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 재정정책의 우울한 그림자

정부는 다음 회계연도에서 적극적인 재정 확장 정책을 기조로 하는 일련의 예산을 발표했다. 아직까지는 국가 채무 상태가 양호하고 연관 효과가 높은 건설업을 위주로 재정 확장 정책이 수행되기 때문에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리라는 의견과 원유 및 각종 원자재 가격 상승한 상황에서의 확장 정책은 물가에 압박을 가할 뿐, 소비 심리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란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사실 이런 의견 대립에서 각자가 논거로 삼는 이유들은 모두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확장 재정 정책의 찬반자들 모두 이론적 모델로서는 흠잡을 때 없이 완벽하고 타당한 설명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리를 중요하는 내 입장에서 보자면 아무래도 반대자들의 의견이 더욱 솔깃하다. 이대로 가면 스태그플레이션이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때 늦은 확장 정책
만약 작년에 정부가 확장 정책을 사용하기로 발표했더라면 아마 난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무정책을 최선의 정책으로 삼는 정부보다는 어느쪽으로든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정부가 좋은 정부라 믿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올 1/4분기까지도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확장 정책은 너무 위험하다.

사실 작년 말과 올해 초 한국 경제가 가진 문제점은 구심점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정부와 기업, 민간의 신뢰 관계는 위험수준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었고, 정책은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적인 정책이던, 진보적인 정책이던 일관된 정책을 발표한다는 사실은 신뢰성과 방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마 작년에 재정 확장 정책이 예고 되었더라면 사람들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지만 경기 낙관론에 동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작년과 조금 다르다. 현재의 신뢰 관계는 위험 수준보다 한참 아래다. 올 초 발표된 정부의 경기 낙관론이 근거 없는 낙천주의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황이고 현재의 재정 확장 정책은 DJ시대의 확장책과 다르게 경기 전망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물가에 대한 자기 실현적 예언
사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부분이다. 정부가 확장 정책을 펴도 사람들은 실질적인 경기가 상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업자가 줄어든다거나 소비의 활성화는 어렵지만 과도한 통화 공급의 증가로 물가는 상승하리라고 내다본다, 원자재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이 최종산출물의 가격 상승을 주도하리라는 두려움. 이것은 스태그플레이션을 가장 확실하게 가져오는 자기 실현적 예언이 되고 만다.

정책보다 중요한 것은 심리적 속임수란 말이 있다. 실제 정책을 집행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심리적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면 정책을 실제로 집행하지 않아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심리적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뢰성이 중요하다.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정부의 정책을 신뢰할 수 없다면, 더욱이 못 믿는 정도가 아니라 정반대의 상황이 보다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 믿는다면 심리적 환상을 의도와는 정반대 반향으로 향하고 만다. 현재 우리의 상태가 이렇고 어떤 정책을 내놓던 간에 정책의 외부 효과가 클 것이란 전망을 뒷받침 하는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소득세 1%인하 이면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조세부담률이 해마다 늘어나면서 가계의 조세저항도 점점 커지고 있다. 지자체의 세외 수입의 연체률은 연체률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이고, 지방세나 국세의 체납률로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조세라는 지출 재원이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의 재정 확장 정책은 필연적으로 국채의 발행으로 매울 수 밖에 없다. 소국개방형 경제 체계를 지향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과도한 국채 발행은 다양한 경제적 효과를 가져온다. 그런데 이중에서 현재 우리 경제에 유익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정부는 확장정책에 이어 조세 감면 정책까지 추진하고 있다. 소득세의 1%인하 방안. 사실상 고소득층의 소비 증진을 겨냥한 정책이다.(고소득층에는 높은 한계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정률의 감세안이 선택될 경우 절세폭이 더욱 크다) 특소세의 인하 또는 면세 정책도 동일한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가처분소득을 늘린다고 해도 소비의 활성화가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일반적으로 고소득층일수록 경제 정책에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감한 만큼 자주 번복되는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감세 정책에 덜컥 소비를 늘리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다. 게다가 직접적으로 소비를 늘리지 않아도 물가 상승에 의해 소비지출액이 늘어난다면 감세 정책은 내수 진작 정책으로는 낙제감이다. 게다가 이 경우 절세폭이 작은 중산층 가계는 상대적으로 더 불평등하게 된다.

