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ude Oil

유가는 날마다 신기록을 경신 중이고, 이제는 조심스럽게 제3차 오일쇼크의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메릴 린치와 바클레이즈, 골드만 삭스의 애널리스트들은 유가가 $200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고 이는 시장에서 선물 가격의 상승을 주도했다. 지난달 읽은 한 기사에는 러시아의 석유생산능력이 처음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었고, 소비에트 시절 이후 제대로 된 시설 투자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러시아의 석유산업이 필요로 한 투자의 규모의 방대함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화요일 FT에는 WTI가 $126에 접근한 기념으로 Peak olilist와 Non-peak olilist들의 의견을 정리한 분석 기사가 게재되었다.

사실 두 진영이 주장하는 바는 mb/d로 측정되는 석유생산능력이다. 과거 논의의 핵심을 이루던 가채년수는 양 진영에서 논의의 핵심과는 거리가 멀다. 셸의 지정학자인 휴버트가 1950년대 처음으로 Peak oil이론을 주장한 이래 석유의 생산능력은 꾸준하게 늘어났고, 채굴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유전의 탐사는 늘어나는 석유생산에도 가채년수를 꾸준히 유지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의 논의에서 중요한 사항은 지난 20년 동안 새롭게 탐사 된 대형 유전이 드물다는 사실과 오늘날 석유 생산의 절대량이 오래전에 탐사된 대형유전에 의존하는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며 지정학적인 요인으로 유전의 개발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짜 문제의 핵심은 1980년대의 예측이 틀렸다는 데 있다. 80년대의 그 누구도 중국이 세계경제로 편입되어 세계의 공장이 되리라고 예측하지 못했으며, 인도의 부상 역시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마오의 중국과 인디라의 인도가 소비에트 출신의 경제학자들을 영입해 만들어 낸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오늘날 워런 버핏을 능가하는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 틀림없다.) 80년대 내내 유가는 이따금 요동을 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했고,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도 비록 절대 가격으로는 상승했지만 오일 쇼크 당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을 유지했다.

이는 신규 투자를 망설이게 하었고, 정치적 혼란과 왕정의 독재, 소련과 철의 장막의 붕괴는 과거 정부가 주도하던 개발과 신규 투자를 백지화시켰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가는 개발되지 않은 유전을 두고 후세에게 물려주어야 할 선물이라고 표현하곤 했지만 몇 년 전까지 그 말이 단지 수사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신규 투자나 탐사가 지출은 늘리면서도 공급 과다라는 인상을 시장에 주어 석유 가격 하락시켜 왕실의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명약관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별도의 대규모 설비 투자나 신규 탐사 없이도 생산량은 꾸준하게 늘어났고 이머징 마켓의 수요증가는 생산증가로 이어지면서 힘들이지 않고도 쉽게 에너지 산업을 통해 넉넉한 재정을 유지하게 해주는 요술램프 역할을 톡특히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기사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전은 점차 말라가는 지도 모르며(사우디의 석유 생산은 북한의 핵만큼이나 외부에서 진실을 알기 어렵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서둘러 새로운 유전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게다가 미래의 가장 유망한 석유매장지역인 오리노코 벨트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에 때문에 개발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Peak oilist들이 부정적인 전망을 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Non-Peak oilist들은 수평채굴기술이나 심해채굴기술의 발전을 고려하면 석유 생산량의 고점은 아직 멀다고 한다. 하지만, 고점이 멀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고점이 먼 만큼 이머징 마켓에서의 수요도 덩달아 늘어난다면 고점이 멀었다는 사실은 현재의 석유 가격 추세에 부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아도 중립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어느 쪽이 옳으냐는 석유를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로서 4번째로 가장 많이 석유를 수입하는 우리로서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과거의 투자 문제와  탐사의 비효율성에 대하여 유리가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정부 처지에서는 석유생산이 고점에 이르렀던, 이르지 못했든 간에 2.3Mb/d에 이르는 수요에 걸맞은 공급처를 찾아야 하는 절대 명제를 해결해야하고 고유가 시대에 걸맞은 경제구조와 생활습관을 체화시켜야 한다. 우스갯소리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유전은 디트로이트 아래 묻혀 있다고 한다. 자동차산업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발전으로도 석유소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시장의 힘과 인간의 창의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더라도 난 인간을 믿고 싶다. 상업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유전을 갖지 못한 우리로서는 어느 날 갑자기 2.3Mb/d에 이르는 대형유전이 한반도에서 발견될 것이라고 믿기보다는 인간이 지닌 교묘함과 위기를 이겨내는 맹렬함을 믿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테니 말이다.

Turmoil in the uncertain world

The matter of structured investment business
그린스펀의 FRB 의장직 임기 말에 터져 나왔던 논쟁 가운데 가장 뜨거웠던 논란은 부동산 버블이 2006년 하반기에 붕괴할 것이라는 크루그먼의 독설과 endless booming을 믿는 듯한 그린스펀의 다소 감정적인 반응이었다. 장기간에 걸친 저금리 정책이 결국 부동산 버블을 키웠고, 인플레이션을 부추겼으며, 경기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FRB의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묵살된 채 새로운 의장이 취임했다.

