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September 2013

1.
오랜 고민 끝에 태터툴즈, 텍스트큐브를 거쳐 2003년부터 써왔던 블로그를 워드프레스로 옮겨왔다. 임포터 덕분에 텍스트큐브 초기 시대의 포매터로 작성된 글의 정렬이 깨진 문제를 제외하면 지난 10년 간의 내 삶의 기록은 무사하다. 하지만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기술로는 내 추억을 온전히 옮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10년 전 처음 블로그가 유행을 타기 시작했을 때에는 날마다 저마다의 문체가 묻어나는 아름다운 글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 시절부터 읽던 블로그 가운데 살아남은 것들은 소수다. SNS의 홍수 속에 예견된 길을 걸은 것 뿐이겠지만 젊은 시절을 기쁘게 만들어 주었던 그 아름다운 옛글들이 때때로 그리운 것은 사실이다.

2.
작년의 인사이동으로 난 FTA와 관련된 일을 보고있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길에 백팩을 맨 학생들을 보게되면 나도 모르게 대학 시절로 돌아가 그 시절에 알았던 FTA와 지금의 FTA를 비교해보게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F~king Trouble Area인 것은 변함 없지만 항상 논란이 되었던 것은 가장 불필요한 부분이고, 가장 필요한 부분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우습다. 하긴 10년 전 세상이 이렇게 되었을 줄 누가 알았을까? 10년 전에 예상하던 모습 가운데 예측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은 애플과 구글뿐인 세상인데…

3.
열아홉의 난 무모하게도 수업 따위는 듣지 않고 창밖으로 보이는 은행나무를 관찰하며 가을이 오는 모습을 관찰하곤 했다. 가을비가 한 차례씩 내릴 때마다 바람은 차갑게 식어가고, 공기에는 가을 특유의 건조한 눅눅함이 베어들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단풍이 지고 낙옆이 어지럽게 떨어질 즈음이면 십대도 끝나가리란 공상에 젖어 있었는데 그후로는 한번도 제대로 가을을 관찰해 본 기억이 없다. 가을은 늘 짧고 바쁜 것이서 그럴 틈이 없었다는 변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는 느릿하게 걸으며 아내와 함께 가을이 오는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고 싶다.

4.
십년이 조금 못되는 시간 동안 즐겨 읽던 블로그에 새로운 종류의 ‘서재 결혼 시키기’가, 그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청첩장이 올라왔다. 사실 학생 시절 난 학교 박물관에서 그를 몇번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내 삶에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나도 그와 비슷한 외로움의 궤적을 따라갈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못된 마음이지만 그 생각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삶과 글이 아무리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말이다. 몇년의 세월이 흘러 내가 더 이상 외롭지 않은 것처럼 이제는 그가 외롭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웃음짓게 만든다.

바다의 제국들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지중해는 마법처럼 나를 사로잡는다. 어쩌면 지중해라는 단어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마력에 빠진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성인이 된 지금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지중해를 배경 으로 한 역사책이고, 여름이면 지중해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로저 크롤리의 『바다의 제국들』은 바로 바로 이같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언제인가는 로도스섬의 중세 성채를 가보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들. 몰타의 발레타 요새에서 지중해를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 육박전을 치루는 갤리선과 성채같은 갈래아스가 벌이는 전투를 상상해본 사람들.

KOR9788991221598『바다의 제국들』은 ‘황제’ 또는 ‘세계의 패권’이라 부를 수 있는 힘에 취한 군주들의 이야기이다. 세계의 패권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허락되기에 합스부르크가와 오스만투르크는 지중해 세계 전역을 대상으로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한다. 한편으로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위신과 힘을 갖추어야 한다. 합스부르크가가 지배하는 지중해 서편에는 로마와 빈이라는 전략지점이 존재하고, 지중해 동편에는 메카와 이스탄불이란 전략지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두 세력은 육지와 바다에서 격돌한다.

