의 근육으로 표현하는 녀석은 또 하나의 가족이었고, 녀석의 영리함은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발치에 누워 배를 벌러덩 내놓은 채 누워있는 녀석의 표정은 몇 시간의 고된 여정이 가져다준 피로를 잊게 하기에 충분했고,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이내 잠이 들곤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선량이 표정이 마음속에서 솟아나 얼굴에 걸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실 이제는 녀석과 함께 보낸 수많은 시간이 희미하다. 지난 설 연휴에 본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려 해도 다른 기억들 속에서 쉽사리 꺼내지지 않는다. 단 한 번도 녀석이 우리 가족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에 녀석을 기억하는 일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녀석이라면 내 아이가 녀석을 매만져줄 만큼 오래 살 줄 알았고, 만약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냄새만으로도 새 식구가 된 내 처를 알아보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지독할 정도로 우리 식구밖에는 몰랐던 녀석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지친 몸으로 우리의 손짓을 갈구하며 떠났다. 강아지로서는 짧지 않은 삶이었지만 인간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리 길지 시간 동안 우리 가족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과 행복감은 준 채로 말이다. 살아가면서 나를 둘러싼 바깥 울타리에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끝 없는 헌신을 녀석은 나에게 주었고. 그랬기에 녀석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녀석에게는 영원과도 같을 오랜 삶을 살면서 녀석에 대한 추억과 기억이 희미해지고 말 것이란 사실이 유쾌하지 않다. 왜 녀석을 본 마지막 순간에 조금 더 오래, 따뜻하게 만져주지 못했을까? 녀석의 평생 우리만 생각하며, 우리만이 삶의 전부였던 녀석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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