사실 논란 이후 1년 동안 벌어진 상황 전개로만 보면 크루그먼의 예언은 틀렸다. 부동산 시장의 버블은 붕괴가 아니라 서서히 침체에 접어 들었으며 FRB의 정책 기조도 인플레이션 억제로 변할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이름마저 생소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학을 다니면서 2007년 이전에 이 종류의 상품을 교과서에서 본 것은 고작 네 번에 지나지 않았다. 파이 그래프에서 차지하는 위상으로 보자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상품만한 상품. 평생 교과서 밖에서는 실제로 접할 기회조차 없을 것으로 믿어졌던 상품이 2007년 하반기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서브-프라임 시장의 붕괴가 아니라 structured investment business 그 자체에 있다. 이미 90년대 LTCM이 붕괴할 때 structured investment business의 취약점은 뚜렷하게 노출되었다. 한 투자가의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structured asset이 다른 투자가의 포트폴리오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다양한 파생상품이 흘러 넘치는 금융 시스템으로써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다시 말해 거래의 안정성은 쌍방 모두 거래를 청산할 의사와 실행력을 보유하고 있을 때에만 보장받을 수 있다. 상품 구조의 복잡성은 하나의 상품이 다수의 다른 상품과 결합됨으로써 보통의 위험을 감소시키는 반면 포트폴리오 붕괴시 시장 비청산의 위험을 극도로 높인다)

결국, LTCM 사태 때는 뉴욕의 FRB의 주도하에 월스트리트의 메이저 플레이어들이 긴급구제금융을 실시함으로써 포트폴리오의 동반 붕괴를 막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번에는 그런 과단성 있는 결정을 할 인물이 없었다. 쉬쉬하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 붕괴의 여파를 축소하는 동안 이와 연관을 맺은 다양한 structured
asset product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사실 이 시점에서 포트폴리오 자체가 붕괴하었는지 이번 주의 구제금융으로 포트폴리오의
붕괴를 막았는지는 실적 발표가 나와봐야 확실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만약 이번 구제금융이 포트폴리오
붕괴를 막는 데 사용된 것이 아니라 계속된 연타로 시작된 대출혈을 막으려고 투입된 자금이라면 structured investment business의 붕괴로 말미암은 금융 혼란은 비극의 서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SGA와 Northern Rock,  UBS등의 유럽계 은행마저 월가의 4/4분기 실적발표 이후 엄청난 손실이 예측되고 있는 참이다)

역사는 교훈적인 동시에 반복적이다. 스티걸-글래스법이 존재하던 시기. 상업은행은 저축대부조합 파동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반면
상업은행이 붕괴하는 동안 투자은행의 제2의 전성시대가 도래했고 결국 스티걸-글래스법의 사문화로 이어졌다. 그리고 오늘날 부동산
상품에structured된 투자 포트폴리오로 쏠쏠한 재미를 봤던 투자은행은 호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세상은 돌고 돈다.

The fantasy of emerging market
랜덤워크 마피아로서는 참 명목 없는 소견이지만 1700선 후반의 주가는 근시일에 1600선이 무너질 것 같다. 1700선 초반에서 환매 시점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하겠지만 증권사는 저가매수의 호기라든지, 장기투자의 관점을 운운하며 환매할 타이밍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할 것이다. 이머징 마켓은 미국이나 유럽 시장과 디커플링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소개와 함께 말이다. 아마도 인도 시장을
가장 좋은 예로 들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기관 투자가를 중심으로 외국인 매도를 떠받칠 것이다.

하지만, 심리적 저지선인 1700은 급격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바젤2 협약의 기준을 맞추고자 배당이 높으며 안정성이 높은 알짜배기 자산을 제외한 나머지 투자를 청산하거나, 포트폴리오의 붕괴를 막기 위해, 혹은 1/4분기의 실적 개선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글로벌 IB들은 2007년 동안 이머징 마켓에서 거두어들인 수익을 실현할 필요에 쫓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약 FTSE의 붕괴(DJI나 S&P500이 아니다)로 시장이 패닉에 빠질 경우 디커플링 경향의 강화라는 사탕발림은 정말 재미없는 농담이 되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가장 나은 방법은 외국인 매도세를 끝까지 막아낼 지속적인 자금투입이겠지만 이 방법으로는 현상 유지는 가능해도 수익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개인의 처지에서 보자면 깨끗이 손을 털고 나오는 것만이 10%의 손실이 반쪽 펀드로 이어지는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다. 뭐 하지만 내 주변에야 간당간당한 월급 통장 하나만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이 대다수이니 그리 걱정할 바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The serious problem: Raising price of the commodity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금융자산 붕괴로 말미암은 내수 시장의 위축 가능성도 중요하겠지만 소리 없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농작물 가격이야말로 정부차원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콩과 밀, 옥수수. 커피 모두 25년이래 최고 가격을 기록했다.(이젠 감히 ‘로부스타같은 쓰레기 원두’라는 표현을 쓸 수 없는 수준이다) 이는 밀가루와 사료. 과자류(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두부까지)등의 직접적인 가격 상승을 유발할 것이 분명하고, 이는 다시 육류의 전반적인 가격 상승을 부추길 것이 확실하다. 전자 제품의 실질적인 가격하락과 공공 부문의 빗장이 오랫동안 감추어두고 있던 물가 정책의 실패는 이번 상승으로 확연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는 서민 경제의 직격탄을 날릴 것이 분명하다.

