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와 나

움베르토 에코가 영면에 들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내가 좋아하던 작가들은 빠른 속도로 살아있는 대가에서 작품으로만 접할 수 있는 초상이 되었고, 움베르토 에코 역시 이제는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추억 속의 대가가 되었다. 그가 있었기에 내 삶이, 내 책장이 얼마나 윤택해졌는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에코와의 첫 만남은 매우 이른 시기로 기억한다. 에코의 소설을 직접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첫 영화인 ‘장미의 이름’을 통해 그를 접했던 것이리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으며, 잘 넘어가지 않는 책장을 넘기기 위하여 엄지에 침을 묻히는 장면을 보면서 느낀 전율이 나를 추리소설의 세계로 이끌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2시간 동안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영화를 보는 동안 주머니 안에 숨겨두었던 초콜릿이 모두 녹아 바지를 버렸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렇게 그와의 교류는 시작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큰 누이가 대학에 들어간 1992년에 책으로 만난 ‘푸코의 추’는 내 삶의 혁명이었다. 성당기사단에 빠진 것도 그때부터였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라는 에코가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시기를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주전자 뚜껑이 열린다’는 표현부터, 이제는 골동품이 되어버려 어느 도서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도서색인카드의 매력에 빠진 것도 그즈음이었다. 장난스러운 지적 유희가 진짜 음모가 되었을 때의 전율. 그리고 장난을 더는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만들어내는 공포가 지금도 선명하다. 그리고 까소봉과 벨보, 디오탈레비와 아불라피아가 십 대 소년의 마음속에 얼마나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도…

‘전날의 섬’은 또 어떤가? 좌초된 플랑드르 평저선에 살아남은 한 인물이 그려내는 바로크 시대는 얼마나 매력적이었던가? 해상시계와 경도의 확정은 이미 잘 알려진 과학적 소재지만, 에코가 그려낸 바로크적 인식을 앞으로 누가 흉내 낼 수 있을까? 루이 치세의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분위기는 비슷한 시대를 다룬 역사소설에 비해 얼마나 세련되고 섬세한지… ‘바우돌리노’는 그렇게 재미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푸코의 추에서 다루었던 팩트 소설을 한 단계 뛰어넘어 한 허구의 인물을 통해 그려낸 역사는 또 얼마나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신비한 불꽃의 로아나 여왕’은 스물여섯 여행길에 읽은 에코의 자전적 소설이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며 의문을 품었던 세계대전 말기의 이탈리아- 아니 에코의 추억-를 소설을 통해 엿보는 즐거움은 은밀함을 넘어서 작가 자신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과거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 유령처럼 배회하는 그림자들의 실체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던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나 역시 문학적 사춘기와 결별할 수 있었다.

십여 년 전 팩션이라는 장르가 새롭게 명명되었을 때가 기억난다. 에코에 비하면 한참이나 격이 떨어지는 팩트 소설을 보면서 얼마나 조소를 했던가? ‘프라하의 묘지’를 마지막으로 우리 세대는 이처럼 비범한 ‘지적 유희’ 또는 ‘역사를 가지고 치는 장난’을 다시 만나지 못하리란 예감이 든다. 비록 그는 떠났지만 파리 마치에 실린 에코의 인터뷰는 손만 뻗으면 닿는 위치에 있다. 그와 함께한 삼십 년 을 추억하며 다시 한 번 위대한 기호학자보다는 소설가로 친숙한 그를 잠시 기려야겠다. Requiescat In Pace!

소설가의 죽음

숫자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요즘의 나에게 문학은 환상과 같다. 어느 사이에 문학은 손을 뻗어 붙잡고 싶지만 좀처럼 붙잡히지 않는 신기루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아름다운 문장에 환호하던 난 사라지고, 이제는 마음껏 써지지 않는 토해내면 보잘 것 없는 문장에 좌절하는 나만 남았다. 어린 시절 문학은 나에게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았다. 세상에는 감히 정복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 속에서 내 지성뿐만 아니라 허영심 또한 자라났다. 하지만, 어두운 도서관의 서가를 정복하는 즐거움이 대제국의 황제가 되는 기쁨과 같다고 믿던 소년의 꿈은 달마다 차고 비기를 반복하는 월급 통장 사이에서 어느새 사치품으로 전락했다.

달콤하고, 편안하고, 즐겁고, 안락하지만 문학이 없는 오늘의 내 일상에 던져진 낯선 소식이 바로 주제 사마라구의 죽음이었다. 내가 처음 그의 소설을 읽었던 그 즈음에도 이미 노령의 그였던 만큼 죽음은 당연한 순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운 여름을 이기기 위해 차가운 물과 벗하는 동안 블리문다의 아름다운 모습이, 하늘을 날기 위한 투쟁이, 모두가 눈이 멀어 버린 세상에서 눈이 멀지 못한 저주를 안은 한 여자의 삶이, 늘 소설 속 어디쯤 자리 잡고 있다가 종국에는 쓸쓸하게 죽어간 한 마리 개가 마음을 스쳐갔다. 우리가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마다 내려진 결정이 우리를 만들어간다는 노작가의 인터뷰가 생각나 마음에 깊은 파문을 남겼다.

