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런 봄

_가슴을 갈라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문장을 고르기란 쉽지 않다. 결국, 2주가 걸러서야 키케로의 서간문에 실린 유명한 문장이 떠올랐다. 본래는 대화편에 등장하는 문구를 키케로가 인용한 것인데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불의를 행하기 보다는 불의로 고통받는 것이 낫다’ 정도다. 기억나지 않는 원문을 찾아 페르세우스 프로젝트에서 번역문을 찾았고, 친구에게 부탁해 롭 시리즈에서 해당 구절의 원문을 찾았다. 좋아해주면 좋겠지만 기뻐해주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지만 자신은 좀 없다.


_ 다시 브로콜리 너마저도의 <보편적인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늦은 밤 텅빈 사무실에 앉아 스탠드를 켜놓고 도시를 삼킨 어둠과 자동차들이 만들어내는 붉은 행렬을 보면서 듣는 <보편적인 노래>는 새로운 맛이다. 사실 하루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을 혹사한 다음 찬바람을 맞으며 지하철 역까지 걷는 15분이다. 아이팟의 볼륨을 최대치로 올리고 듣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스노우>나 페더의 <사일런트 크라이>는 왜 그리 좋을까? 부드러운 가죽 로퍼에 느껴지는 땅의 감촉과 뺨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그 15분의 존재 때문에 일하는 것이 좋다면 억지일까?


_오래 전에 읽다가 멈춘 『잃어버린 것들의 책』에서 아주 인상 깊은 문장을 발견했다. 누이 많은 집안에서 자란 막내 특유의 붙임성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날마다 한심한 유머를 터트리는 나로서는 그 문장을 진작에 외우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말이나 문장 따위에 사람의 마음을 담는다는 일의 무모함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은 항상 지나간 것을 후회하는 법이고, 조금 더 나은 것을 추구하려는 열정을 잃지 않는 법이다. 롤랜드라는 기사가 남긴 알렉산더의 이야기를 참조할 것!


_’완전 거짓말쟁이세요 -_-;’란 답신에 친구와 나는 거리에서 쓰러질 정도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on the street where you live’의 정서를 공유하는 것은 어쩌면 내 나이 또래가 마지막일 것이란 생각을 했다. 평소에 내지 못하는 용기를 우연히 길에서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낼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는 우리로서는 그네들이 사는 거리를 걸으며 우연이 찾아오기를 꿈꾸고 희망하는 데 말이다. 하지만, 몇 해만에 친구는 카메라를 챙기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시원스런 웃음을 얼굴에 띄워놓고 있었다. 구김 없이 유쾌한 순간이 너무 오랜만이라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설레임을 담은 표정으로 답신을 기다리는 지기를 보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괜시리 나까지 즐거운 웃음에 전염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웃음이 우리에게 다시 찾아왔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긴 해도 말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이 지난 뒤에야 우리는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그 길에 끝에 무엇이 기다릴지는 모르나 -되도록이면 해피엔딩이기를 바란다- 시간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것은 비단 사라지지 않는 수염자국만은 아닐 테니 걱정은 천천히 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_2003년 7월에 시작한 블로그가 어느덧 햇수로 일곱 해를 맞았다. ’50만 히트’ 같은 것을 기다리는 유치함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이 거대한 내 삶의 기록을 어찌할 수 없다. 그러니 철없는 청년의 코믹 릴리프 혹은 부파 오페라를 묵언으로 감상해준 수많은 손님에게 꿈꾸는 일들이 마법처럼 이루어지는 하루가 찾아오기를 빈다는 인사쯤은 남겨도 되지 않을까? 

2 thoughts on “변덕스런 봄”

    1. 자네 먼저.

      나보다 70일쯤 더 산 그대가 가도 먼저 가야지.
      그런데 생각해 보니 올해는 네 생일도 까먹고 있어서 축하한다는 말조차 해주지 못했네. 이 부분은 내 불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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