하지만 이런 격돌이면에는 이면에는 지중해의 조류와도 같은 거대한 흐름이 존재한다. 아테네가 흑해의 밀을 토대로 해상 제국을 세웠고, 아이고스포타미에서의 승리로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흑해에 대한 통제력을 파괴한 것처럼, 아나톨리아 반도에 근접해 있는 로도스섬은 이집트에서 이스탄불로 향하는 밀의 수송을 방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이 때문에 슐레이만의 공격 목표가 된다. 몰타 역시 다르지 않다. 트리폴리의 이슬람 세력이 시칠리아를 건너 로마로 진격할 수 있는 지점에 위치한 몰타는 제2차세계당시 독일군이 아프리카 전선을 열기 위해 공격한 것과 같은 이유로 표적이 된다. 이 얼마나 기묘한 우연의 일치인가?

로저 크롤리는 시오노 나나미가 세 권의 책에서 그리고자 했던 16세기 지중해의 향방을 한 권의 책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그가 그려내는 역사의 깊이와 아름다움은 그녀에 비할 바가 아니다. 헛된 욕망과 인간의 어리석음. 그것이 만들어내는 역사의 파노라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햇살 좋은 여름의 지중해는 찬란하게 빛나고 있기에

5 September 2013

1.
영화 Two Mothers의 원작인 도리스 레싱의 Grandmothers를 읽는 중이다. 때로 내가 드라마 작가나 영화 감독있었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느끼게 만드는 소설이 있다. 레싱의 그랜드마더즈로 바로 그런 소설이다.

소재면에서는 ‘졸업’은 우습게 볼 수준이고, ‘아름다운 청춘’의 파격도 놀랍지 않다. 문제는 이런 파격적인 소재를 우울하고 불쾌하게 묘사하거나 미화하는 것 없이도 놀랄만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작가의 역량이다. 이제 몇페이지 남지 않았지만 담담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횡설수설하지 않아서 좋다. 도리스 레싱은 인물들의 행동에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지도, 속마음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우리는 처음 로즈와 관계하던 이안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이안을 받아들인 로즈의 선택이 일회성이 아니라 계속되었던 이유를 어렴풋하게 예상만 할 수 있을 뿐 판단을 내리기에는 정보가 부족하다. 릴에 이르러서는 왜 그녀가 톰을 받아들였는지는 현재 읽은 부분까지는 신만 알 것이고, 그녀가 톰을 사랑한 방식을 엿볼 수는 있으나 그들의 사랑이 어떤 것이었는지 추측하기조차 어렵다.

디테일을 사랑하는 내가 이 소설에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한 이야기가 상상하는 범위에 따라 다양한 내러티브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레싱은 우리에게 이야기의 얼개를 제공할 뿐이고 채색과 명암은 순수하게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았다. 혼자만의 상상력으로 채워도 좋고, 그것을 누군가와 나누어도 좋을 정도로.

결국 소설을 다 읽어가는 지금. 내가 상상한 소설 속 현실의 문제를 two mothers의 감독이 어떤 식으로 배치하고, 또 어떤 기분으로 해석했는지 궁금해 죽겠다. 소설도 좋지만 영화가 있어 더욱 행복한 경우랄까? 나오미 와츠가 참 배역에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2.
이렇듯 즐겁게 썼으나 서른 셋은 쉽지 않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나를 옥죄이고 있고, 아마도 영원히 옥죄일 것 같아 힘들고 서럽다. 삶은 항상 ‘왜 사냐면 그냥 웃지요’이다. 아내 품에서 보내는 짧은 저녁만이 나의 위안이 된다. 휴~

23 August 2013

1.
DG 111시리즈를 사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은 분덜리히의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 난 ‘시인의 사랑’은 만큼은 피셔-디스카우보다 보스트리지의 목소리가 더 낫다고 생각했는데 분덜리히의 목소리는 보스트리지가 가진 호소력을 뛰어넘어 사람을 눈물짓게 만든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이런 목소리를 음반으로 밖에 들을 수 없다는 사실 서른 다섯에 요절한 그 이기에 실제로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다는 것은 너무 아쉽다. 스틱스강의 하우스보트처럼 누군가 스틱스강의 오케스트라를 만들면 어떨까?

2.
분덜리히에 이어 고전 중의 고전인 프레니와 게다의 라보엠을 듣고 있다. 내가 본 라보엠은 총 2번인데 한 번은 옥스포드, 한 번은 예술의 전당. 눈을 감고 있자니 2006년 늦여름 옥스퍼드 오페라 극장의 웅성거림.내 마음을 아름답게 적시던 웨일즈 내셔널 오페라 컴퍼니의 연기가 떠오른다. 당시에는 미미가 너무 늦게 죽는다고 툴툴거렸으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참 아름다운 추억이다.

