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

1.
빈과 베네치아, 베로나를 거쳐 피렌체에 도착했다. 다만 한국과의 원활한 연락 수단이 없다는 것이 좀 불편할 뿐 몸과 마음 모두 최적의 상태다. 베네치아와 베로나에서 베로니즈와 틴토레토, 조르다노의 작품을 아쉬움 없이 실컷 즐겼다. 허공에 떠 있는 패널과 마모된 프레스코화 앞에서 아무의 방해도 없이 원래의 색과 형태를 상상해가며 보내는 시간이 꿈같지 않다면 무엇이 꿈일까?

꽃의 도시라는 별칭답게 피렌체는 압도적인 화려함을 자랑한다. 하지만 내 정서에는 베로나에서 느꼈던 아름다움만 못하다.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이곳보다는 한 눈에 들어오는 잘 구획된 도시를 감상하는 것과 번잡한 인파의 물결에 휩쓸리는 일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편이 더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베로나는 나에게 대가들의 명작들이 태어난 토양에 대한 의문을 확실하게 풀어주었다. 같은 모티프가 어떻게 변주되었냐를 찾아보는 여행도 나쁘지 않다.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명작이 왜 명작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여러번 감상하는 것이 많은 그림을 보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말에는 충분히 동의한다. 하지만 때로는 명작이 아닌 범작들로 부터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도 있다.
   
2.
다른 것은 몰라도 변신 이야기과 그리스-로마 신화만큼은 플루타르크의 영웅전만큼이나 정통하다고 자부하던 내 자만심은 팔라조 메디치 리카르디에 존재하는 조르다노의 방에서 과거가 되고 말았다. 20분을 감상해도 모두지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몇몇 이미지 앞에서 좌절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내 앎의 부족의 때문이 아니라 무거운 내 목 탓이다.  

3.
He went to the gallery of Uffizi & he thought that the National gallery is just small drawing room. Besides, he saw the Venus of Urbino & Dog of Molossus & etc which had been hoped to be seen by him. Moreover he realised that he could read some italian historical terms. Anyway after spending 9H in the museum, he came back accomodation & he fell a sleep. I think he see a great deal of appreciating meanings of shadow about some sculptures& paintings what are unquestionably great. I don’t get on well with him, but think that he is…

4.
아침에 일어나보니 하늘은 비가 올 듯 찌푸려 있고 블로그에는 국적 불명의 첨언이 달려있다. 뭐 이것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한니발에서 렉터가 한 사내를 목매달았던 피치궁에 갈 예정이다. 예쁜 건물에 걸려있는 처형된 시신들을 상상하는 내 취미가 조잡할지라도 그 나름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5.
사실 이렇게 일상을 기록하는 이유는 집에 전화할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기 때문이고, 국제전화의 경우 비용에 비해 전달할 수 있는 정보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 형제들의 특성상 한 사람쯤은 이 글을 읽어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난 살 잘고 있노라고 목청을 울려 보는 것이다. 하지만 홀로 떠나는 여행은 분명 외롭다. 낯선 여행지에 만난 이국 여인과 동행하는 행운이 가끔 찾아오기는 해도 여행이 가져다 주는 모든 상념을 나눌 친구의 존재가 항상 그립다. 아니 감탄사를 공유할 지인의 부재가 가장 치명적인 것인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던 피사에도 다녀왔고 피렌체의 거리에도 슬슬 익숙해지고 있다. ‘냉정과 열정사이’에 끌려 이곳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듣는 ‘곤니지와’란 인사가 거북살스럽긴 해도 낯선 도시의 이방인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Notice

서가와 노트북에서 멀어진 지금 나 역시 별볼일 없는 기억력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자꾸 들게 된다. 설마 네 전화 번호를 잊을까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곤했던 과거가 면목없게도 모바일폰의 전화 번호란 것들은 왜 그렇게 다들 비슷한지 모르겠고 주소란 것들도 까닭없이 복잡하다. 결국 고민 끝에 나중에 면책 특권의 초석으로 사용하기 위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서두가 길었지만 결론은 ‘제발 주소 좀 남겨 주세요’ 하고 사정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요약