펀드에 여유 자금을 굴리는 사람들의 문제는 시장에 맡겨 놓아도 된다. 하지만,
자장면과 칼국수, 학교 식당을 애용하는 나 같은 가난한 학생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끔찍한 고통이 될 것이 분명하다. 더욱 나쁜
사실은 이런 경향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라는 데 있다. 식량 자원을 삼키는 거대한 블랙홀이 되어버린 중국. 미국
농업 시장의 판로가 식량 공급에서 바이오에너지 공급 등으로 다변화된 여파. 마지막으로 세계적인 기상 이변은 올해에도, 내년에도 계속될 장기적인 추세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거참 걱정이다. 두부와 짜장면을 돌려 달라!

바나나 전쟁

크루그먼씨의 국제경제학을 읽다가 <바나나 전쟁>과 조우했다. WTO 체제의 출범 이후 미국과 유럽의 대표적인 무역 분쟁으로 불리는 이 사건과 마주칠 때마다 난 학교에 입학조차 못했던 먼 옛날로 되돌아가곤 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버지와 난 시장을 걷고 있었고, 그날 따라 난 바나나 노상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네쪽들이 한 묶음에 3천원이라는 중량당 가격으로는 쇠고기보다 비쌀 그 과일이 무척이나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결국 난 아버지를 졸라 획득한 전리품이 담긴 종이봉투를 의기양양하게 집어 들었다.

하지만 수십 미터도 가지 못해 사단이 벌어졌다. 껍질을 벗기던 바나나가 땅에 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바나나의 가치를 모르지 않던 난 시장 바닥에 떨어진 바나나를 얼른 주어 들려 했다. 어린 아이가 먹을 것을 탐하는 마음에서 가 아니라 비싼 과일이 아까워서 였다. 아버지는 조용히 땅에 떨어져 더럽혀진 과일을 먹어야 할 정도로 우리가 형편없지 않으며 바나나의 가치가 아무리 높다 한들 자부심보다 높은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지만 난 말뜻을 알아 들었고 정말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나쳤다.

사실 바나나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도 바나나가 듬뿍 나오는 과일 안주를 만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이 가게주인의 손이 크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물론 그런 무의식적인 호의는 오래지 않아 바나나는 더 이상 절대 비싼 과일이 아니라는 현실적 판단에 덧칠을 당하고 말지만, 그럼에도 레드망고에 갈 때면 바나나 토핑을 얹어야 포만감이 드는 바나나에 대한 심리적 허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바나나에 대한 허기는 나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철의 장막 안에 속해 있었던 구동독인들에게 바나나란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들에게 바나나는 당간부들에게나 허락된 중남미의 사치품이었고 통일 이후 시장에 공급된 바나나는 어느 순간 정치적 재화로 그 위상을 높였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미국과 유럽간의 바나나 전쟁이 있기 전에 독일과 영국 프랑스 사이에서는 바나나 전쟁의 전초전이 벌어졌다.

카리브해의 식민지 사회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던 영국과 프랑스는 자국의 식민지산 바나나를 보호하기 위해 저렴한 중남미산 바나나에 고율의 관세를 물렸고(정확하게는 수입할당제), 독일에서는 정치적 재화로 변한 바나나의 시장 가격을 최대한 저렴하게 유지함으로써 구 동독인들의 마음을 달래야 할 정치적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영국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전초전은 관세동맹(유럽의 바나나 의정서)을 앞세운 프랑스와 영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미국과의 바나나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의 패배로 결론이 났다. 결국 오늘날의 구 동독인들은 우르과이 라운드의 타결 이후 우리가 저렴한 바나나를 먹게 된 것처럼 가장 싼 값에 마음껏 자유의 선물을 향유하게 되었다.

사실 바나나 전쟁은 무역론이나 국제경제론의 작은 글상자 하나에 불과할 정도로 그리 크게 주목 받은 사건은 아니다. 하지만 한때 쇠고기보다 비쌌던 바나나의 가격과 오렌지와 메론, 파인애플과 키위에 대한 동경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예사로운 사건이 아니다. 누가 뭐래도 난 생크림 케익 위에 올려져 있던 이국적인 과일이 선사하던 풍요로움을 상상하며 생일을 맞던 세대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기억만큼이나 자유주의 무역과 경쟁 체제가 가져다 준 선물을 늘어가는 생일 케이크의 촛대만큼이나 분명하게 느끼며 성장했다.

오늘날은 내가 시장 바닥에 떨어트린 바나나로 고민했던 그 시기에 비하자면 분명 많은 의미에서 자유화되었다. 하지만 자유화의 선물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고마워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무역의 자유화가 낳은 많은 이점들은 정치적 이유로, 혹은 사회적인 이유로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다. 무역의 자유와 경쟁 체계가 우리에게 가져다 주었던 쾌락을 기억하고 그것을 하나의 신념으로 받아들인 나 같은 사람은 오히려 별종이 되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사람들은 자유화가 가져 다 준 쾌락을 넘어서 또 다른 가치들에 눈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소외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과 쾌락의 이면을 뒷받침하는 것은 여전히 경쟁 시스템과 무역의 자유화이다. 우리가 기억하던, 기억하지 못하던.

