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ude Oil

유가는 날마다 신기록을 경신 중이고, 이제는 조심스럽게 제3차 오일쇼크의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메릴 린치와 바클레이즈, 골드만 삭스의 애널리스트들은 유가가 $200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고 이는 시장에서 선물 가격의 상승을 주도했다. 지난달 읽은 한 기사에는 러시아의 석유생산능력이 처음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었고, 소비에트 시절 이후 제대로 된 시설 투자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러시아의 석유산업이 필요로 한 투자의 규모의 방대함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화요일 FT에는 WTI가 $126에 접근한 기념으로 Peak olilist와 Non-peak olilist들의 의견을 정리한 분석 기사가 게재되었다.

사실 두 진영이 주장하는 바는 mb/d로 측정되는 석유생산능력이다. 과거 논의의 핵심을 이루던 가채년수는 양 진영에서 논의의 핵심과는 거리가 멀다. 셸의 지정학자인 휴버트가 1950년대 처음으로 Peak oil이론을 주장한 이래 석유의 생산능력은 꾸준하게 늘어났고, 채굴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유전의 탐사는 늘어나는 석유생산에도 가채년수를 꾸준히 유지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논의에서 중요한 사항은 지난 20년 동안 새롭게 탐사 된 대형 유전이 드물다는 사실과 오늘날 석유 생산의 절대량이 오래전에 탐사된 대형유전에 의존하는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며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유전의 개발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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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문제의 핵심은 1980년대의 예측이 틀렸다는 데 있다. 80년대의 그 누구도 중국이 세계경제로 편입되어 세계의 공장이 되리라고 예측하지 못했으며, 인도의 부상 역시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마오의 중국과 인디라의 인도가 소비에트 출신의 경제학자들을 영입해 만들어 낸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오늘날 워런 버핏을 능가하는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 틀림없다.) 80년대 내내 유가는 이따금 요동을 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했고,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도 비록 절대 가격으로는 상승했지만 오일 쇼크 당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을 유지했다.

이는 신규 투자를 망설이게 하었고, 정치적 혼란과 왕정의 독재, 소련과 철의 장막의 붕괴는 과거 정부가 주도하던 개발과 신규 투자를 백지화시켰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가는 개발되지 않은 유전을 두고 후세에게 물려주어야 할 선물이라고 표현하곤 했지만 몇 년 전까지 그 말이 단지 수사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신규 투자나 탐사가 지출은 늘리면서도 공급 과다라는 인상을 시장에 주어 석유 가격 하락시켜 왕실의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명약관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별도의 대규모 설비 투자나 신규 탐사 없이도 생산량은 꾸준하게 늘어났고 이머징 마켓의 수요증가는 생산증가로 이어지면서 힘들이지 않고도 쉽게 에너지 산업을 통해 넉넉한 재정을 유지하게 해주는 요술램프 역할을 톡특히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기사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전은 점차 말라가는 지도 모르며(사우디의 석유 생산은 북한의 핵만큼이나 외부에서 진실을 알기 어렵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서둘러 새로운 유전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게다가 미래의 가장 유망한 석유매장지역인 오리노코 벨트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에 때문에 개발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Peak oilist들이 부정적인 전망을 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Non-Peak oilist들은 수평채굴기술이나 심해채굴기술의 발전을 고려하면 석유 생산량의 고점은 아직 멀다고 한다. 하지만, 고점이 멀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고점이 먼 만큼 이머징 마켓에서의 수요도 덩달아 늘어난다면 고점이 멀었다는 사실은 현재의 석유 가격 추세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아도 중립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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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느 쪽이 옳으냐는 석유를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로서 4번째로 가장 많이 석유를 수입하는 우리로서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과거의 투자 문제와  탐사의 비효율성에 대하여 유리가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정부 처지에서는 석유생산이 고점에 이르렀던, 이르지 못했든 간에 2.3Mb/d에 이르는 수요에 걸맞은 공급처를 찾아야 하는 절대 명제를 해결해야하고 고유가 시대에 걸맞은 경제구조와 생활습관을 체화시켜야 한다. 우스갯소리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유전은 디트로이트 아래 묻혀 있다고 한다. 자동차산업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발전으로도 석유소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시장의 힘과 인간의 창의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더라도 난 인간을 믿고 싶다. 상업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유전을 갖지 못한 우리로서는 어느 날 갑자기 2.3Mb/d에 이르는 대형유전이 한반도에서 발견될 것이라고 믿기보다는 인간이 지닌 교묘함과 위기를 이겨내는 맹렬함을 믿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테니 말이다.