디노미네이션
개인적으로 난 디노미네이션에 대한 논의 자체는 반대하지는 않지만 시기 상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디노미네이션은 심리적인 영역에서만큼은 물가가 하락한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준다. 종래의 화폐 단위보다 작은 단위의 화폐로도 구매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노미네이션은 실제 물가를 올린다. 고액의 화폐 단위에서 세분화 되어있던 제품 가격이 디노미네이션 과정에서 상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액권 발행은 어떨까? 고액권 발행은 일반적으로 화폐의 유통 속도를 증가시키는 작용을 한다. 소비의 편의성을 높이고 이것은 상품 소비를 늘린다. 물가 상승이라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디노미네이션만큼 높은 메뉴 비용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고액권 발행은 충분한 논의를 거쳤기에 도입의 거부감이 크지 않지만 디노미네이션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진지하게 논의된 적이 없다.

사실 디노미네이션의 또 다른 표현은 화폐 개혁이다. 화폐 개혁은 장롱 예금을 활성화 시키는 수단으로 혹은 재정 적자나 부채를 평가 절하 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다. 하지만 효과가 확실한 만큼 부작용과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좀처럼 시행되지 않았던 제도다.

그런데 문제의 현재 우리의 상황이다. 현재의 경제 시스템이 화폐 개혁이 필요할 정도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 없이 단지 달러나, 유로에 비해 화폐 단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개혁을 추진하기에는 경제의 불안정성이 너무 크다. 평화로운 시기, 안정된 경제 상황에서 채택해도 많은 비용과 혼란을 감수해야 하는 정책을 요즘처럼 경제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 성급하게 도입하려는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

문제는 신뢰성이다
정책의 성공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성이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좀처럼 지켜지지 않은 원칙인데 현재의 정부는 신뢰성에서 만큼은 낙제다. 일관성 없는 정책. 상황에 따라 바뀌는 정도를 넘어 오늘의 정책이 다음 분기에 유지될지조차 불분명하다.

해외의 유명 이코노미스트들은 한국의 경기 침제가 일본의 90년대처럼 극심한 불황으로 점철되지 않겠지만 현재의 침체 상태가 꽤나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 예측한다. 무언가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이 나타나 경제를 견인하지 않는 한 장기 침체를 피하기란 어렵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기도 어렵지만 설령 적절한 패러다임이 나타나도 요즘 같은 엇박자 상황에서는 효율적인 시스템 재편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경제나 정치나 인간 관계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간의 이해가 얼마나 맞아 떨어지느냐가 아니라 상대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장 밑바탕이 되는 신뢰성에 대한 논의는 생략한 채 무리한 정책 남발로 자충수를 두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혹은 내일까지…

투기 & 짜릿함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프랑스 총리였던 클레망소는 노쇠한 몸에도 불구하고 총탄이 날아다니는 최전방 전선을 시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혹자는 이를 보고 현장 감각을 중요시하는 정치인이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전방을 시찰하는 클레망소의 표정이 어린아이처럼 즐거웠다는 사실과 군사협력 문제로 프랑스를 찾은 젊은 처칠에게 그가 속삭였다는 「이 얼마나 짜릿한가!(Quel comment deliceux!」를 위의 일화에 끼워 넣고 보면 의외의 모습이 드러난다. 정치인으로써 많은 격랑 겪은 그조차도 남몰래 전쟁이 주는 짜릿함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짜릿함이란 감정은 무엇일까? 증시가 예상외로 많이 오른 날 증권 객장을 찾아본 사람이라면 짜릿함의 정체에 관하여 어느 정도 감을 잡을 것이다. 자신이 투자한 종목이 상한가를 쳤을 때 혈관 속을 타고 도는 기묘한 흥분을 느껴본 적이 있어본 사람이라면 아예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의외의 결과를 얻어낼 때 느끼는 감정, 이것이 바로 짜릿함의 정체다. 그렇다면 투기와 짜릿함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사람들 대부분은 왜 투기를 하느냐는 질문에 이른바 대박이 가져다 줄 경제적 여유를 답으로 내곤 한다. 물론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말이다. 하지만 도박사들처럼 대다수 투기꾼들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주 소수만이 투기로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행운이 자신에게 찾아올 가능성보다는 지나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투기꾼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투기를 한다. 대박을 쫓는다는 애매한 대답으로 짜릿함을 쫓는 자신의 감정을 속인 채 말이다.

튤립 버블과 사우스 시 버블, 미시시피 버블은 투기의 교과서라 불릴 정도로 많은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버블은 끊임없이 부풀었다가 꺼지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몇 백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버블과 투기 짜릿함은 어떤 함수로 묶여 있을까?

