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ncial…

오늘날 금융업은 가장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산업 가운데 하나다. 아니 빠른 움직임만큼이나 흥미로운 관찰 거리를 풍부하게 제공해주는 대상이기도 하다. 환전상의 탁자에서 시작된 금융업은(혹은 징세업자-푸블리카누스-의 입찰에서 시작되었다는 관점도 있긴 하지만) 오늘날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산업이 되어버렸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현대 산업 사회는 자본의 사회이고 자본이 낳은 적자는 금융 산업뿐이라고 해도 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본의 적자인 금융 산업은 어떤 자식들을 낳았을까? 불과 1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금융 산업은 많은 자식들을 가지고 있었다. 보험업, 상업 은행, 투자 은행, 투자 운용, 증권사 등. 하지만 어느 시기부터인가 금융 산업은 왕좌를 빼앗길 거라는 예언을 받은 크로노스처럼 자식들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지난 십년 동안 인수와 합병은 광범한 범위에서 이루어졌고 90년대 초반에 존재했던 기업을 찾기 위해서는 현생 인류의 게통도보다 배는 복잡한 도표가 필요하다. 아니 왠만한 전문가가 아닌 이상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복잡해진 기업의 이름 속에서 과거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여의치 않다.

아니 여의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어렵다. 불과 십년 전에 출간 된 목록에 존재했던 financial corp.의 반은 오늘날 흔적조차 없다. 기업 수준이 아니라 영업 부문까지 시야를 넓혀보면 복잡함은 배가 된다. 기업은 버젓이 살아 있지만 영업 부문을 팔아 넘기거나 인수함으로써 내용이 달라진 기업들이 도처에서 출몰하기 때문이다.

체급 올리기 혹은 몸집 키우기
하지만 이런 복잡한 움직임에도 일정한 법칙은 있다. 일견 복잡계처럼 보이는 금융 산업에도 고전 물리학의 F=ma나 F=μmg 필적할 만한 법칙이 있다. 쉽게 말해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은 복싱에서 체급 불리기와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체급이 더 나갈수록 펀치의 세기가 강해지며 맷집도 좋아진다. Financial corp.들이 M&A를 통해 규모를 늘리는 것도 알고 보면 공격력과 맷집을 강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고육지책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Financial Corp.들에게 이런 고육지책을 강요했을까?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이기고, 가벼운 것이 무거운 것을 제압한다]란 말이 있다. 비즈니스 영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법칙가운데 하나인데 금융 산업에서만큼은 이 법칙의 절반 밖에 통하지 않는다. 빠른 것은 좋지만 가벼운 것은 적에게 제압당하기 딱 좋다. 설령 제압당하지 않더라도 경기 변동이란 거센 폭풍우 속에서 가벼운 것은 쓸려가기 십상이다.

사실 꽤나 오랫동안 다시 말해 스티걸-글래스 법이 미국의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규정한 반세기동안 금융 산업은 평화를 만끽했다. 다소간의 경기에 따른 변화는 있었지만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당시의 진폭은 웃어 넘길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주택 채권과 관련된 상업 은행의 대몰락 이후 달라졌다.

상업 은행은 그 동안 짭짤한 수입을 올렸던 주택 채권 시장의 위험성을 다시 평가했고, 주택 채권 시장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상업은행의 주력 부문인 소비금융만으로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의 분리에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슬금슬금 무너지던 양자간의 경계는 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급격하게 사라져 갔다. 신경제의 버블과 함께 투자 은행은 두둑한 수익을 거두었고, 이런 저런 방법으로 시장에 접근한 상업 은행들도 적잖은 수익을 챙겼다.

하지만 버블이 붕괴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몸집이 아닌 빠르기로 승부를 걸었던 투자 은행들은 손실을 견딜 맷집이 부족했고 투자 은행에 맷집(다시 말해 여신)을 지원했던 상업 은행들도 투자 은행들의 도산과 함께 쓰라린 손실을 보았다. 투자 은행은 기업금융 혹은 투자 금융이 높은 수익을 보장하긴 하지만 그만큼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식했고, 경기 변동에 따른 진폭을 견디기 위해서는 소비 금융이란 안전판을 보유할 필요성을 느꼈다.