Financial…

오늘날 금융업은 가장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산업 가운데 하나다. 아니 빠른 움직임만큼이나 흥미로운 관찰 거리를 풍부하게 제공해주는 대상이기도 하다. 환전상의 탁자에서 시작된 금융업은(혹은 징세업자-푸블리카누스-의 입찰에서 시작되었다는 관점도 있긴 하지만) 오늘날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산업이 되어버렸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현대 산업 사회는 자본의 사회이고 자본이 낳은 적자는 금융 산업뿐이라고 해도 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본의 적자인 금융 산업은 어떤 자식들을 낳았을까? 불과 1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금융 산업은 많은 자식들을 가지고 있었다. 보험업, 상업 은행, 투자 은행, 투자 운용, 증권사 등. 하지만 어느 시기부터인가 금융 산업은 왕좌를 빼앗길 거라는 예언을 받은 크로노스처럼 자식들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지난 십년 동안 인수와 합병은 광범한 범위에서 이루어졌고 90년대 초반에 존재했던 기업을 찾기 위해서는 현생 인류의 게통도보다 배는 복잡한 도표가 필요하다. 아니 왠만한 전문가가 아닌 이상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복잡해진 기업의 이름 속에서 과거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여의치 않다.

아니 여의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어렵다. 불과 십년 전에 출간 된 목록에 존재했던 financial corp.의 반은 오늘날 흔적조차 없다. 기업 수준이 아니라 영업 부문까지 시야를 넓혀보면 복잡함은 배가 된다. 기업은 버젓이 살아 있지만 영업 부문을 팔아 넘기거나 인수함으로써 내용이 달라진 기업들이 도처에서 출몰하기 때문이다.

체급 올리기 혹은 몸집 키우기
하지만 이런 복잡한 움직임에도 일정한 법칙은 있다. 일견 복잡계처럼 보이는 금융 산업에도 고전 물리학의 F=ma나 F=μmg 필적할 만한 법칙이 있다. 쉽게 말해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은 복싱에서 체급 불리기와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체급이 더 나갈수록 펀치의 세기가 강해지며 맷집도 좋아진다. Financial corp.들이 M&A를 통해 규모를 늘리는 것도 알고 보면 공격력과 맷집을 강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고육지책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Financial Corp.들에게 이런 고육지책을 강요했을까?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이기고, 가벼운 것이 무거운 것을 제압한다]란 말이 있다. 비즈니스 영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법칙가운데 하나인데 금융 산업에서만큼은 이 법칙의 절반 밖에 통하지 않는다. 빠른 것은 좋지만 가벼운 것은 적에게 제압당하기 딱 좋다. 설령 제압당하지 않더라도 경기 변동이란 거센 폭풍우 속에서 가벼운 것은 쓸려가기 십상이다.

사실 꽤나 오랫동안 다시 말해 스티걸-글래스 법이 미국의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규정한 반세기동안 금융 산업은 평화를 만끽했다. 다소간의 경기에 따른 변화는 있었지만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당시의 진폭은 웃어 넘길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주택 채권과 관련된 상업 은행의 대몰락 이후 달라졌다.

상업 은행은 그 동안 짭짤한 수입을 올렸던 주택 채권 시장의 위험성을 다시 평가했고, 주택 채권 시장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상업은행의 주력 부문인 소비금융만으로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의 분리에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슬금슬금 무너지던 양자간의 경계는 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급격하게 사라져 갔다. 신경제의 버블과 함께 투자 은행은 두둑한 수익을 거두었고, 이런 저런 방법으로 시장에 접근한 상업 은행들도 적잖은 수익을 챙겼다.

하지만 버블이 붕괴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몸집이 아닌 빠르기로 승부를 걸었던 투자 은행들은 손실을 견딜 맷집이 부족했고 투자 은행에 맷집(다시 말해 여신)을 지원했던 상업 은행들도 투자 은행들의 도산과 함께 쓰라린 손실을 보았다. 투자 은행은 기업금융 혹은 투자 금융이 높은 수익을 보장하긴 하지만 그만큼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식했고, 경기 변동에 따른 진폭을 견디기 위해서는 소비 금융이란 안전판을 보유할 필요성을 느꼈다.

상업 은행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수익성에 대한 주주들의 압력이 증가하면서 공격적인 경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여신 지원 같은 간접 투자 방식이 아니라 위험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직접 투자 방식을 고려하게 되었다. 무차별적인 몸집 불리기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

다각화와 대형화가 은행의 핵심 전략
우리 나라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의 분리 대신에 소비 금융과 기업 금융을 전문으로 하는 형식이 아닌 내용의 차이가 존재하는 은행들이 있었고 이들은 최근 10년 동안의 외환 위기와 경기 후퇴를 경험하면서 현실에 눈을 떴다. 막대한 부실 채권으로 은행들이 무너지는 상황을 보면서, 또 기업 금융보다는 소비 금융을 전문으로 했던 은행들의 높은 수익성과 건재를 보면서 은행들은 가계 금융이란 맷집을 키우기로 전략을 변경했다.