먼저 네덜란드 튤립투기를 살펴보자. 대항해 시대 포르투갈이 누리던 독점적 향료무역권을 빼앗은 네덜란드인들은 최고의 경제적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먼바다에서 돌아오는 배들에는 짜릿한 전투와 모험의 흥분 대신 상인들의 냉정한 손익계산이 실려 있었다. 항구에 입항하는 선원들의 이야기에 흥분하던 군중은 새로운 무언가를 원했다. 경제적 안정과 짜릿함에 대한 갈망이 절묘하게 맞물려 돌아가면서 튤립에 대한 투기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18세기 초 영국에서 등장한 사우스시 버블 또한 짜릿함과 무관하지 않다. 네덜란드와의 해상패권 다툼에서 승리한 영국은 대서양을 자기들의 바다로 만들었고 의회정치의 발달로 국민 개개인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기존의 계급사회가 빠르게 무너지고 그 빈틈을 메운 시민계층들은 새로운 흥분을 원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흥분에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이 사우스시 사가 발행한 주식이었다. 당시 한 수필가가 남긴 「우리는 미친 시대에 살았다. 나 역시 이것이 얼마나 허황된 꿈이었던가를 알고 있지만 짜릿함의 유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라는 회고는 이 시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다.

투기 붐이 조성되었던 당시의 유럽사회와 우리 사이에는 몇 백년이라는 시간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투기 한가지를 놓고 보면 이런 시간차가 무색해진다. 여전히 사람들은 짜릿함을 갈망하고 있다. 개발 시대에는 부동산 투기를 했고 성장시대에는 온 국민이 주식에 투자를 했으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로또를 산다. 대다수 사람들은 투기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짜릿함이 주는 행복감을 위해서라면 이런 위험성을 손쉽게 받아들인다. 어쩌면 짜릿함에 대한 기회비용이라고 자신을 납득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투기에 대한 우려를 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말쑥한 옷차림과 온갖 편리한 도구들로 넉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대인들에게조차 분명 부족한 것은 있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몇 천년 전 조상들이 자연이라는 거친 위험과 싸우면서 터득했던 이 기묘한 흥분감에 목말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M_ 출처| 나 역시 투기를 꿈꾸기는 하지만 |
사실 이 글은 작년 2월에 쓴 글이다. 당초 게재되었던 곳은 예전에 일하던 학교 신문사의 특정 지면. 기사에 대한 책임과 권리는 신문사와 발행인에게 귀속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지만 어쩐지 오늘만큼은 불문율을 어기고 싶다.

처음 이 글을 쓴 때로 부터 1년 반이 지났다. 이 글을 쓸 무렵에는 부동산이 최고의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지금은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빠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무언가에 투자를 하고 싶어 한다. 심지어 요즘처럼 유가가 요동치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어딘가에 투자를 하고 싶어한다. 변동성이 큰 만큼 투자 자체가 매우 모호하고 위험한 현 순간에도 말이다._M#]

삼각 무역

대항해 시대와 삼각 무역
어린 시절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코에이사의 [대항해시대]가 유행처럼 번져나가던 시기가 있었다. 그 유행에서 나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꽤 오랫동안 [대항해시대]의 팬이 되었던 것 같다. 아무튼 십대 소년이던 당시의 나를 가장 매혹시키던 단어는 삼각 무역이란 단어였다.

보다 수익성이 높은 무역 루트를 만들기 위해 백과사전을 뒤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같다. 역사에 기록된 무역로를 재현하기 위해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역사에 기록된 무역로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왜 였을까?

우선 학교에서 배우는 무역의 기본 가정으로 돌아가 보자. 무역의 기본 가정은 두개의 국가와 두 가지 상품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두 가지 상품은 양국 모두에서 필요하나 상품이 산출되는 나라는 한 나라뿐이다. 따라서 양국은 교역을 통해 두 가지 상품을 모두 소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필요가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교역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상대국이 가지고 싶어하는 상품 A가 있어야 하며, 상대국 역시 우리가 가지고 싶어하는 상품 B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세계에서 이런 조건이 간단하게 만족되는 경우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다. 한 국가가 필요로 하는 상품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한 국가가 특화를 가지고 산출해 낼 수 있는 상품이 적을수록 무역의 연결 고리는 매우 복잡해 진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교훈은 따로 있다. 교역을 하자면 상대에게 대가로 건낼 상품이 필요하다. 자기 것이라면 좋겠지만 가진 것이 없다면 빼앗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에게 대가로 건낼 무언가가 있었야 한다. 간단하지만 위의 조건은 오늘날의 세계를 설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건을 충분히 숙지했으면 [대항해시대]로 혹은 역사 속으로 돌아가자.