상업 은행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수익성에 대한 주주들의 압력이 증가하면서 공격적인 경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여신 지원 같은 간접 투자 방식이 아니라 위험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직접 투자 방식을 고려하게 되었다. 무차별적인 몸집 불리기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

다각화와 대형화가 은행의 핵심 전략
우리 나라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의 분리 대신에 소비 금융과 기업 금융을 전문으로 하는 형식이 아닌 내용의 차이가 존재하는 은행들이 있었고 이들은 최근 10년 동안의 외환 위기와 경기 후퇴를 경험하면서 현실에 눈을 떴다. 막대한 부실 채권으로 은행들이 무너지는 상황을 보면서, 또 기업 금융보다는 소비 금융을 전문으로 했던 은행들의 높은 수익성과 건재를 보면서 은행들은 가계 금융이란 맷집을 키우기로 전략을 변경했다.

국민 은행과 장기신용은행의 M&A이후 은행들은 인수와 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열을 올렸다. M&A를 통해 고객에게 전방위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모토와 다르게 은행권의 속내는 경기 진폭을 막아줄 맷집과 수익성을 동시에 노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다시 말해 다각화와 대형화만이 살 길이라는 데 시중 은행들의 이해가 모아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비롯된다. 이런 상황 인식은 충분한데 실행 방법에는 걸림돌이 많다. 다각화와 대형화가 대세인 것은 알지만 M&A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정책과 관행, 타성적인 조직이 문제다.

정책과 관행, 타성적 조직의 삼중고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은행간의 M&A를 가로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공적 자금이다. 독자 생존이 가능할 만큼 체질이 강한 은행, 다른 은행을 인수할 만한 능력을 갖춘 은행은 지난 몇 년간의 활발한 통합에도 불구하고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이 인수할 만한 대상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정부가 대주주로 남아 있는 부실 은행들을 인수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적 자금의 투입은 시장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 선택에 가깝고, 정부 입장에서는 시장보다는 정치 논리나 여론의 향배에 관심을 기울 수 밖에 없다. 사실 이것은 지금까지 이루어진 공적 자금 투입 은행의 처리 문제에서 명백하게 들어 난다. 이른바 부실 은행의 처리 문제에 있어서 일관된 원칙이 존재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대처했을 뿐이다.

이런 예측불가능성은 국내 은행에 의한 M&A 가능성을 낮춘다. 정치적 사안으로 다루어지는 은행 문제에서 시장 지향적인 협상력을 가지고 M&A를 성사시킬 수 있는 국내 은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공적 자금 투입 은행의 처리 문제가 정치적 사안으로 다루어지는 이상 정부의 협상력도 국내 은행과 별 다를 것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제대로 된 협상력을 이용해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업은 국외 자본 뿐이다.

두 번째 문제는 관행이다. 모든 산업이 정부의 정책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어느날 일반론에 가깝다. 하지만 금융 산업의 경우 이런 일반론은 다른 산업에 비해 특수화된 일반론에 가깝다. 정책에 영향을 받을 뿐더러 다른 산업에 비해서도 더욱 크게 받는다. 정부는 법령이외에도 각종 금융감독기관을 통해 금융 산업에 폭 넓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근래 들어 정부는 관치금융이란 오명을 벗으려 노력 중이기는 하지만 관행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은행장 인선에서 아직도 정부의 입김은 무시 못할 정도로 강하며, 은행의 주주권은 걸핏하면 무시 받기 일수다.

금융과 일반 산업, 소유와 지배의 분리라는 원칙은 명백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정책 안에 내재되어 있다. 해마다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는다는 정부 정책의 메인 프레임이 변했던 적은 한번도 없다. [근본적인 대책]이 반창고 수준 이상으로 올라갔던 적도 없다. 굳어진 메인 프레임은 관행을 고착화 시키고 변화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사실 현재의 메인 프레임으로는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도 없다.(금융지주회사법은 메임 프레임의 구조 변경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내재된 원칙은 그대로다) 하지만 여전히 정책은 현재의 메임 프레임을 유지하고, 보완하려는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 변화하는 금융 산업의 흐름에 어울릴 만한 원칙의 변경은 여전히 요원한 일로 보인다.

