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전

어린 시절의 난 내가 또래의 아이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거친 땀 냄새를 풍기며 ‘코기’처럼 또래 아이들이 뛰어다닐 무렵, 난 이미 『데미안』의 세계에 빠졌고, 『플루타크 영웅전』을 읽으며, 『일리아드』를 머리맡에 두고 잠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른 중반에 가까워진 어른의 눈으로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 역시 느리든 빠르든 누구나 겪은 특별할 것 없는 성장의 과정이란 생각에 낯이 뜨거워진다.

 가끔 아내는 어린 시절 무엇을 하고 시간을 보냈느냐고 묻곤 한다. 그때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학교에서 집까지 1.5킬로미터를 걸어다니는 동안 읽곤 했던 『초한지』와 『삼국지』, 『수호전』과『서유기』의 재미다. 신문연재 소설의 감칠맛이 살아 있던 김팔봉의 『초한지』의 카피라이터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역발산기개세의 항우’라니……. 아! 『수호전』을『수호지』라고 부를 때마다 상대를 어이없어하던 부끄러운 잘난척쟁이였던 나도 기억난다. 조금 더 자라 이문열 『삼국지』와『수호지』를 또래들이 읽을 때 난 박종화와 김팔봉이 아니면 명대 소설 편집 방식에 따른 판본이 최고라고 으스대기까지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난망할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실 『쌍전』을 여는 이야기로 어린 시절을 고백하는 이유는 동양인이라면 누구나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에 얽힌 추억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장과 함께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은 기억 한편에 약간의 불편한 감정과 함께 고이 모셔두게 된다. 『쌍전』은 바로 이런 약간의 불편한 감정을 파고든 책이다.

 지성이 성장하면서 우리는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을 읽으며 마냥 즐거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유비의 가식이나 조조의 잔인함이나 99.9%의 백성에게는 똑같은 고통일 뿐이라는 사실을,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가 위∙진 시대의 혼란한 정국을 연장한 이기적인 계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양산박의 108 호걸들은 양상군자에 불과한 잔인한 파괴자들이란 사실을 깨닫고 나면 더는 책장을 넘길 수 없게 된다. 게다가 현대의 작가들이 이런 불편함을 없애기 위하여 저마다의 필치로 편집본을 양산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면 ‘쌍전’에 대한 사랑은 봄날 눈 녹듯이 녹아 사라지게 된다.

 『쌍전』의 저자인 류짜이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중국인들의 정서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쌍전’을 숭배하는 기류 저변에 자리잡은 흉성을 고찰하고, 그것이 어떻게 현대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파헤친다.『쌍전』은 결국 『삼국지연의』와 『수호전』비판을 넘어셔서 중국인의 의식구조 비판에 접근한다.

 그리고 이런 중국인의 의식구조 비판은 정도는 덜하지만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비판하는 도구로 빌려와도 무방하다.『수호전』의 몰인간성, 잔혹함, 집단 밖에 대한 차별, 『삼국지연의』의 뻔뻔함과 비양심적인 행동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의식기저를 설명하는 유용한 도구다. 『삼국지연의』와 기계와 『수호전』의 잔혹함이 판을 치는 2013년 오늘의 우리에게 따끔한 일침인 것은 물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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