국민 은행과 장기신용은행의 M&A이후 은행들은 인수와 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열을 올렸다. M&A를 통해 고객에게 전방위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모토와 다르게 은행권의 속내는 경기 진폭을 막아줄 맷집과 수익성을 동시에 노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다시 말해 다각화와 대형화만이 살 길이라는 데 시중 은행들의 이해가 모아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비롯된다. 이런 상황 인식은 충분한데 실행 방법에는 걸림돌이 많다. 다각화와 대형화가 대세인 것은 알지만 M&A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정책과 관행, 타성적인 조직이 문제다.

정책과 관행, 타성적 조직의 삼중고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은행간의 M&A를 가로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공적 자금이다. 독자 생존이 가능할 만큼 체질이 강한 은행, 다른 은행을 인수할 만한 능력을 갖춘 은행은 지난 몇 년간의 활발한 통합에도 불구하고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이 인수할 만한 대상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정부가 대주주로 남아 있는 부실 은행들을 인수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적 자금의 투입은 시장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 선택에 가깝고, 정부 입장에서는 시장보다는 정치 논리나 여론의 향배에 관심을 기울 수 밖에 없다. 사실 이것은 지금까지 이루어진 공적 자금 투입 은행의 처리 문제에서 명백하게 들어 난다. 이른바 부실 은행의 처리 문제에 있어서 일관된 원칙이 존재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대처했을 뿐이다.

이런 예측불가능성은 국내 은행에 의한 M&A 가능성을 낮춘다. 정치적 사안으로 다루어지는 은행 문제에서 시장 지향적인 협상력을 가지고 M&A를 성사시킬 수 있는 국내 은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공적 자금 투입 은행의 처리 문제가 정치적 사안으로 다루어지는 이상 정부의 협상력도 국내 은행과 별 다를 것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제대로 된 협상력을 이용해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업은 국외 자본 뿐이다.

두 번째 문제는 관행이다. 모든 산업이 정부의 정책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어느날 일반론에 가깝다. 하지만 금융 산업의 경우 이런 일반론은 다른 산업에 비해 특수화된 일반론에 가깝다. 정책에 영향을 받을 뿐더러 다른 산업에 비해서도 더욱 크게 받는다. 정부는 법령이외에도 각종 금융감독기관을 통해 금융 산업에 폭 넓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근래 들어 정부는 관치금융이란 오명을 벗으려 노력 중이기는 하지만 관행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은행장 인선에서 아직도 정부의 입김은 무시 못할 정도로 강하며, 은행의 주주권은 걸핏하면 무시 받기 일수다.

금융과 일반 산업, 소유와 지배의 분리라는 원칙은 명백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정책 안에 내재되어 있다. 해마다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는다는 정부 정책의 메인 프레임이 변했던 적은 한번도 없다. [근본적인 대책]이 반창고 수준 이상으로 올라갔던 적도 없다. 굳어진 메인 프레임은 관행을 고착화 시키고 변화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사실 현재의 메인 프레임으로는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도 없다.(금융지주회사법은 메임 프레임의 구조 변경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내재된 원칙은 그대로다) 하지만 여전히 정책은 현재의 메임 프레임을 유지하고, 보완하려는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 변화하는 금융 산업의 흐름에 어울릴 만한 원칙의 변경은 여전히 요원한 일로 보인다.

마지막 문제는 은행 내부의 타성적인 조직 문화다. 전통적으로 은행 조직은 보수적이고 신중한 문화를 유지했다. 게다가 각 은행에 따라 고유한 조직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외부인에 대한 벽이 두터웠다. 이런 은행 내부에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조직을 개편하고 재구성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위계 서열과 지점망을 중심으로 성장한 조직 문화와 영업 전략은 사업 부문 단위로 광역화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

사실 오늘의 은행이 M&A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어려운 이면에는 내부의 조직 문제와 외부의 조직 문제가 중첩되어 있다. 내부의 지점망과 사업 부문의 조직 사이에서 벌어지는 신경전이 첫번째 이고, 두 번째는 서로 이질적인 조직 문화에서 성장한 구성원들 모두가 수긍할만한 원칙을 세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은행권의 보수적인 인사시스템은 순혈주의 인사 원칙을 오랫동안 유지했고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의 은행 시스템은 기업 금융의 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예치고객을 늘리면 수익이 늘어나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인력은 다각화와 대형화를 위한 M&A를 성사시킬 전략과 조직 문화의 전문가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은행 문화는 이런 인력들을 내부 시스템에서 키워낼 역동성이 항상 부족했다.