마지막 문제는 은행 내부의 타성적인 조직 문화다. 전통적으로 은행 조직은 보수적이고 신중한 문화를 유지했다. 게다가 각 은행에 따라 고유한 조직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외부인에 대한 벽이 두터웠다. 이런 은행 내부에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조직을 개편하고 재구성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위계 서열과 지점망을 중심으로 성장한 조직 문화와 영업 전략은 사업 부문 단위로 광역화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

사실 오늘의 은행이 M&A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어려운 이면에는 내부의 조직 문제와 외부의 조직 문제가 중첩되어 있다. 내부의 지점망과 사업 부문의 조직 사이에서 벌어지는 신경전이 첫번째 이고, 두 번째는 서로 이질적인 조직 문화에서 성장한 구성원들 모두가 수긍할만한 원칙을 세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은행권의 보수적인 인사시스템은 순혈주의 인사 원칙을 오랫동안 유지했고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의 은행 시스템은 기업 금융의 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예치고객을 늘리면 수익이 늘어나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인력은 다각화와 대형화를 위한 M&A를 성사시킬 전략과 조직 문화의 전문가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은행 문화는 이런 인력들을 내부 시스템에서 키워낼 역동성이 항상 부족했다.

명백하면서도 실존하는 위협
벽두에 있는 SCB의 제일은행 인수 이후 외국계 Financial Corp.와 시중 은행간의 경쟁은 인구에 명백하고도 실존하는 위협으로 떠올랐다. 은행들은 신년사에서 공격 경영과 몸집 불리기를 경쟁적으로 외치고 있다. 하지만 표어와 다르게 올해 안에 시중 은행간의 인수합병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시중 은행에게는 표어를 현실화 시킬 인력과 자원이 없다. 지금의 시중 은행은 숨 고르기가 아직 덜 끝난 상황이다. 적어도 올 하반기에 이르러야 겨우 숨 고르기를 끝내고 확장으로 눈을 돌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숨 고르기가 끝나도 상황은 국내 시중 은행들에게 유리하게 흐를 것 같지는 않다. 명백하면서도 실존하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책과 관행, 조직의 삼중고를 극복해야 하는데 이들을 극복하고 외국계 은행과 맞붙을 무렵이면 이미 경쟁은 극도로 심화될 것이다. 평범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외국계 은행의 진출로 고금리와 낮은 수수료라는 호재를 누릴 수 있겠지만 은행의 수익성은 악화될 것이고, 지금껏 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기업의 고급 정보도 외국계 Financial Corp.에 손쉽게 유출될 것이다.

게다가 이 싸움의 끝에 공존은 없다. 공존을 위해서는 금융 시장의 과점화가 용인되어야 하고, 이것을 막기 위해서 무한 경쟁을 허용하면 국내 은행은 존폐를 보장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선진 자본 시장과의 밀접한 동조화는 경기 변동성의 낙폭을 증가시킬 것임이 분명하다. 이래 저래 상황은 어렵다. 하지만 해법은 찾는 것은 상황보다 더 어렵다.

P.S. 덧붙임말이 아니라 일기 수준이 되어 버렸다.
서술을 보충할 Case와 통계자료는 아직 미입력 상태. 찾아 놓기는 했지만 당장 급한 것은 아니므로 언제 보충할지는 미지수. 다만 모든 입력이 완료될 경우 텀 페이퍼 수준으로 완성될 듯. 주와 하이퍼 텍스트를 이용한 문서로 꾸밀까 본문을 중시하는 본래의 스타일로 꾸밀까 고민 중임. 며칠 전에 출시된 Pages를 이용해 작업한 첫번째 결과물인데 사용이 편리해서 앞으로 MS Word 대신 애용할 듯 싶다.