며칠 뒤면 미치도록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운 시험 결과가 나온다. 메리 스튜어트가 무서운 음모에 동의했던 그 성벽의 폐허에 앉아 어떤 결과에도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과는 별개로 요즘의 나는 찰나의 한가함조차 참아 내지 못한다. 쉴틈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만 어떤 불운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무엇에 쫓기는지조차 모르면서 지독한 피로감이 팔다리에 젖어들때까지 야생 멧돼지처럼 이곳 저곳을 방황한다. 하지만 이런 방황에도 좋은 점이 있으니 티켓북이 순식간에 채워져 간다는 사실이고 귀국 선물조차 사지 못할 만큼, 서간인까지 찍은 엽서들을 보내지 못할만큼 헐거운 지갑 두께를 자랑한다는 점이다. 아직 남은 며칠 동안 보아야 할 공연들이 몇 개 남아 있긴 하지만 한가지 자부해도 될만한 사실이 있다면 지금껏 살아온 나날들 가운데 지금처럼 나 혼자만의 즐거움에 봉사하기 위해 모든 노력과 시간을 기울였던 시기는 없었다는 사실 하나다.

Musical
Phantom of the opera
Les Miserable
Wicked
Lion King
Mary Poppins
Billy Elliot
Chicago
Evita
Sound of Music

Play
Troilus and Cressida
Wating for Gordot

Opera
Return of Ulysses
La Boheme
La Traviata
Marrige of Figaro

Ballet
Magia de la Danza -Ballet Nacional de Cuba
Romio and Juliet -Birmingham Royal Ballet
Mixed Bill -Dutch National Ballet
Sleeping Beauty -Royal ballet

Exhibition
칸딘스키, 콘스터블, Rebels and Martyrs, 모디글리아니, 로댕, 벨라스케즈, 세잔, 홀바인

청바지

우연한 기회에 1/15으로 인하된 5.99파운드짜리 폴로진을 사게 되면서 나의 청바지 인생은 새롭게 시작되었다. -20살 때 산 리바이스진 이후 두번째 진이다-  구두보다 트레이너가 더 좋아졌고 한국에서라면 꿈도 꾸지 않았을 보라색 체크 무늬의 퍼플 라벨 셔츠까지 사버렸다. -클럽 의상으로 딱이다. 하지만 이곳의 클럽이란 곳은 한국과 다르게 생겨 먹은 장소라서 그다지 발걸음을 붙잡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한국에서도 이런 장르의 유희에 대하여 진지하게 재미를 느꼈던 적은 없다- 커프링크의 부재가 안타까운 상황이긴 하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는 요령이 생겼고 골반에 걸리는 디자인이 안겨준 당황스러움에도 적응했다. 지금쯤 이 글을 읽고 있을 절친한 지기는 청바지가 우리에게 지니는 의미에 관해서 꼽씹어 보고 있겠지만 지난 겨울 그가 몇년 만에 청바지를 처음 산 것처럼 나에게도 특별한 이유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한 번 사봤을 따름이다.    

단상

1.
유럽 최대의 서점에서조차 한국의 대형 서점에 익숙한 우리네로서는 빈틈이 선명하게 보인다. 알파벳 순서로 잘 정리된 작가 목록에서 빠진 작품을 찾아내는 것은 여흥꺼리조차 되지 못하고 외국인 작가에 대한 무지(성과 이름이 바뀌어 있는 경우는 약과다)를 비웃는 일도 이제 지쳤다. 지금껏 내 삶을 지배한 불운 가운데 하나인 아무리 비싸도 갖고 싶은 책만큼은 절대 찾을 수 없다는 말은 이곳에서도 통용된다. 막내 누이에게 <폭풍의 한가운데에서>를 선물하기 위해 런던과 옥스포드의 서점을 거의 다 뒤졌지만 헌책방 주인들에게도 아련한 추억 속의 책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의 아찔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은 여기에서도 구하기 힘든 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나 역시 프리드먼처럼 반은 명작이나 반은 펄프 덩어리인 두터운 책을 써야만 하는 것일까?