명백하면서도 실존하는 위협
벽두에 있는 SCB의 제일은행 인수 이후 외국계 Financial Corp.와 시중 은행간의 경쟁은 인구에 명백하고도 실존하는 위협으로 떠올랐다. 은행들은 신년사에서 공격 경영과 몸집 불리기를 경쟁적으로 외치고 있다. 하지만 표어와 다르게 올해 안에 시중 은행간의 인수합병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시중 은행에게는 표어를 현실화 시킬 인력과 자원이 없다. 지금의 시중 은행은 숨 고르기가 아직 덜 끝난 상황이다. 적어도 올 하반기에 이르러야 겨우 숨 고르기를 끝내고 확장으로 눈을 돌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숨 고르기가 끝나도 상황은 국내 시중 은행들에게 유리하게 흐를 것 같지는 않다. 명백하면서도 실존하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책과 관행, 조직의 삼중고를 극복해야 하는데 이들을 극복하고 외국계 은행과 맞붙을 무렵이면 이미 경쟁은 극도로 심화될 것이다. 평범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외국계 은행의 진출로 고금리와 낮은 수수료라는 호재를 누릴 수 있겠지만 은행의 수익성은 악화될 것이고, 지금껏 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기업의 고급 정보도 외국계 Financial Corp.에 손쉽게 유출될 것이다.

게다가 이 싸움의 끝에 공존은 없다. 공존을 위해서는 금융 시장의 과점화가 용인되어야 하고, 이것을 막기 위해서 무한 경쟁을 허용하면 국내 은행은 존폐를 보장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선진 자본 시장과의 밀접한 동조화는 경기 변동성의 낙폭을 증가시킬 것임이 분명하다. 이래 저래 상황은 어렵다. 하지만 해법은 찾는 것은 상황보다 더 어렵다.
[#M_ P.S. | 덧붙임말이 아니라 일기 수준이 되어 버렸다. |

서술을 보충할 Case와 통계자료는 아직 미입력 상태. 찾아 놓기는 했지만 당장 급한 것은 아니므로 언제 보충할지는 미지수. 다만 모든 입력이 완료될 경우 텀 페이퍼 수준으로 완성될 듯. 주와 하이퍼 텍스트를 이용한 문서로 꾸밀까 본문을 중시하는 본래의 스타일로 꾸밀까 고민 중임. 며칠 전에 출시된 Pages를 이용해 작업한 첫번째 결과물인데 사용이 편리해서 앞으로 MS Word 대신 애용할 듯 싶다.

점심 무렵 놀려온 친구는 나의 이 어이없는 취미 생활에 개탄했지만 스물 다섯이 된 이후 마음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뭐랄까?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11개월 남은 휴가가 끝나가는 것도 아쉽고,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확실히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기분이 앞서기도 한다. 해야할 일들과 배우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어린 시절, 아직 시간에 쫓기지 전에 이런 것들을 알았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무의미하게 순간의 즐거움을 쫓아 낭비했던 탕아의 삶은 부메랑이 되어 나를 덮친다.

그나저나 원철군. 알다시피 내 고민은 12분 짜리라고. 그 이상을 고민에 쏟아붓는 것은 명백한 넌센스야. 다음날 아침이면 항상 새로운 하루를 이겨낼 힘이 나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 신의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논외로 하고 말이야.

_M#]

Gresham’s & Goldsmith’s

국사 문제집을 풀다가 려말 권문세족들이 교초 때문에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보았다는 지문을 읽었다. 원조가 주원장에 의해 외몽고 지방으로 쫓겨나면서 유동성의 상당 부분을 교초에 의존하던 권문세족의 자본 유동성이 악화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재작년에 써놓았던 [그레셤의 법칙]이 떠올랐다. 어째서 잇속에 밝은 권문세족들이 그레셤의 법칙을 몰랐을까?

[#M_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그레셤의 법칙| less…|

사람들이 경제학의 법칙가운데 가장 쉽게 기억해 내는 법칙이 바로 그레셤의 법칙이다. [수요 공급법칙]과 함께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얼마 되지 않는 경제학의 법칙 가운데 하나니까 그 유명세는 따로 지적할 필요조차 없어 보인다. 사람들이 실제가치보다 액면가가 높은 저질의 화폐와 실제가치와 액면가가 같은 양질의 화폐가 있을 때, 양질의 화폐보다 저질의 화폐를 먼저 사용한다는 그레셤의 법칙. 그러나 과연 이 법칙을 최초로 내건 사람도 그레셤 본인일까?

16세기 영국의 금융가 토마스 그레셤은 런던 거래소의 설립자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엘리자베스 1세의 재정고문관이었던 그는 1558년 악화를 다시 주조하여 외국환의 지배권을 장악하려는 구상을 설명하기 여왕에게 보낸 편지 첫머리에서 “Bad money drives out good”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것을 1858년 H.D.마크로드가 [그레셤의 법칙]이라고 명명한 것.

하지만 그레셤보다 역사적으로 더 먼저 이 사실을 언급한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자연과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14세기 경제학의 일인자 니콜 오렘 주교다. 오렘은 화폐 정비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신뢰할만한 양질의 화폐는 상업에 이롭다고 말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최초로 그레셤의 법칙을 발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레셤의 법칙이 역사에 적용되었던 또 다른 사례들을 찾아보자. 로마제국은 말기에 화폐인 은화의 순도가 떨어지면서 경제적 위축으로 쇠망을 앞당겼다. 14세기 유럽에서는 백년 전쟁이 발발하여 무리하게 화폐를 찍어낸 결과 상업이 위축되기도 했고, 중국의 경우 원나라의 표준 통화인 교초의 남발로 원이 멸망하고 마는 역사적으로 지대한(?) 공헌을 한 법칙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말에 대원군은 당백전을 남발하여 당시 기축 통화였던 통보가 사라지는 체험을 하기도 했다.