점심 무렵 놀려온 친구는 나의 이 어이없는 취미 생활에 개탄했지만 스물 다섯이 된 이후 마음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뭐랄까?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11개월 남은 휴가가 끝나가는 것도 아쉽고,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확실히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기분이 앞서기도 한다. 해야할 일들과 배우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어린 시절, 아직 시간에 쫓기지 전에 이런 것들을 알았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무의미하게 순간의 즐거움을 쫓아 낭비했던 탕아의 삶은 부메랑이 되어 나를 덮친다.

그나저나 원철군. 알다시피 내 고민은 12분 짜리라고. 그 이상을 고민에 쏟아붓는 것은 명백한 넌센스야. 다음날 아침이면 항상 새로운 하루를 이겨낼 힘이 나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 신의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논외로 하고 말이야.

Gresham’s & Goldsmith’s

국사 문제집을 풀다가 려말 권문세족들이 교초 때문에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보았다는 지문을 읽었다. 원조가 주원장에 의해 외몽고 지방으로 쫓겨나면서 유동성의 상당 부분을 교초에 의존하던 권문세족의 자본 유동성이 악화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재작년에 써놓았던 [그레셤의 법칙]이 떠올랐다. 어째서 잇속에 밝은 권문세족들이 그레셤의 법칙을 몰랐을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그레셤의 법칙

사람들이 경제학의 법칙가운데 가장 쉽게 기억해 내는 법칙이 바로 그레셤의 법칙이다. [수요 공급법칙]과 함께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얼마 되지 않는 경제학의 법칙 가운데 하나니까 그 유명세는 따로 지적할 필요조차 없어 보인다. 사람들이 실제가치보다 액면가가 높은 저질의 화폐와 실제가치와 액면가가 같은 양질의 화폐가 있을 때, 양질의 화폐보다 저질의 화폐를 먼저 사용한다는 그레셤의 법칙. 그러나 과연 이 법칙을 최초로 내건 사람도 그레셤 본인일까?

16세기 영국의 금융가 토마스 그레셤은 런던 거래소의 설립자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엘리자베스 1세의 재정고문관이었던 그는 1558년 악화를 다시 주조하여 외국환의 지배권을 장악하려는 구상을 설명하기 여왕에게 보낸 편지 첫머리에서 “Bad money drives out good”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것을 1858년 H.D.마크로드가 [그레셤의 법칙]이라고 명명한 것.

하지만 그레셤보다 역사적으로 더 먼저 이 사실을 언급한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자연과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14세기 경제학의 일인자 니콜 오렘 주교다. 오렘은 화폐 정비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신뢰할만한 양질의 화폐는 상업에 이롭다고 말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최초로 그레셤의 법칙을 발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레셤의 법칙이 역사에 적용되었던 또 다른 사례들을 찾아보자. 로마제국은 말기에 화폐인 은화의 순도가 떨어지면서 경제적 위축으로 쇠망을 앞당겼다. 14세기 유럽에서는 백년 전쟁이 발발하여 무리하게 화폐를 찍어낸 결과 상업이 위축되기도 했고, 중국의 경우 원나라의 표준 통화인 교초의 남발로 원이 멸망하고 마는 역사적으로 지대한(?) 공헌을 한 법칙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말에 대원군은 당백전을 남발하여 당시 기축 통화였던 통보가 사라지는 체험을 하기도 했다.

또한 그레셤의 법칙은 미국의 경제사에 있어서도 매우 다양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19세기말의 은 쇼크. 당시 농민들은 은본위제를 주장했고, 상공인들은 금본위제를 주장했다. 당시 정치권은 어쩔 수 없이 금은 양본위제를 수용하고 있었는데 금과 은의 교환비율이 실제가치를 반영하지 못했다. 얼마 되지 않아 실제보다 고평가된 은화는 시장에 엄청나게 풀려나왔고,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금화는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악화인 은화가 양화인 금화를 몰아낸 꼴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사람이라면 [오늘날처럼 주화가 아닌 신용화폐 중심인 시대에 이 법칙은 무용지물이지 않느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용화폐도 이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시장에 신용도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카드결제를 계속 한다면 결국 시장은 채무불이행을 견뎌낼 수 없어 신용화폐가 악화가 되는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당신이 이러한 상황에 있다면 어떤 화폐를 쓰겠는가? 비교적 양호한 다른 화폐도구들도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신용화폐를 선택할 것이다. 또한 경기가 하락하고 있다고 판단된다면 당신은 블루칩보다도 정크 스톡(Junk Stock)을 먼저 내 버리지 않겠는가?

