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심판

 인생을 살다보니 내게도 클로드 모네와 에두아르 마네를 구분할 필요가 없는 주변으로 포위된 시기가 왔다. 마네와 모네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호인의 화가’ 메소니에란 이름도, 살롱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파리의 심판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린 시절의 나였다면 로스 킹의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을 읽은 시기를 아련하게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시스타냐 예배당 천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미켈란젤로의 고난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가에게 보내는 경외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사용자 삽입 이미지

 로스 킹은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에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를 병렬시켜 율리우스 교황 시대의 로마를 그린 것처럼 <파리의 심판>에서도 메소니에와 마네라는 걸출한 두 대가를 주인공으로 처음으로 낙선전이 열린 1860년부터 파리코뮌이 무너지고 마네가 이끄는 바티뇰파가 인상파라는 이름을 얻은 1870년대 중반까지의 파리를 그리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위대한 순간들을 재현함으로서 미술이 역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아카데미에 도전하여 작고 소소한 일상의 삶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승리를 일구어낸 마네를 기억한다. 플라뇌르 아래 스튜디오가 아닌 야외작업을 통하여 빛이 만들어내는 인상을 견고하게 잡아냄으로서 싸움에 종지부를 찍은 모네와 르느와르를 사랑하며, 고전주의에서 인상주의로 이어지는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반면 내가 18세기의 와토라고 부르는 세밀한 붓놀림을 자랑하는 메소니에는 고작 영국의 콘스타블의 아류로 말을 잘 그리는 화가로 지칭되거나, 부르주아를 위한 소품을 그린 화가로만 기억된다. 당대 제일의 화가라는 명성은 인상파의 약진 속에 갈가리 찢겨졌고, 거대한 역사화들이 숨쉬는 루브르에서도, 인상파의 성전인 오르세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작가는 고전주의에 매몰된 샬롱의 보수주의자들과 마네를 중심으로한 젊은 화가들이 벌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투쟁을 담담한 어조로 서술한다. 인상파의 수퍼스타라 말할 수 있는 모네, 세잔, 르느와르의 비중도 그리 크지 않다. 되려 메소니에라는 미술사에서 잊힌 불운한 한 화가를 복권시키는 것으로 미술사상 가장 첨예했던 시기에 작가만의 색채를 입히고 있다.

 로스 킹은 인상파의 약진이 그들의 천재성에 열광한 관객과 평단에 하루 아침에 인정받은 것은 아니라 역사의 격변 속에 매우 긴 시간에 걸쳐 느릿하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 다는 사실을 적시한다. 또 인상을 포착하려는 시도가 바티뇰파의 전유물이 아니며, 많은 화가들 역시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인상을 탐구했다는 사실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전쟁과 혼란의 파리라는 드라마틱한 춤판 속에 그려지는 대가들의 삶은 덤으로 생각해도 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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