또한 그레셤의 법칙은 미국의 경제사에 있어서도 매우 다양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19세기말의 은 쇼크. 당시 농민들은 은본위제를 주장했고, 상공인들은 금본위제를 주장했다. 당시 정치권은 어쩔 수 없이 금은 양본위제를 수용하고 있었는데 금과 은의 교환비율이 실제가치를 반영하지 못했다. 얼마 되지 않아 실제보다 고평가된 은화는 시장에 엄청나게 풀려나왔고,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금화는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악화인 은화가 양화인 금화를 몰아낸 꼴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사람이라면 [오늘날처럼 주화가 아닌 신용화폐 중심인 시대에 이 법칙은 무용지물이지 않느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용화폐도 이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시장에 신용도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카드결제를 계속 한다면 결국 시장은 채무불이행을 견뎌낼 수 없어 신용화폐가 악화가 되는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당신이 이러한 상황에 있다면 어떤 화폐를 쓰겠는가? 비교적 양호한 다른 화폐도구들도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신용화폐를 선택할 것이다. 또한 경기가 하락하고 있다고 판단된다면 당신은 블루칩보다도 정크 스톡(Junk Stock)을 먼저 내 버리지 않겠는가?

그레셤의 법칙은 물론 그레셤이 경제적 용어를 사용하여 법칙으로 통용되고는 있지만, 역사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체험 속에 묻어있던 이론이다. 재산을 많이 가진 귀족들도, 밭을 가는 농부들이나 장사를 하던 상인들도 모두 양화는 쌓아두고 악화로 자신들의 경제생활을 누렸을 터. [새로운 사실을 만들어 내기보다 어느 누가 먼저 그 현상을 관찰하고 이론으로 정리하여 사람들의 인식 속에 집어넣느냐]가 중요하다는 법칙의 법칙(?)을 새삼 깨닫게 된다.

_M#]
동양의 지폐나 서양의 지폐나 기본적으로는 청구권을 보장하는 증서에서 비롯되었다. 금태환이던 은태환이던 지폐는 실물 화폐로의 교환을 인정하는 증서다. 실제로 지폐의 역사는 상당 부분 상업 어음의 역사와 겹친다. 그런데 동양의 지폐와 서양의 지폐는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다.

일직부터 중앙 전제왕권의 통제 아래 있던 전매권이 청구권에 대한 반대 급부로 제공되던 동양에서는(소금과 철이 가장 대표적인 품목이었다. 국가가 필요로 한 병장기와 군량을 제공하고 이에 대한 급부로 염전이나 광석에 대한 권리를 제공했다) 왕조의 부침에 따라 지폐와 귀금속이 그레셤의 법칙을 따라 바쁘게 움직였고, 전장을 통한 상업 어름 거래와 중앙 정부에 의한 지폐 발행이 개별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근대적 은행의 발전이 상대적으로 뒤졌다.

(사실 세계 무역에서 중국은 오랫동안 사치품의 최대 수출국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중국의 귀금속 유입은 아편 전쟁 이전까지는 풍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물 대신 은화가 조세 부과의 표준 화폐로 유통되었을 정도로 중국 경제권의 귀금속 유입량은 풍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 저장성은 탁월하지만 수익률은 낮은 귀금속보다는 지폐가 모험적인 상인들에게는 더 매력적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반면 서양은 환전상의 탁자에서 시작된 환전 은행이 골드스미스의 노트를 거쳐 대체은행으로 발전했고, 종국에는 근대적은 은행을 낳았다. 개별 국가의 금속 화폐 발행은 전시대를 통틀어 꾸준하게 이루어졌지만 청구권을 지닌 지폐의 발행은 금융 귀족으로 불리는 소수의 가문이나, 상인 길드를 통해 이루어졌다. 상업 어음과 지폐의 발행이 일원화 되었던 셈이다.

[#M_ 은행의 기원. 골드스미스의 노트| less.. |

은행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금과 출금을 담당하는 텔러들과 그들 너머로 보이는 관리자 몇 명, 은색으로 반짝거리는 대형금고와 청원 경찰을 떠올릴 것이다. 물로 이것이 전혀 잘못된 이미지가 아니다. 하지만 만약 이것이 몇 백년 전의 은행을 상상했을 때의 이미지라면 이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영어로 은행을 뜻하는 [BANK]는 원래 환전상이 돈을 쌓아두던 탁자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은행의 역사는 환전상의 탁자에서 시작된다. 14세기 유럽에는 수많은 도시와 국가의 개별 통화가 있었고 원활한 상거래를 위해서는 이들 통화의 가치를 판단할 중개인이 필요했다. 이런 역할을 맡은 것이 개개인의 환전상이었고 역사는 이 시기의 은행을 환전(換錢)은행이란 말로 정의한다.

그러나 이런 개개인의 환전상에게 잊을 수 없는 시기가 찾아오게 된다. 흔히 금융귀족으로 알려진 플로렌스의 메디치가와 아우크스부르크의 푸거가 그리고 베니스의 정부는 개개인의 환전상의 행동을 전유럽적 단위로 묶음으로써 대체(代替)은행을 탄생시키게 된다.