Turmoil in the uncertain world

The matter of structured investment business
그린스펀의 FRB 의장직 임기 말에 터져 나왔던 논쟁 가운데 가장 뜨거웠던 논란은 부동산 버블이 2006년 하반기에 붕괴할 것이라는 크루그먼의 독설과 endless booming을 믿는 듯한 그린스펀의 다소 감정적인 반응이었다. 장기간에 걸친 저금리 정책이 결국 부동산 버블을 키웠고, 인플레이션을 부추겼으며, 경기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FRB의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묵살된 채 새로운 의장이 취임했다.

사실 논란 이후 1년 동안 벌어진 상황 전개로만 보면 크루그먼의 예언은 틀렸다. 부동산 시장의 버블은 붕괴가 아니라 서서히 침체에 접어 들었으며 FRB의 정책 기조도 인플레이션 억제로 변할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이름마저 생소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학을 다니면서 2007년 이전에 이 종류의 상품을 교과서에서 본 것은 고작 네 번에 지나지 않았다. 파이 그래프에서 차지하는 위상으로 보자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상품만한 상품. 평생 교과서 밖에서는 실제로 접할 기회조차 없을 것으로 믿어졌던 상품이 2007년 하반기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서브-프라임 시장의 붕괴가 아니라 structured investment business 그 자체에 있다. 이미 90년대 LTCM이 붕괴할 때 structured investment business의 취약점은 뚜렷하게 노출되었다. 한 투자가의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structured asset이 다른 투자가의 포트폴리오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다양한 파생상품이 흘러 넘치는 금융 시스템으로써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다시 말해 거래의 안정성은 쌍방 모두 거래를 청산할 의사와 실행력을 보유하고 있을 때에만 보장받을 수 있다. 상품 구조의 복잡성은 하나의 상품이 다수의 다른 상품과 결합됨으로써 보통의 위험을 감소시키는 반면 포트폴리오 붕괴시 시장 비청산의 위험을 극도로 높인다)

결국, LTCM 사태 때는 뉴욕의 FRB의 주도하에 월스트리트의 메이저 플레이어들이 긴급구제금융을 실시함으로써 포트폴리오의 동반 붕괴를 막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번에는 그런 과단성 있는 결정을 할 인물이 없었다. 쉬쉬하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 붕괴의 여파를 축소하는 동안 이와 연관을 맺은 다양한 structured
asset product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사실 이 시점에서 포트폴리오 자체가 붕괴하었는지 이번 주의 구제금융으로 포트폴리오의
붕괴를 막았는지는 실적 발표가 나와봐야 확실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약 이번 구제금융이 포트폴리오
붕괴를 막는 데 사용된 것이 아니라 계속된 연타로 시작된 대출혈을 막으려고 투입된 자금이라면 structured investment business의 붕괴로 말미암은 금융 혼란은 비극의 서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SGA와 Northern Rock,  UBS등의 유럽계 은행마저 월가의 4/4분기 실적발표 이후 엄청난 손실이 예측되고 있는 참이다)

역사는 교훈적인 동시에 반복적이다. 스티걸-글래스법이 존재하던 시기. 상업은행은 저축대부조합 파동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반면
상업은행이 붕괴하는 동안 투자은행의 제2의 전성시대가 도래했고 결국 스티걸-글래스법의 사문화로 이어졌다. 그리고 오늘날 부동산
상품에structured된 투자 포트폴리오로 쏠쏠한 재미를 봤던 투자은행은 호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세상은 돌고 돈다.