[#M_ 역사에 기록된 삼각 무역들 | 클릭하면 사라집니다 | 상업 국가로 알려진 베니스가 이슬람이 취급하고 있던 향신료를 구입하기 위해 수출했던 산물은 목재와 노예였다. 베니스의 뒤쪽으로 펼쳐진 광활한 숲은 벌목 되었고, 달마티아(오늘날의 유고연방) 지방의 주민들은 노예로 이집트 시장에 팔렸다.

훗날 배후지의 목재가 사라지고 달마티아 지역이 카톨릭으로 편입된 이후에는 흑해로 목재와 노예의 공급원을 옮겼다. 이때 베니스가 흑해의 상인들에게 대가로 지불한 것은 베니스 본국에서 생산되던 소금과 레이스, 유리제품을 유럽에 판매한 대가로 얻은 곡물이었다. 이 단순한 삼각 무역은 맘루크 왕조가 오스만 투르크에게 무너질 때까지 이백년 동안 상업 국가 베니스의 기초가 되었다.

하지만 [대항해시대]에는 노예나 목재 같은 현실적인 무역 상품을 다루지는 않는다. 지역적 편재를 분명하게 갖는 특산품을 제외하면 [대항해시대]가 다루는 세계는 분명 역사와 다르다. 현대인의 감수성으로는 쉽게 인정하기 힘든 노예와 약탈이라는 요소를 제외하고 과거의 무역을 설명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실제 역사에 기록된 또 다른 삼각 무역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19세기 이전까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삼각 무역은 중국과 아메리카, 유럽을 잇는 차와 은의 삼각 무역이다.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채광된 은은 태평양을 건너 중국산 차의 대금으로 치루어 졌고, 이렇게 사들인 차는 유럽으로 옮겨져 소비되었다. 아메리카 식민지의 은이 말라갈수록, 다시 말해 인디언들을 쥐어 짜던 유럽인들의 손이 메말라 갈수록 유럽에서의 은유출 속도는 빨라졌고, 당시 해상 무역을 장악하고 있던 영국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19세기에 접어 들면서 동인도회사가 내린 특단의 조치가 바로 인도의 아편 수출이다. 아편의 수출량이 늘어날수록 인도의 대중국 무역흑자의 규모는 늘어났으며, 영국은 인도 시장을 지배함으로써 중국에서 거두어들인 거대한 부를 유럽으로 이전해 나갔다. 보다 많은 중국인들이 아편에 중독될수록 차와 은은 유럽으로 빠져나갔고, 이는 보호주의 무역 장벽에 부딪쳐 아메리카와 유럽에서 [물을 먹고 있던 영국]을 구해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_M#]
삼각 무역의 현대적 함의
교역 자체만 놓고 보면 교역은 영합 게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상대편에게서 상품을 사오기 위해서는 무언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상품과 그에 대한 대가의 합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교역이 경제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한다. 왜일까? 영합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교역이 경제를 성장시킨다고 생각할까?

사실 교역 그 자체는 경제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아니다. 교역을 통해 사회가 누릴 수 있는 자원 절약과 후생 증진이 바로 경제를 성장시키는 진짜 원동력이다. 교역은 사회가 최적 비용으로 생산해 낼 수 없는 재화를 소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단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지 공짜로 얻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비록 우리 사회가 생산해 내는 비용보다는 저렴하지만 교역 상대국이 생산하는 비용보다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제법 비싼 상품이다. 하지만 과거의 삼각 무역은 위에서 언급한 영합 게임에서 벗어난 가속 페달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바로 폭력과 약탈을 통한 공짜 교역과 이를 유지 시킨 인간의 욕망이다.

십대 소년에게 삼각 무역이란 단어는 광활한 바다를 배경으로 활약하던 무역상들을 연상시키는 멋진 단어였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십대 중반의 청년에게 삼각 무역은 명과 암을 동시에 지닌 기이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역사에 기록된 삼각 무역이 폭력과 희생을 동반했다는 사실은 너무 명확해 보인다. 베니스는 슬라브인들을 노예로 팔아 해상 제국을 건설했고, 스페인은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을 씨를 말림으로써 범지구적인 삼각 무역을 그려내었다. 그리고 영국은 중국의 아편 중독이라는 극약 처방을 통해 산업 혁명의 전주 노릇을 톡톡히 할 수 있었다.