그레셤의 법칙은 물론 그레셤이 경제적 용어를 사용하여 법칙으로 통용되고는 있지만, 역사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체험 속에 묻어있던 이론이다. 재산을 많이 가진 귀족들도, 밭을 가는 농부들이나 장사를 하던 상인들도 모두 양화는 쌓아두고 악화로 자신들의 경제생활을 누렸을 터. [새로운 사실을 만들어 내기보다 어느 누가 먼저 그 현상을 관찰하고 이론으로 정리하여 사람들의 인식 속에 집어넣느냐]가 중요하다는 법칙의 법칙(?)을 새삼 깨닫게 된다.

동양의 지폐나 서양의 지폐나 기본적으로는 청구권을 보장하는 증서에서 비롯되었다. 금태환이던 은태환이던 지폐는 실물 화폐로의 교환을 인정하는 증서다. 실제로 지폐의 역사는 상당 부분 상업 어음의 역사와 겹친다. 그런데 동양의 지폐와 서양의 지폐는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다.

일직부터 중앙 전제왕권의 통제 아래 있던 전매권이 청구권에 대한 반대 급부로 제공되던 동양에서는(소금과 철이 가장 대표적인 품목이었다. 국가가 필요로 한 병장기와 군량을 제공하고 이에 대한 급부로 염전이나 광석에 대한 권리를 제공했다) 왕조의 부침에 따라 지폐와 귀금속이 그레셤의 법칙을 따라 바쁘게 움직였고, 전장을 통한 상업 어름 거래와 중앙 정부에 의한 지폐 발행이 개별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근대적 은행의 발전이 상대적으로 뒤졌다.

(사실 세계 무역에서 중국은 오랫동안 사치품의 최대 수출국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중국의 귀금속 유입은 아편 전쟁 이전까지는 풍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물 대신 은화가 조세 부과의 표준 화폐로 유통되었을 정도로 중국 경제권의 귀금속 유입량은 풍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 저장성은 탁월하지만 수익률은 낮은 귀금속보다는 지폐가 모험적인 상인들에게는 더 매력적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반면 서양은 환전상의 탁자에서 시작된 환전 은행이 골드스미스의 노트를 거쳐 대체은행으로 발전했고, 종국에는 근대적은 은행을 낳았다. 개별 국가의 금속 화폐 발행은 전시대를 통틀어 꾸준하게 이루어졌지만 청구권을 지닌 지폐의 발행은 금융 귀족으로 불리는 소수의 가문이나, 상인 길드를 통해 이루어졌다. 상업 어음과 지폐의 발행이 일원화 되었던 셈이다.

은행의 기원. 골드스미스의 노트|

은행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금과 출금을 담당하는 텔러들과 그들 너머로 보이는 관리자 몇 명, 은색으로 반짝거리는 대형금고와 청원 경찰을 떠올릴 것이다. 물로 이것이 전혀 잘못된 이미지가 아니다. 하지만 만약 이것이 몇 백년 전의 은행을 상상했을 때의 이미지라면 이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영어로 은행을 뜻하는 [BANK]는 원래 환전상이 돈을 쌓아두던 탁자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은행의 역사는 환전상의 탁자에서 시작된다. 14세기 유럽에는 수많은 도시와 국가의 개별 통화가 있었고 원활한 상거래를 위해서는 이들 통화의 가치를 판단할 중개인이 필요했다. 이런 역할을 맡은 것이 개개인의 환전상이었고 역사는 이 시기의 은행을 환전(換錢)은행이란 말로 정의한다.

그러나 이런 개개인의 환전상에게 잊을 수 없는 시기가 찾아오게 된다. 흔히 금융귀족으로 알려진 플로렌스의 메디치가와 아우크스부르크의 푸거가 그리고 베니스의 정부는 개개인의 환전상의 행동을 전유럽적 단위로 묶음으로써 대체(代替)은행을 탄생시키게 된다.