2.
지금 BBC에서는 제인 에어의 새로운 시리즈를 방영하고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드는 생각 가운데 하나는 프로듀서가 작품을 이해하는 안목이 대단히 높다는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인답지 않게 소설의 완성도에 대해서 약간의 이견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다.하지만 한편으로는 제인 역할을 맡은 매우의 입술과 뺨을 보면서 ‘소설 속의 묘사와 어쩌면 그렇게 똑같을 수 있을까’ 같은 감상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드라마 혹은 리뷰 속에 담긴 플롯에 대한 미묘한 뉘앙스를 잡아내고 이것들을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과거가 왜 이리 그리운 것일까? 샤롯 갱스부르의 제인에 열광했던 친구들에게 새로운 제인이 소개될 즈음에는 이런 열정도 식은 뒤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 외로운 것이고 안타까운 것이 아닐까 짐작해볼 따름이다.

3.
유럽 최대의 서점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블랙웰의 문학 코너에서는 유명한 작가들의 사진이 담긴 엽서를 팔고 있는데 그 옆을 지날 때면 내가 사랑했던, 혹은 좋아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곤 한다. 어제는 오스카 와일드의 너무나 핸섬한 포즈의 엽서를 사서 그 자리에서 과거와 같은 열정과 희망으로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고 싶은 욕망에 들떠 있었고 그제는 마르케스의 엽서를 사서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대한 동감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매번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내 연약한 의지의 패배뿐이다. 쉽게 잊지 못한다는 것이 천형이 될 것이라는 누군가의 악담이 떠오른다. 이국만리 타역에서도 기억은 지워지지 않으며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흐릿해지지 않는다. 태연한 안색 뒤에는 시지프스의 형벌에 비견될만한 기억의 징벌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네들이 안다면 나를 다시 사랑해줄텐데…

4.
아침에 눈을 떴을 때 BBC의 머릿 기사는 북핵 문제였다. 런던거래소에서 코스피지수의 등락을 설명하는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패닉 상태까지는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영국에서 바라보는 한국은 파이낸셜 타임즈에도 환율 정보가 실리지 않을 정도로 먼나라이다. 유럽인들이 느끼는 오리엔탈리즘의 환상에서도 매우 변방에 위치해 있다고 해야 할까? 우아한 매너를 가졌다고 평가받는 영국 신사들의 졸렬함에 질린지 오랜 터라 이제는 뭐든지 헛웃음만 나온다. 영국이 세계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었던 시기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거인의 죽음과 함께 영국과 세계라는 단어의 연관성은 매우 약해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refined gentlemen들에게 조소를 보내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매우 힘들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관련국 모두가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마지막 국면에 몰렸고 모두가 패배자가 되었다. 타협할 수 없는 원칙에 대한 신념이 얼마나 강한 것일까? 역사를 돌이켜 보면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 윈칙에 한 국가가 영구히 종속되었던 적은 없다. 체임벌린의 실책을 누군가가 다시 저지르지 않을까? 지금의 긴장 상태를 견디어 내면서 상황을 고착화 시키는 것만이 가장 좋은 해결책인 이 즈음 누군가가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지 않을까? 유화적인 제스처는 군사적 옵션을 고려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행동이지 않을까?

어쩌면 한국인으로서 내 또래는 두번째로 동원령을 받는 발부받는 세대가 될지 모른다. 현실성이 희박한 가정이라고 매도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지난 50여년간 지켜온 긴장 상태의 평화는 어느 한 쪽이 긴장 상태의 피로감을 이겨내지 못한 순간 파괴되는 위험한 평화였다. 이제 핵은 긴장 상태에 대한 피로감을 가중시켰으며 피로감을 느끼는 국가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관련국 가운데 하나가 현재의 긴장 상태를 이겨내지 못하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거나 단호한 옵션을 선택하는 시점에 균형은 무너지며 힘의 역학 관계가 변한다. 기약없는 긴장의 피로감에 노출된 채 살아야 하는 한국인으로의 삶과 선택의 순간들이 우리가 선물받은 미래다. 뭐 한국인으로써 이제는 익숙해질때로 익숙해진 긴장의 관성을 믿자면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긴장을 견디어 내는 만큼 다른 나라들도 잘 견뎌줄까? 타결책이 없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보는 듯한 아찔함이 느껴지는 현 상태에서 우리가 가진 인내력만큼의 끈기를 그네들에게 기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