현대인의 시선으로 보자면 폭력과 희생이 동반된 당시의 무역 구조에 선뜻 동의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가정을 더해보면 삼각 무역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하게 된다. 노예도 아편 중독도, 폭력도 희생도 없는 인도주의적 무역 관행이 세계를 지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소비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면, 산업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일상 속에서 누리는 다양한 서비스와 상품들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늘날의 세계는 정적인 고요를 유지하는 재미없는 세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삼각 무역 자체가 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가 잦았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희생을 토대로 혜택을 누리는 것은 국경을 초월한 미래의 우리들이다. 사실 현대의 삼각 무역은 과거의 삼각 무역처럼 암울한 분위기를 풍겨내지 않는다. 폭력도 없고, 희생도 없다.(물론 가시적으로만 없다는 뜻이다. 내부 구조적으로는 여전히 존재한다) 어쩌면 너무나 복잡하게 얽힌 현대의 교역 구조로 볼 때 삼각 무역이라는 단어 자체가 고어의 범주에 속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백 년 전 삼각 무역을 태동 시켰던 기본 조건만은 여전히 유효하다. 물건을 사들이기 위해서는 팔 무엇이 필요하며, 그마저 없으면 교역에서 제외된다는 뜻이다. 오늘날 각 국이 경쟁적으로 전략 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따지면 팔 무엇인가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게다가 없으면 빼앗으라는 법칙도 그대로 적용된다. 물론 과거 같은 일방적인 약탈과 폭력을 보기란 조금 어려운 일이 되었지만 다른 형태로 변신한 약탈과 폭력은 여전히 교역을 유지하는 일부분이다.

the World that trade created – Intro

마이너리티가 되어버린 무역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긴 하지만 [무역]이란 단어와 조우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꽤나 만나기 힘든 단어지만 여차해서 만나기라도 하면 실질적인 의미의 무역를 다루기 보다는 개념적 차원의 무역을 다루는 것이 보통이다. 일부 학교에는 여전히 무역학과가 남아 있긴 하지만 무역이라는 화두는 경영쪽에서만큼은 마이너리티로 전락했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꽤나 좋은 커리큘럼으로 구성된 학교의 수강 편람을 뒤져봐도 무역이나 교역에 관련된 과목은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사실 무역이 커리큘럼에서 사라진 이유는 다른데 있다. 상품 거래로 한정되었던 국가간의 교역이 이제는 생산 요소 거래로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무역론에 국제 생산론과 국제 금융론, 국제 전략론과 국제 재무론이 가미되었고, 그것이 이제는 국제 경영론이란 하나의 학문으로 분화되었다.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에 되려 무역이란 단어가 낯설어진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실제로 내 친구들 가운데 신용장과 무역원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매우 소수이다. 상품 수송 방법에 따른 회계 처리 기준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국제 거래를 위한 스왑과 선물 전략에 달통한 그네 들이지만 신용장하면 크레딧 카드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마스터나 비자 카드로 구매를 하고 DHL이나 UPS로 배달 받는 오늘의 세계에서는 차라리 모르는 것이 약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미쳐 알지 못했던 것
휴학을 하기 전까지 난 학교 신문사에서 한국의 1세대 기업인들로 불리는 창업자 그룹에 대한 기사를 전담하고 있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30년대부터 65년까지의 기업들의 행적을 탐구했고 그 과정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에 한가지는 전쟁과 자유당 정권, 보릿고개로 정의되었던 50년대가 60년대보다 되려 더 자유로운 무역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쪼개지기 전까지 한국 기업들은(물론 아주 소수였다) 중국과 티베트, 만주와 연해주, 일본까지 이어지는 영업망을 구축하고 있었고, 당시의 거래는 일반 시장 거래와 무역의 기묘한 비율로 혼합되어 있는 것이었다. 일부 기업들은 곡물의 선물거래시장(미두)을 이용해 오늘날의 신용장과 유사한 기능을 이용하기도 했던 것 같다.