매일 새로운 이야기가 세상에는 쌓여가지만 대가다운 상상력과 필력을 이야기에 담아 삶의 본질을 함께 고뇌하고, 통찰을 제시하던 거장들의 시대는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 끝이 없으리라 믿었던 소설의 전성기도 이렇게 대가들의 소멸과 함께 끝을 맞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내 삶의 이십대를 풍요롭게 수놓던 그의 작품을 기리며!

 

책(冊 or 責)

18세기 산문집을 읽다 보면 유난히 책에 관한 언급이 많은데 특이한 부분은 그들이 책을 얻게 되는 경위다. 오늘날의 지적권 개념으로는 확실히 불법이지만 그들은 귀중한 책을 필사함으로써 자신의 서가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아마 당시의 글쟁이라면 인세를 받아 생계를 유지한다는 현대의 전업 작가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글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설가나 하는 일이라고 고개를 돌렸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자신이 지은 책을 필사하느라 바쁜 사람들을 보며 득의만만한 웃음으로 인세를 대신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더욱이 한자 한자 세필을 들고 승두세자로 밤을 새워 필사를 하는 동안 만들어지는 것은 비단 책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용에 대한 이해와 비판 역시 ‘그 와중에 슬금슬금 생겨나지 않았을까?’ 하고 잠시 상상해 본다.

물론 오늘날 18세기 방법을 답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물질 세대에 태어난 우리가 무슨 인내심으로 한자 한자를 정성껏 필사하고 설령 그럴 인내심이 있다 하더라도 복사기보다 우리가 더 정확하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둠의 경로를 통해 서적 우편보다 빠르게 신간을 구할 수 있는 이즈음와서는 책의 소유라는 개념 자체의 재정의가 필요하기도 하다.

과거의 책은 필사본이든 인쇄본이든 간에 꽤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리사 자딘의 『worldly goods』에 의하면 상업 혁명 이전에 백 권 규모의 장서를 구매하려면 중산층의 경우 년 수입의 1/4을 거의 평생에 걸쳐 지출해야만 했다고 한다. -저자에게 인쇄된 자신의 책을 주는 전통은 책이 그토록 비쌌기에 증정된 책 자체가 인세로써 충분히 기능 할 수 있었기 때문 확립되었다- 그렇기에 책은 신분의 상징이 되었고, 문자 해독력이 극도로 열악하던 시기에 치자와 피치자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선이 되었다. 그 후 인쇄 프레스의 기술적 발전은 점차 서적 생산 단가를 낮추어 왔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여전히 책을 소유하는 일이 -적어도 전 지구적 기준으로는-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관습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출판부와 옥스퍼드 출판부의 공인된 초판 인쇄 부수는 1,200부이다.- 책의 카테고리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세계의 영어권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놀랄 만큼 적은 부수이다. 페이퍼백의 범람에도 평범한 노동계층이 텔레비전 구매에 소비하는 생애지출보다 도서구입비가 적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문제다.

해마다 정월이 되면, 그리고 독서의 계절로 명명된 가을이 되면 서점과 책에 대한 특집 기사들이 쏟아지곤 한다. 비싼 책값과 왜 한국에는 페이퍼백이 없느냐는 불평. 대중교통에서 읽기에는 너무무겁다는 불만과 원하지 않는 하드 커버 덕분에 생긴 거품이 싫다는 이야기까지 그 불만은 참으로 다채롭다. 여기에 책은 내용을 읽는 것이지 책이라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주장까지 겹치면 책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일주일이 모자랄 지경이다. 그러니 먹물과 교양은 별개라는 논쟁은 논외로 두자. 그리고 한 번쯤은 나 역시 책에 대한 내 편견을 한 아름 늘어놓고 싶었다.

내가 과도하게 건장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는 순간은 신국판으로 제단된 하드커버쯤은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채 돌아다닐 수 있고, 전공 서적 정도는 어디에서든 가벼운 마음으로 팔뚝에 얹고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때다. 신국판에 이어 더욱 작고 가벼운 책이 오늘날의 출판 경향이라지만 난 아직도 묵직한 단위 중량을 자랑하는 미색 모조를 사랑하고, 도피지에 화려하게 인쇄된 표지를 즐긴다. 하드커버가 입혀진 사철제본을 좋아하는 것은 보관의 용이함 이전에 손에 잡히는 묵직한 느낌이 좋아서이다. 기실 사철제본이 필요할 정도로 책을 험하게 다루지도 않고, 서표가 필요할 정도로 기억력이 나쁘지 않지만 말이다.