예를 들어 파리의 A라는 상인이 런던의 B라는 상인에게 상품구입대금을 지불해야 한다면 과거에는 A가 산 넘고 강 건너 그리고 마지막으로 환전상에게 들려 화폐를 바꾸어 B에게 지불해야 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A가 파리에서 은행에 입금을 시키면 B는 런던의 은행에서 찾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간소화 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각국의 중앙은행이 가지고 있는 은행권발행과 예금 제도는 어디서 시작된 걸까? 우습게도 이것은 은행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금이나 귀금속을 전문적으로 다루던 장인(GoldSmith)이 써주던 보관증(GoldSmith’s Note)에서 유래했다.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보관증을 고액의 상품매매에 화폐대신 사용하는 기민함을 보여주면서 이들 장인들은 또 하나의 가능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골드스미스의 원리이다.

골드스미스의 원리란 무척이나 단순하다. 모든 보관증이 한꺼번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원리와 일부 보관증은 전혀 환급을 받지 않는다는 점 이 두 가지 원리를 이용하면 우리의 금세공사는 실제 보관 중인 귀금속보다 많은 액수의 보관증을 발행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금세공사는 이렇게 잉여 발행된 보관증을 가지고 사채업을 겸업했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여러분들에게 누군가가 현대의 은행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물어본다면 여러분은 전문적인 용어를 들어가며 끝없이 난해한 대답으로 상대방을 질리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몇 백년 전의 은행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물어본다면? 겁먹지 말자. 현대의 은행이나 과거의 은행이나 은행은 [전부 똑같은 원리에 의하여 움직이는 은행]일 뿐이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국제 무역과 그레셤의 법칙은, 아니 국제 무역과 은행의 발전 과정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진화했다. 다시 교초로 돌아가자. 여몽연합군의 일본 정벌이 시작될 무렵 고려에 들어온 교초는 오래지 않아 고려의 고액 지폐로 자리 잡았다. 원나라와의 외교 사절의 접대비와 군사비 명목으로 유통되던 교초는 중국에서는 날이갈수록 실질 가치가 하락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고려에서는 통화로서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화폐의 명목 가치가 실질 가치를 앞선 그레셤의 법칙의 예외가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이 있다. 귄문세족에게는 경제적 실질 가치보다 더 중요한 정치적 명목 가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영미식 커리큘럼으로 경영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내가 고려 시대의 교초의 가치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당시 동아시아의 지폐에는 묘한 성격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조공무역과 관련된 실제 가치와 명목 가치의 괴리다. 서구인이 무역의 합리성이라 부르는 등가성의 원칙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기 전에 동아시아의 무역 원칙으로 자리잡은 것은 실질 가치보다 명목 가치였다. 조공 무역을 통해 받쳐지는 진상품과 하사되는 하사품들은 실질 가치보다 더 큰 명목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왕조의 통치력이 안정되어 있을 경우 하사품으로 받은 지폐는 곧바로 시장에서 지불 화폐로 사용되었다. 왕조의 통치력이 불안해 하사받은 지폐의 가치가 시장에서 낮게 평가 받을 경우에는 본국으로 가져와 경제적 가치 대신 정치적 명목 가치를 중심으로 사용되었다. 예컨데 상대 가치를 중심으로는 본 측면에서는 그레셤의 법칙이 충실하게 지켜졌지만 화폐 자체로 본 그레셤의 법칙에는 예외가 생긴 셈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무역 관행은 어느 나라에도 괴멸적인 피해를 주지 않은 채 오랫동안 동아시아 경제권을 묶는 가교 역할을 했다. 오늘날의 영미식 스탠다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지만 적어도 몇세기 전의 서구가 주장하던 등가성의 원칙은 등가성을 유지하기 위한 폭력과 유혈이 필연적으로 수반되었다. 실질 가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공정 무역에서 이익을 얻는 방법은 어느 한쪽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 명목 가치와 실질 가치를 구분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동아시아의 무역 관행과 비교하자면 제로섬 게임이 분명하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 무역의 표준 양식이 된 서구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모든 법칙에는 본질이 있고 상황에 따른 예외가 있는 법이다. 또한 예외 속에서도 본질은 살아 숨쉰다. 그레셤의 법칙과 골드스미스의 원리는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나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행동의 동기를 설명해주는 가장 좋은 설명이 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행동이 구체화되는 방식은 문화와 관습,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그 구체화된 행동을 그 시대 사람들이 추구하던 가치를 모르는 현대인의 가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꽤나 위험한 일이다. 그것이 사실의 문제가 아닌 가치의 문제일 경우에는 말이다.