The fantasy of emerging market
랜덤워크 마피아로서는 참 명목 없는 소견이지만 1700선 후반의 주가는 근시일에 1600선이 무너질 것 같다. 1700선 초반에서 환매 시점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하겠지만 증권사는 저가매수의 호기라든지, 장기투자의 관점을 운운하며 환매할 타이밍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할 것이다. 이머징 마켓은 미국이나 유럽 시장과 디커플링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소개와 함께 말이다. 아마도 인도 시장을
가장 좋은 예로 들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기관 투자가를 중심으로 외국인 매도를 떠받칠 것이다.

하지만, 심리적 저지선인 1700은 급격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바젤2 협약의 기준을 맞추고자 배당이 높으며 안정성이 높은 알짜배기 자산을 제외한 나머지 투자를 청산하거나, 포트폴리오의 붕괴를 막기 위해, 혹은 1/4분기의 실적 개선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글로벌 IB들은 2007년 동안 이머징 마켓에서 거두어들인 수익을 실현할 필요에 쫓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약 FTSE의 붕괴(DJI나 S&P500이 아니다)로 시장이 패닉에 빠질 경우 디커플링 경향의 강화라는 사탕발림은 정말 재미없는 농담이 되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가장 나은 방법은 외국인 매도세를 끝까지 막아낼 지속적인 자금투입이겠지만 이 방법으로는 현상 유지는 가능해도 수익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개인의 처지에서 보자면 깨끗이 손을 털고 나오는 것만이 10%의 손실이 반쪽 펀드로 이어지는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뭐 하지만 내 주변에야 간당간당한 월급 통장 하나만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이 대다수이니 그리 걱정할 바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The serious problem: Raising price of the commodity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금융자산 붕괴로 말미암은 내수 시장의 위축 가능성도 중요하겠지만 소리 없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농작물 가격이야말로 정부차원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콩과 밀, 옥수수. 커피 모두 25년이래 최고 가격을 기록했다.(이젠 감히 ‘로부스타같은 쓰레기 원두’라는 표현을 쓸 수 없는 수준이다) 이는 밀가루와 사료. 과자류(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두부까지)등의 직접적인 가격 상승을 유발할 것이 분명하고, 이는 다시 육류의 전반적인 가격 상승을 부추길 것이 확실하다. 전자 제품의 실질적인 가격하락과 공공 부문의 빗장이 오랫동안 감추어두고 있던 물가 정책의 실패는 이번 상승으로 확연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는 서민 경제의 직격탄을 날릴 것이 분명하다.

펀드에 여유 자금을 굴리는 사람들의 문제는 시장에 맡겨 놓아도 된다. 하지만,
자장면과 칼국수, 학교 식당을 애용하는 나 같은 가난한 학생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끔찍한 고통이 될 것이 분명하다. 더욱 나쁜
사실은 이런 경향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라는 데 있다. 식량 자원을 삼키는 거대한 블랙홀이 되어버린 중국. 미국
농업 시장의 판로가 식량 공급에서 바이오에너지 공급 등으로 다변화된 여파. 마지막으로 세계적인 기상 이변은 올해에도, 내년에도 계속될 장기적인 추세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거참 걱정이다. 두부와 짜장면을 돌려 달라!

바나나 전쟁

크루그먼씨의 국제경제학을 읽다가 <바나나 전쟁>과 조우했다. WTO 체제의 출범 이후 미국과 유럽의 대표적인 무역 분쟁으로 불리는 이 사건과 마주칠 때마다 난 학교에 입학조차 못했던 먼 옛날로 되돌아가곤 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버지와 난 시장을 걷고 있었고, 그날 따라 난 바나나 노상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네쪽들이 한 묶음에 3천원이라는 중량당 가격으로는 쇠고기보다 비쌀 그 과일이 무척이나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결국 난 아버지를 졸라 획득한 전리품이 담긴 종이봉투를 의기양양하게 집어 들었다.

