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숫자의 감옥에 수감된 이후 잃어버린 것 가운데 가장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문장이다. 자연스럽게 써내려지던 문장은 이제는 너무 조악해 부끄럽기만 단어의 나열이 되어버렸다.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확립한 나름의 문체도 사라지고, 이제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낯선 문장이 내게 손짓한다.

생각을 담아대는 가장 훌륭한 도구였던 문자가 낯설게 될 날이 오리라고는 어린 시절 단 한번도 꿈꾸지 않았다. 그 시절에 나에게는 그런 날이야 말로 1984년에 등장하는 쥐보다도 더 공포스럽고, 화씨 451의 미래보다 더 암울하리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이 조금 허전하고 답답할 뿐 숫자의 감옥도 나쁘지 않다. 출퇴근 시간에 듣는 음악 뿐이지만 여전히 음악도 존재하고, 깊게 빠져들 만큼 충분한 여유가 없지만 책 역시 내 삶을 아직 떠나지 않았다. 학생 시절보다 더 다양한 커피를 마시고 에스프레소 머신도 집에 들여놓았다. 다만 옛날의 내가 느꼈던 감동과 기쁨이 보다 무미건조한 방법으로 표출될 뿐이다.

사실 가장 마음 아픈 순간은 어어지지 않은 채 몇해 동안 방치된 블로그를 보는 순간이다.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삶의 즐거움이 차곡차곡 쌓여가던 이 곳의 황량함은 나를 어두운 불안의 경계 밖으로 내몬다.

길게 썼지만 결론은 하나다. 다시 이곳에 글을 쓰고 싶다.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대세인 이 시대에도 난 여전히 이 공간이 제일 아늑하고 편안하다.

변덕스런 봄

_가슴을 갈라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문장을 고르기란 쉽지 않다. 결국, 2주가 걸러서야 키케로의 서간문에 실린 유명한 문장이 떠올랐다. 본래는 대화편에 등장하는 문구를 키케로가 인용한 것인데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불의를 행하기 보다는 불의로 고통받는 것이 낫다’ 정도다. 기억나지 않는 원문을 찾아 페르세우스 프로젝트에서 번역문을 찾았고, 친구에게 부탁해 롭 시리즈에서 해당 구절의 원문을 찾았다. 좋아해주면 좋겠지만 기뻐해주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지만 자신은 좀 없다.


_ 다시 브로콜리 너마저도의 <보편적인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늦은 밤 텅빈 사무실에 앉아 스탠드를 켜놓고 도시를 삼킨 어둠과 자동차들이 만들어내는 붉은 행렬을 보면서 듣는 <보편적인 노래>는 새로운 맛이다. 사실 하루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을 혹사한 다음 찬바람을 맞으며 지하철 역까지 걷는 15분이다. 아이팟의 볼륨을 최대치로 올리고 듣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스노우>나 페더의 <사일런트 크라이>는 왜 그리 좋을까? 부드러운 가죽 로퍼에 느껴지는 땅의 감촉과 뺨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그 15분의 존재 때문에 일하는 것이 좋다면 억지일까?


_오래 전에 읽다가 멈춘 『잃어버린 것들의 책』에서 아주 인상 깊은 문장을 발견했다. 누이 많은 집안에서 자란 막내 특유의 붙임성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날마다 한심한 유머를 터트리는 나로서는 그 문장을 진작에 외우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말이나 문장 따위에 사람의 마음을 담는다는 일의 무모함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은 항상 지나간 것을 후회하는 법이고, 조금 더 나은 것을 추구하려는 열정을 잃지 않는 법이다. 롤랜드라는 기사가 남긴 알렉산더의 이야기를 참조할 것!


_’완전 거짓말쟁이세요 -_-;’란 답신에 친구와 나는 거리에서 쓰러질 정도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on the street where you live’의 정서를 공유하는 것은 어쩌면 내 나이 또래가 마지막일 것이란 생각을 했다. 평소에 내지 못하는 용기를 우연히 길에서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낼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는 우리로서는 그네들이 사는 거리를 걸으며 우연이 찾아오기를 꿈꾸고 희망하는 데 말이다. 하지만, 몇 해만에 친구는 카메라를 챙기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시원스런 웃음을 얼굴에 띄워놓고 있었다. 구김 없이 유쾌한 순간이 너무 오랜만이라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설레임을 담은 표정으로 답신을 기다리는 지기를 보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괜시리 나까지 즐거운 웃음에 전염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웃음이 우리에게 다시 찾아왔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긴 해도 말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이 지난 뒤에야 우리는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그 길에 끝에 무엇이 기다릴지는 모르나 -되도록이면 해피엔딩이기를 바란다- 시간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것은 비단 사라지지 않는 수염자국만은 아닐 테니 걱정은 천천히 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_2003년 7월에 시작한 블로그가 어느덧 햇수로 일곱 해를 맞았다. ’50만 히트’ 같은 것을 기다리는 유치함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이 거대한 내 삶의 기록을 어찌할 수 없다. 그러니 철없는 청년의 코믹 릴리프 혹은 부파 오페라를 묵언으로 감상해준 수많은 손님에게 꿈꾸는 일들이 마법처럼 이루어지는 하루가 찾아오기를 빈다는 인사쯤은 남겨도 되지 않을까? 