아무튼 권문세족은 교초의 태환 정지로 유동성을 잃고 역사에서 퇴장했고, 현대는 조공무역을 봉건 관습으로 취급해 버리는 서구의 등가성 원리(물론 여기에 비교우워론과 자유무역의 이점이라는 현대적 이론이 첨삭되긴 했다.)에 지배 당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 머리 속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이제는 낯설어진 옛날을 산책하는 것은 꽤나 운치있는 일이다. 레이 황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역사에는 그것이 등장할 만한 필연적인 흐름이 있으니 말이다.

확장 재정정책의 우울한 그림자

정부는 다음 회계연도에서 적극적인 재정 확장 정책을 기조로 하는 일련의 예산을 발표했다. 아직까지는 국가 채무 상태가 양호하고 연관 효과가 높은 건설업을 위주로 재정 확장 정책이 수행되기 때문에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리라는 의견과 원유 및 각종 원자재 가격 상승한 상황에서의 확장 정책은 물가에 압박을 가할 뿐, 소비 심리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란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사실 이런 의견 대립에서 각자가 논거로 삼는 이유들은 모두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확장 재정 정책의 찬반자들 모두 이론적 모델로서는 흠잡을 때 없이 완벽하고 타당한 설명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리를 중요하는 내 입장에서 보자면 아무래도 반대자들의 의견이 더욱 솔깃하다. 이대로 가면 스태그플레이션이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때 늦은 확장 정책
만약 작년에 정부가 확장 정책을 사용하기로 발표했더라면 아마 난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무정책을 최선의 정책으로 삼는 정부보다는 어느쪽으로든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정부가 좋은 정부라 믿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올 1/4분기까지도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확장 정책은 너무 위험하다.

사실 작년 말과 올해 초 한국 경제가 가진 문제점은 구심점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정부와 기업, 민간의 신뢰 관계는 위험수준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었고, 정책은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적인 정책이던, 진보적인 정책이던 일관된 정책을 발표한다는 사실은 신뢰성과 방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마 작년에 재정 확장 정책이 예고 되었더라면 사람들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지만 경기 낙관론에 동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작년과 조금 다르다. 현재의 신뢰 관계는 위험 수준보다 한참 아래다. 올 초 발표된 정부의 경기 낙관론이 근거 없는 낙천주의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황이고 현재의 재정 확장 정책은 DJ시대의 확장책과 다르게 경기 전망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물가에 대한 자기 실현적 예언
사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부분이다. 정부가 확장 정책을 펴도 사람들은 실질적인 경기가 상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업자가 줄어든다거나 소비의 활성화는 어렵지만 과도한 통화 공급의 증가로 물가는 상승하리라고 내다본다, 원자재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이 최종산출물의 가격 상승을 주도하리라는 두려움. 이것은 스태그플레이션을 가장 확실하게 가져오는 자기 실현적 예언이 되고 만다.

정책보다 중요한 것은 심리적 속임수란 말이 있다. 실제 정책을 집행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심리적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면 정책을 실제로 집행하지 않아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심리적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뢰성이 중요하다.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정부의 정책을 신뢰할 수 없다면, 더욱이 못 믿는 정도가 아니라 정반대의 상황이 보다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 믿는다면 심리적 환상을 의도와는 정반대 반향으로 향하고 만다. 현재 우리의 상태가 이렇고 어떤 정책을 내놓던 간에 정책의 외부 효과가 클 것이란 전망을 뒷받침 하는 배경이 바로 이것이다.