심지어 전쟁이 한참이던 50년대 초반. 부산의 국제시장에서 거래되었던 목록의 화려함은 오늘에 뒤지지 않는다. 일본과 홍콩, 그리고 부산을 연결하는 무역 루트는 당시 최고의 융성을 자랑하고 있었고, 사업한다는 사람치고 일본과의 밀무역이나, 각종 선물 거래에 손을 대지 않았던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것은 단지 흥미로운 사실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의 무역만큼이나 과거의 무역도 화려하고 재미난 소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단초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잘 교육 받은 점잖은 학자들이 모르는(다시 말해 수리적으로 분석이 불가능한) 또 다른 매커니즘이 만들어 낸 숨겨진 세계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조금씩 또렷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포스팅 공고
2002년 가을부터 시작된 나의 믿음은 작년 봄을 거치면서 점점 구체성을 띠어갔다. 현대적 경영 매카니즘을 토대로 교육 받은 우리가 그 존재를 이해하지 못했던 세계를 설명할 단초가 되는 도서 목록을 작성했고, 어쩌면 새로운 칼럼으로 독립시키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도 했다. 상당히 많은 재량권이 주어졌던 신문사의 편집 방향을 토대로 볼 때 상황은 낙관적이었다. 인생 최대의 태클이라는 병역 문제로 휴학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휴학과 귀향, 훈련소와 시험, 혼미해진 정신 상태와 게으름은 당초 계획을 일년이나 뒤로 미루어 버렸다. 7월에 들어서야 노트북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던 기획서를 찾아내었고 대강의 색인도 머리 속에서 완성되었다. 할 일이 넘쳐나는 올 한해지만 애인도, 궁벽한 시골이라 나를 유혹할 것도 없는 현재야 말로 [유희]를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기인 것 같다. 지금하지 못하면 후회하게 될 거란 예측이 결심에 방아쇠를 당기기는 했지만 말이다.

다음 포스팅은 [the World that trade created- 삼각 무역]이란 제목으로 포스팅 될 예정입니다.

컨설팅펌에 대한 단상

대학에 처음 입학할 당시에 가고 싶던 직장은 컨설턴트였던 것 같다. 학교신문사에서 수습 기자로 일하면서 대부분의 컨설팅 펌들의 설명회는 다 들어간 듯 싶었는데 그 당시 나의 솔직한 감상은 정말 멋있다는 생각뿐이었다. 검정 색 오피스 슈트도 멋있었고, 업무 분야의 다양함과 컨설턴트들이 지닌 당당함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보였던 듯도 싶다. 단지 컨설턴트가 되는 것을 대학 시절의 목표로 삶는다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리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기자 신분증을 이용해 리셉션 테이블에서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면서 컨설턴트에 대한 환상이 조금씩 깨진 것 같다. 당시 설명회에 나온 컨설턴트들은 주로 BA였는데 대화를 통해서 파악한 그들의 일은 소위 [딱 갈이]로 불리는 제록스 머신의 휴머노이드 형태였다. 번역과 자료 준비. 복사(카피& 페이스트 포함)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으면 입사도 어렵다는 그런 직장에서 하는 일이 보통 직장의 1.5.배의 연봉을 받으면서 하는 일이 겨우 그런 일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어느날 Bain&Co.의 AC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잡았던 듯 싶다. 어느 정도 컨설팅 펌 특유의 분위기에 익숙해진 난 단도직입적으로 3년 후의 전망에 대해서 물어봤다. [베인에서 3년 뒤에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한참을 머뭇거린 끝에(달변인 컨설턴트들이 할말을 찾아 머뭇거린 사실 자체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가 한 대답은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었다.

회사에서 보내주는 MBA다녀와서 정식 컨설턴트가 된다면 좋겠지만 가능성이 없다면 일단 이직을 고려하겠죠. 따로 MBA를 다녀와서 AC가 아닌 정식 컨설턴트로 다시 지원하는 방법도 있구요. 제가 알기로는 AC 경력자를 우대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거든요.

사실 결정적으로 컨설턴트라는 직업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것은 두 가지 사건을 통해서 였다. 취재차 어떤 모임에 참석했다가 대기업의 임원인 어느 선배 분이 하는 말을 듣게 되었는데 그 분의 말을 듣는 순간 비즈니스 세계의 냉혹함에 치를 떨었던 듯도 싶다.