하지만 수십 미터도 가지 못해 사단이 벌어졌다. 껍질을 벗기던 바나나가 땅에 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바나나의 가치를 모르지 않던 난 시장 바닥에 떨어진 바나나를 얼른 주어 들려 했다. 어린 아이가 먹을 것을 탐하는 마음에서 가 아니라 비싼 과일이 아까워서 였다. 아버지는 조용히 땅에 떨어져 더럽혀진 과일을 먹어야 할 정도로 우리가 형편없지 않으며 바나나의 가치가 아무리 높다 한들 자부심보다 높은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지만 난 말뜻을 알아 들었고 정말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나쳤다.

사실 바나나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도 바나나가 듬뿍 나오는 과일 안주를 만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이 가게주인의 손이 크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물론 그런 무의식적인 호의는 오래지 않아 바나나는 더 이상 절대 비싼 과일이 아니라는 현실적 판단에 덧칠을 당하고 말지만, 그럼에도 레드망고에 갈 때면 바나나 토핑을 얹어야 포만감이 드는 바나나에 대한 심리적 허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바나나에 대한 허기는 나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철의 장막 안에 속해 있었던 구동독인들에게 바나나란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들에게 바나나는 당간부들에게나 허락된 중남미의 사치품이었고 통일 이후 시장에 공급된 바나나는 어느 순간 정치적 재화로 그 위상을 높였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미국과 유럽간의 바나나 전쟁이 있기 전에 독일과 영국 프랑스 사이에서는 바나나 전쟁의 전초전이 벌어졌다.

카리브해의 식민지 사회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던 영국과 프랑스는 자국의 식민지산 바나나를 보호하기 위해 저렴한 중남미산 바나나에 고율의 관세를 물렸고(정확하게는 수입할당제), 독일에서는 정치적 재화로 변한 바나나의 시장 가격을 최대한 저렴하게 유지함으로써 구 동독인들의 마음을 달래야 할 정치적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영국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전초전은 관세동맹(유럽의 바나나 의정서)을 앞세운 프랑스와 영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미국과의 바나나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의 패배로 결론이 났다. 결국 오늘날의 구 동독인들은 우르과이 라운드의 타결 이후 우리가 저렴한 바나나를 먹게 된 것처럼 가장 싼 값에 마음껏 자유의 선물을 향유하게 되었다.

사실 바나나 전쟁은 무역론이나 국제경제론의 작은 글상자 하나에 불과할 정도로 그리 크게 주목 받은 사건은 아니다. 하지만 한때 쇠고기보다 비쌌던 바나나의 가격과 오렌지와 메론, 파인애플과 키위에 대한 동경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예사로운 사건이 아니다. 누가 뭐래도 난 생크림 케익 위에 올려져 있던 이국적인 과일이 선사하던 풍요로움을 상상하며 생일을 맞던 세대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기억만큼이나 자유주의 무역과 경쟁 체제가 가져다 준 선물을 늘어가는 생일 케이크의 촛대만큼이나 분명하게 느끼며 성장했다.

오늘날은 내가 시장 바닥에 떨어트린 바나나로 고민했던 그 시기에 비하자면 분명 많은 의미에서 자유화되었다. 하지만 자유화의 선물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고마워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무역의 자유화가 낳은 많은 이점들은 정치적 이유로, 혹은 사회적인 이유로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다. 무역의 자유와 경쟁 체계가 우리에게 가져다 주었던 쾌락을 기억하고 그것을 하나의 신념으로 받아들인 나 같은 사람은 오히려 별종이 되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사람들은 자유화가 가져 다 준 쾌락을 넘어서 또 다른 가치들에 눈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소외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과 쾌락의 이면을 뒷받침하는 것은 여전히 경쟁 시스템과 무역의 자유화이다. 우리가 기억하던, 기억하지 못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