회중 시계

서른에 가까워 질 때까지 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회중 시계 보는 토끼의 불안을 이해하지 못했고, 시계 초침 소리에 쫓기는 느끼는 사람들의 초조함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 어느덧 나도 그들의 일원이 되어버렸다.

나는 어떤 책?



You’re The Guns of August!
by Barbara Tuchman
Though you’re interested in war, what you really want to know is what
causes war. You’re out to expose imperialism, militarism, and nationalism for what they
really are. Nevertheless, you’re always living in the past and have a hard time dealing
with what’s going on today. You’re also far more focused on Europe than anywhere else in
the world. A fitting motto for you might be "Guns do kill, but so can
diplomats."


Take the Book Quiz
at the Blue Pyramid.

Brevior saltare cum deformibus mulieribus est vita

_길에서 옛 친구를 만났다. 뜬금없이 그녀가 전하기를 봄바람처럼 기분 좋게 살랑거리는 맑고 뽀얀 얼굴의 옛 연인이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그녀의 어설픈 친절이 밉살스러웠다. 그녀의 상냥한 마음이 내게는 풍문의 여신인 파마의 주름진 얼굴을, 유배지에서 고통받은 시인의 삶을 떠올리게 하였다는 것을 빼곤 사실 그녀의 잘못은 없다.

세상에는 좋은 소식이 분명한데도 모르고 넘어가는 편이 나은 소식도 있다. ‘잘 됐네’ 하고 대답하고 바보처럼 웃는 것이 이리도 힘든 일이었을 줄이야. 차라리 주정뱅이처럼 소리치고, 착한 것을 빼고는 가진 것이 없는 자처럼 불쌍한 표정을 지을 줄 알았다면 어땠을까? 먼 훗날 길에서 이 아이를 안은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난 어떤 표정을 지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어느 사이에 ‘서른 즈음’에란 노래를 부르기에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on the street where you live’를 콧노래 하며 걸었던 그 길은 도시개발에 지워졌고, 처음 아라비카 커피를 맛보았던 찻집은 볼썽사나운 음식점이 되었다. 단 하나 변하지 않고 남아있으리라 믿었던 나무 등걸도 지난여름 태풍에 몸쓸 정도로 상해버렸다. 어느새 소년이 청년으로, 소녀가 처녀가 될 만한 시간이 지났음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렸다.

_인파에 시달리는 퇴근시간이 한가로운 퇴근길보다 좋은 유일한 이유는 핸드폰을 만지막거릴 공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사라졌다 믿었던 옛 버릇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되돌아왔다. 빡빡한 장문의 문자메세지를 작성했다가 이유 없이 지우기를 반복한다.

통화버튼을 눌렀다가 이내 연결종료버튼을 눌러버린다. 사람의 마음을 정직하게 전달할 방법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마음은 항상 조심스럽다.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지 않도록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언제까지 마음을 여밀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불행은 나를 지나치지 않기에 풀린 여밈 사이로 보인 언저리만으로도 난 반 보 전진 일 보 후퇴의 행로를 반복하게 될 것이란 사실이다. 그렇기에 내 삶은 또다시 책읽기를 좋아하고, 쉬이 술 한 잔을 비우자 청할 수 있으며, 홀로 있는 것이 자연스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될 것이 명백하다. 사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밀린 책이 책장 가득 이고, 공부할 것이 쌓여 있으며, 배울 것이 많으니 이런 것들에 시간을 보내며 서른을 맞는 것도 좋지 않을까? 다시 쌓인 십 년을 비웃으며 서른을 맞이하는 끝에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_나에게는 아주 가끔 ‘힘내’란 말을 건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친구 하나가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삶의 고비마다 이 녀석에게 대가 없이 얻은 ‘힘내’란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오늘도 이 녀석에게 힘내란 말을 또 한 번 염치없이 요구해버렸다. 걱정스레 시작한 녀석과의 통화는 유쾌한 농담으로 끝났다. 이 녀석이 아무에게도 가지 않았으면, 평생 좋은 친구로 남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또 혼자 되뇌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나란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참으로 무치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