소득세 1%인하 이면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조세부담률이 해마다 늘어나면서 가계의 조세저항도 점점 커지고 있다. 지자체의 세외 수입의 연체률은 연체률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이고, 지방세나 국세의 체납률로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조세라는 지출 재원이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의 재정 확장 정책은 필연적으로 국채의 발행으로 매울 수 밖에 없다. 소국개방형 경제 체계를 지향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과도한 국채 발행은 다양한 경제적 효과를 가져온다. 그런데 이중에서 현재 우리 경제에 유익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정부는 확장정책에 이어 조세 감면 정책까지 추진하고 있다. 소득세의 1%인하 방안. 사실상 고소득층의 소비 증진을 겨냥한 정책이다.(고소득층에는 높은 한계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정률의 감세안이 선택될 경우 절세폭이 더욱 크다) 특소세의 인하 또는 면세 정책도 동일한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가처분소득을 늘린다고 해도 소비의 활성화가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일반적으로 고소득층일수록 경제 정책에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감한 만큼 자주 번복되는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감세 정책에 덜컥 소비를 늘리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다. 게다가 직접적으로 소비를 늘리지 않아도 물가 상승에 의해 소비지출액이 늘어난다면 감세 정책은 내수 진작 정책으로는 낙제감이다. 게다가 이 경우 절세폭이 작은 중산층 가계는 상대적으로 더 불평등하게 된다.

디노미네이션
개인적으로 난 디노미네이션에 대한 논의 자체는 반대하지는 않지만 시기 상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디노미네이션은 심리적인 영역에서만큼은 물가가 하락한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준다. 종래의 화폐 단위보다 작은 단위의 화폐로도 구매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노미네이션은 실제 물가를 올린다. 고액의 화폐 단위에서 세분화 되어있던 제품 가격이 디노미네이션 과정에서 상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액권 발행은 어떨까? 고액권 발행은 일반적으로 화폐의 유통 속도를 증가시키는 작용을 한다. 소비의 편의성을 높이고 이것은 상품 소비를 늘린다. 물가 상승이라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디노미네이션만큼 높은 메뉴 비용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고액권 발행은 충분한 논의를 거쳤기에 도입의 거부감이 크지 않지만 디노미네이션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진지하게 논의된 적이 없다.

사실 디노미네이션의 또 다른 표현은 화폐 개혁이다. 화폐 개혁은 장롱 예금을 활성화 시키는 수단으로 혹은 재정 적자나 부채를 평가 절하 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다. 하지만 효과가 확실한 만큼 부작용과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좀처럼 시행되지 않았던 제도다.

그런데 문제의 현재 우리의 상황이다. 현재의 경제 시스템이 화폐 개혁이 필요할 정도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 없이 단지 달러나, 유로에 비해 화폐 단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개혁을 추진하기에는 경제의 불안정성이 너무 크다. 평화로운 시기, 안정된 경제 상황에서 채택해도 많은 비용과 혼란을 감수해야 하는 정책을 요즘처럼 경제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 성급하게 도입하려는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

문제는 신뢰성이다
정책의 성공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경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성이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좀처럼 지켜지지 않은 원칙인데 현재의 정부는 신뢰성에서 만큼은 낙제다. 일관성 없는 정책. 상황에 따라 바뀌는 정도를 넘어 오늘의 정책이 다음 분기에 유지될지조차 불분명하다.

해외의 유명 이코노미스트들은 한국의 경기 침제가 일본의 90년대처럼 극심한 불황으로 점철되지 않겠지만 현재의 침체 상태가 꽤나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 예측한다. 무언가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이 나타나 경제를 견인하지 않는 한 장기 침체를 피하기란 어렵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기도 어렵지만 설령 적절한 패러다임이 나타나도 요즘 같은 엇박자 상황에서는 효율적인 시스템 재편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경제나 정치나 인간 관계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간의 이해가 얼마나 맞아 떨어지느냐가 아니라 상대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장 밑바탕이 되는 신뢰성에 대한 논의는 생략한 채 무리한 정책 남발로 자충수를 두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혹은 내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