3.
99년 이후 더 이상 우디 앨런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지만 지난 번 영화 to Rome with love에서 욕조에서만 노래를 부르는 앨런의 사돈 에피소드는 작위적이지만 사람의 마음 속에 담긴 내밀한 꿈을 이끌어내는 미묘한 것이었다. 난 욕실에서조차 그 남자처럼 노래를 부리지 못한 것을 제외하면 누구가 멋진 음악을 들으 때 마음에 품게 되는 나도 저렇게 부르고 싶다는 생각을 생각보다 괜찮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4.
아이를 낳고, 아이가 자라면
아이와 함께 오페라를 보고 싶다.
아이와 함께 발레도 보고 싶고,
토월 극장에서 그리스 희극도 함께 보고 싶다.

아이와 윤지와 함께
낯선 도시를 걸으며 대가들의 명작들을 찾아 순례를 떠나는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왜 이렇게 행복한지.

MBA도, IB뱅커도 아니지만
젊은 시절 꿈꾸었던 일과는 지독하게 먼 곳에서
내가 잘하는 것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곳에서
나이를 먹고 있지만,

아내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내 안에 담긴 것을 보여주지 않은 채
느린 속도로 시들고 있지만

윤지와 아이와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하고 있노라면
마음이 터질 것처럼 부푼다.

칭기스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

레이 황의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 하다』를 읽기 전까지 난 중국 역사에서 한수와 위수가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북쪽의 기마문명권 군사력의 작전 행동은 마량이 되는 초지를 벗어나지 못했고, 남북조의 치열한 전장 역시 한수와 위수를 오가며 연강우량 600밀리미터의 초지를 토대로 펼쳐지곤 했다. 사실 이런 작은 지식은 의외로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강수량 지도와 등고선 지도를 함께 펼쳐 놓고 보면 각종 역사적 사건들의 흐름이 일목요연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잭 워더포드의 『칭기스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 는 레이 황에서 한 발짝 살짝 더 나아간다. 칭기스칸의 딸들이 통치하는 지역이 몽골 제국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를 분석한다. 후방의 안정, 중국 쪽 실크로드를 제압하기 위한 전진기지, 대흥안령산맥을 중심으로 한 오아시스에 대한 무력 투사. 딸들이 공주로서 통치하는 지역들은 칭기스칸의 디딤돌이었고, 이 디딤돌을 통하여 몽골은 최초로 실크로드 전역을 제압한 제국이 되었다.

어린 시절 함락당한 금나라의 도성에서 포로가 되는 야율초재와 칭기스칸의 만남을 읽으며 몽골족은 황량한 고비사막을 어떻게 넘어 금나라를 정복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낙타도 없이, 말로 사막을 건너 몽골만큼은 아니지만, 강력한 기마력과 중국인 보병을 거느린 금나라에 충격을 가할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은 고비 사막을 건넌 기마 부대가 말을 살 찌우고, 군사력을 재건할 수 있었던 고비 이남의 전진기지의 존재로서 설명할 수 있다. 지속적인 원정이 가능한 전진기지의 운영은 영민한 딸의 역량에 달려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전략적으로 배치된 디딤돌이 강력하고, 빠른 군사력의 전개 및 무력 투사를 용이하게 만들어 칭기스칸의 군대를 실크로드의 지배자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몽골이란 사회 체제 안에서 칭기스칸의 딸들인 공주들이 지니는 위상과 정치적 역할, 지배당한 초원의 부족 출신의 며느리들이 지닌 외교 네트워크. 그리고 영민한 딸들과 술 취한 아들들, 야심 찬 며느리들 사이의 투쟁과 제국의 몰락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칭기스칸이 지닌 남녀의 역할관과 세계관이 어떻게 그의 제국이 적용되었고, 얼마나 절묘하게 운영되었는지를 따져보는 일은 즐겁다. 아울러 제국의 황혼이라 부를 수 있는 몽골 귀족들의 정체성 상실과 권력 게임이 얼마나 손쉽게 세계 제국을 파탄에 빠트렸는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교훈은 충분하다. 르네 그루쎄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같은 걸작은 아니지만, 몽골제국의 성립과 몰락을 이해하는데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