예를 들어 파리의 A라는 상인이 런던의 B라는 상인에게 상품구입대금을 지불해야 한다면 과거에는 A가 산 넘고 강 건너 그리고 마지막으로 환전상에게 들려 화폐를 바꾸어 B에게 지불해야 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A가 파리에서 은행에 입금을 시키면 B는 런던의 은행에서 찾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간소화 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각국의 중앙은행이 가지고 있는 은행권발행과 예금 제도는 어디서 시작된 걸까? 우습게도 이것은 은행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금이나 귀금속을 전문적으로 다루던 장인(GoldSmith)이 써주던 보관증(GoldSmith’s Note)에서 유래했다.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보관증을 고액의 상품매매에 화폐대신 사용하는 기민함을 보여주면서 이들 장인들은 또 하나의 가능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골드스미스의 원리이다.

골드스미스의 원리란 무척이나 단순하다. 모든 보관증이 한꺼번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원리와 일부 보관증은 전혀 환급을 받지 않는다는 점 이 두 가지 원리를 이용하면 우리의 금세공사는 실제 보관 중인 귀금속보다 많은 액수의 보관증을 발행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금세공사는 이렇게 잉여 발행된 보관증을 가지고 사채업을 겸업했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여러분들에게 누군가가 현대의 은행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물어본다면 여러분은 전문적인 용어를 들어가며 끝없이 난해한 대답으로 상대방을 질리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몇 백년 전의 은행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물어본다면? 겁먹지 말자. 현대의 은행이나 과거의 은행이나 은행은 [전부 똑같은 원리에 의하여 움직이는 은행]일 뿐이다.

_M#]
하지만 동아시아의 국제 무역과 그레셤의 법칙은, 아니 국제 무역과 은행의 발전 과정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진화했다. 다시 교초로 돌아가자. 여몽연합군의 일본 정벌이 시작될 무렵 고려에 들어온 교초는 오래지 않아 고려의 고액 지폐로 자리 잡았다. 원나라와의 외교 사절의 접대비와 군사비 명목으로 유통되던 교초는 중국에서는 날이갈수록 실질 가치가 하락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고려에서는 통화로서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화폐의 명목 가치가 실질 가치를 앞선 그레셤의 법칙의 예외가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이 있다. 귄문세족에게는 경제적 실질 가치보다 더 중요한 정치적 명목 가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영미식 커리큘럼으로 경영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내가 고려 시대의 교초의 가치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당시 동아시아의 지폐에는 묘한 성격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조공무역과 관련된 실제 가치와 명목 가치의 괴리다. 서구인이 무역의 합리성이라 부르는 등가성의 원칙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기 전에 동아시아의 무역 원칙으로 자리잡은 것은 실질 가치보다 명목 가치였다. 조공 무역을 통해 받쳐지는 진상품과 하사되는 하사품들은 실질 가치보다 더 큰 명목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왕조의 통치력이 안정되어 있을 경우 하사품으로 받은 지폐는 곧바로 시장에서 지불 화폐로 사용되었다. 왕조의 통치력이 불안해 하사받은 지폐의 가치가 시장에서 낮게 평가 받을 경우에는 본국으로 가져와 경제적 가치 대신 정치적 명목 가치를 중심으로 사용되었다. 예컨데 상대 가치를 중심으로는 본 측면에서는 그레셤의 법칙이 충실하게 지켜졌지만 화폐 자체로 본 그레셤의 법칙에는 예외가 생긴 셈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무역 관행은 어느 나라에도 괴멸적인 피해를 주지 않은 채 오랫동안 동아시아 경제권을 묶는 가교 역할을 했다. 오늘날의 영미식 스탠다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지만 적어도 몇세기 전의 서구가 주장하던 등가성의 원칙은 등가성을 유지하기 위한 폭력과 유혈이 필연적으로 수반되었다. 실질 가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공정 무역에서 이익을 얻는 방법은 어느 한쪽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 명목 가치와 실질 가치를 구분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동아시아의 무역 관행과 비교하자면 제로섬 게임이 분명하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 무역의 표준 양식이 된 서구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모든 법칙에는 본질이 있고 상황에 따른 예외가 있는 법이다. 또한 예외 속에서도 본질은 살아 숨쉰다. 그레셤의 법칙과 골드스미스의 원리는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나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행동의 동기를 설명해주는 가장 좋은 설명이 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행동이 구체화되는 방식은 문화와 관습,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그 구체화된 행동을 그 시대 사람들이 추구하던 가치를 모르는 현대인의 가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꽤나 위험한 일이다. 그것이 사실의 문제가 아닌 가치의 문제일 경우에는 말이다.

아무튼 권문세족은 교초의 태환 정지로 유동성을 잃고 역사에서 퇴장했고, 현대는 조공무역을 봉건 관습으로 취급해 버리는 서구의 등가성 원리(물론 여기에 비교우워론과 자유무역의 이점이라는 현대적 이론이 첨삭되긴 했다.)에 지배 당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 머리 속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이제는 낯설어진 옛날을 산책하는 것은 꽤나 운치있는 일이다. 레이 황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역사에는 그것이 등장할 만한 필연적인 흐름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