컨설턴트? 나도 MBA를 다녀왔지만 MBA에서 배우는 태반은 어떻게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가에 대한 요령이라고. 알량한 MBA하나 믿고 현장 비즈니스가 뭔지도 모르는 새파란 애송이들이 프로세스를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보면 웃음 밖에 안 나와. 전략 팀에서 몰라서 손을 안 댔겠어. 실행 여건이 안되니까 주저하고 있던 것이지.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어떻게 실행 여건을 만들어 내느냐는 문제 아니겠나? 요즘 생각하면 컨설팅펌에 오더를 주는 것 자체가 일종의 tax같아. Financing과정에서 어느 컨설팅 펌에서 다녀갔다고 하면 대체로 후한 평가를 주니까 말이야. 일종의 name value를 구입하는 것인 것 같기도 하고…

두 번째 충격은 M사 서울사무소에서 실시한 한국의 여성 인력에 대한 리서치 결과였던 것 같다. 파이낸셜 플래너 혹은 보험 설계사를 한국 내 여성 고급 인력들이 가장 많이 진출한 분야로 진단을 했는데 한국계 미국인인 그 컨설턴트의 발표를 듣는 순간. 비웃음을 참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여자 친구들에게 보험설계사가 되어 보는 것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아마 맞을지도 모르겠지. 어쩌면 그날부로 인간 관계가 종언을 고할지도 모른다고…]

저 사람은 여성 고급 인력의 범위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 것일까? 진지하게 묻고 싶어졌다. 영어 발음이 매끄러웠다면, 아니 주변에 퍼스트 랭귀지가 영어인 친구 하나만 있었더라도 틀림없이 질문 했을 것이다. 뒤에서 지속적으로 압력을 넣고 있는 교수님을 무시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사실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블랙 슈트로 몸을 감싼 그 여성 컨설턴트들의 능력에 심각한 회의가 든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최고 학부를 나왔을 텐데 말이야. 어째 저렇게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것일까? 아마 저 보고서를 손에 든 여성부 이사관은 M사도 별 것 없다고 중얼거리겠지. 잘못된 자료 해석으로 내린 엉망 진창인 결론이니까 말이야]

[#M_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습니다. Click!!| 어디까지나 사견입니다. |
지금까지의 글을 흐름으로 볼 때. 내가 컨설턴트들에 대해 부정적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부정적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컨설턴트들은 일명 외국계 전략 컨설팅 펌과 그곳에서 일하는 BA에 대한 회의다. IT영역이나, CRM, ERP와 식스 시그마와 실무 영역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하부 프로세스에 대한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진짜 컨설팅 펌들을 비난할 의도는 전혀 없다.

학교를 다니면서,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고, 존경 받는 경영자들에 대해 분석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전략 프로세스와 운영 프로세스, 그리고 인력 프로세스만큼은 절대 아웃소싱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들 프로세스도 어느 정도 컨설팅이 가능하겠지만 기업의 핵심 프로세스인 이 세 가지 영역은 기업의 경영진이 심사 숙고하고 고민할 문제다. 어느 정도 도움을 받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원칙적으로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제3자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 나의 소소한 결론이었다.

메임 프레임의 전략 계획을 짜내는 수준은 일류급이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길 하부 프레임과 상세한 매뉴얼 작성에는 어설픈 것이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전략 컨설팅펌이었다. 그 기업 특유의 인력 프로세스와 운영 프로세스에 정통하지 못한 사람들이 내놓은 전략의 한계를 뼈저리게 보여주었던 것이 바로 그들이다. 생각하는 법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을 리포트로 만들어 던져 주었던 것이 과거 그들이 모여주었던 [일의 방식]이었다.

이런 생각의 토대가 된 것은 고객의 order에 수익이 달린 service firm인 주제에 무척이나 오만했던 과거와 진짜 실적보다 컨설턴트들의 화려한 경력으로 포장된 Halo Effect를 주영업력으로 삼은 것에 대한 불신일지도 모르겠다.(물론 한국만의 특수 상황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글을 쓰고 있지만 현재의 내 경력이 내가 그렇게 비아냥거리는 전략 컨설팅 펌에 들어가기에는 한참이나 미달이란 사실은 솔직하게 인정한다. 주변 선배 중에 컨설턴트가 없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친구들 가운데 상당수는 컨설턴트를 직업으로 선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불신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최소한 한국에서 활동한 컨설팅 펌들이 지금껏 본분을 망각했다는 내 생각에 딴지를 걸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나 역시 제대로 된 컨설팅 펌을 세우고 싶다던 어떤 이의 원대한 꿈에 동조하고 있는 것인지도…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