사실 스무 살을 넘은 뒤로는 책값에 대한 신경도 끊은 것 같다. 책값의 상승률은 지난 20년 동안 고작 +170% 내외였다. 같은 기간에 버스요금이 +2,000% 이상 인상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경이적이다. 게다가 헌책은 그 상승률이 더욱 미미해서 고작 +150% 내외이다. 경제적 풍요가 십 년을 기점으로 배수로 커지는 세대에 속한 나로서는 책값에 예민해지는 것이 곧 심력의 낭비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십 대의 내 구매력으로는 한 권 한 권을 신중에 신중을 기해 사들여야만 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그 시절의 내 시간 가치는 책값에 한참 못 미쳐서 서점에서 서서 읽는 책들이 사들이는 책들의 몇 배수였다. 하지만, 요즘의 책은 향상된 구매력에 비하면 너무나 가벼운 존재가 되었다. 그렇기에 예전과 다르게 종이 두름을 사들이는 일에 인색하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사기 전에 한참을 망설이는 가격대의 책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일 년에 고작 한두 권이니 그리 신경 쓸 일은 못된다.

8.5포인트로 시작한 내 독서 인생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내가 가장 선호하는 크기의 활자는 9포인트이다. 내 서가에는 5만 부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와 고작 500부도 팔리지 않았을 책들이 나란히 놓여 있고, 가끔 페이지 불리기에 당하는 책이 있으면, 필름값도 회수하지 못할 만큼 인기가 없지만 나에게는 사랑스럽기만 한 책들을 거저 줍기도 한다. 게다가 난 램지의 법칙이 책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한다. 원래 사는 사람이 적은데다가 사지 않고서는 못 배길 그런 책이 더 비싼 법이지만, 때로는 자긍심 하나 때문에 독자에게 부담을 전가시키기 보다는 베스트셀러의 수익으로 손실을 보전하는 출판사들도 많다. 그렇기에 첩첩이 서가에 쌓인 다양한 성격의 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분책과 페이지 늘리기, 비싼 제본마저도 귀여운 투정쯤으로 보일 때가 잦은 것은 아닐까?

난 흡연을 즐기지도 않고, 애주가지만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으며, 차를 너무 좋아해서 항상 보온병에 그날 마실 ‘오늘의 차’를 준비해 다닌다. -그럴 여유가 되지 않는 아침이면 티백이라도 챙겨다닌다- 게다가 나에게는 시간과 애정을 요구하는 하는 어떤 이도 없다. 그렇기에 내게는 꼭 해야 할 일 이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몰두할 충분한 여유가 있다. 기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휴가는 삼면이 책장으로 둘러싸인 시골집으로 내려가 책이 내뿜는 그 묘한 향기에 취해 보내는 멍한 시간이다. 또 지금껏 내가 살아온 공기는 책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지는 않아도 정서적으로 책을 아끼는 사람들이 내뿜는 향기로 채워져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공산이 크다.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세파에 찌든 고단한 삶만큼이나 책은 나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대화의 소재이다. 책이 없다면 그 공백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아무리 ‘démoncratisation’ 이 시대적 화두가 된 이 시대라지만 겸손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굴종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역설적이게도 이 시대의 리바이어던은 참주정 시대의 리바이어던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어느 시기보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자유로운 세상이라는 슬로건 이면에서는 ‘문혁’ 못지않은 ‘모난 돌 때리기’가 존재한다. ‘마녀 사냥’의 시대는 인류 역사에서 결코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도편 추방에서 간통 혐의로, 이단과 마녀에서 이설로 끊임없이 그 명칭은 바뀌었지만 그것들은 다만 마녀의 정의가 시대에 따라 달라진 사실을 반영할 뿐이다. 물론 아직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움츠러든 목은 펴질 줄 모른다.

빛이 오고 난 뒤에도
우리가 한 번 더 이토록 캄캄한 어둠 속에
살아야만 했다는 사실을
후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De Arte Dubitandi-

갤러리와 투어리즘

2주 전 처음 이곳에 와서 놀란 것은 미술관에서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관람 매너였다. 이곳의 관람 매너를 자유분방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계모임과 구분이 힘들 정도로 요란한 한국의 관람 매너에 비해 절도가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한 주가 지나자 이런 생각이 나의 오해였음이 밝혀졌다. 중요한 것은 관람료의 경중이었다. 관람료가 비싸게 책정될수록, 접근이 어려울수록 관람 매너가 상승한다는 제2급 가격 차별의 예를 미술관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관람료가 비싼 전시회일수록 확실한 기획과 전문가의 엄격한 작품 선정이 뒤따른다. 사실 작품 수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와 작품을 이해하는 눈을 얼마나 열어주느냐이다.  

영국의 많은 갤러리는 대체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갤러리들에서 제대로 된 감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새로운 미술의 역사’를 쓴 폴 존슨의 경고가 머릿속을 끊임 없이 떠다닌다. ‘중요한 것은 많은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걸작을 제대로 음미하는 것이다’  거대한 인파가 쉴새 없이 움직이는 갤러리에서, 더욱이 시간이라는 제약 조건 아래에서 그의 말을 실행에 옮기기는 대단히 어렵다. 결국, 갤러리에 갈 때마다 나의 좌절은 더욱 커진다. 한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아직 보지 못한 작품들을 생각하며 초조함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초조함도 따지고 보면 나의 불민함이다. 갤러리에 걸린 모든 작품을 볼 필요는 없다. 아니 시간을 정해 놓고 갤러리를 모두 돌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 자체가 나의 문제다. 아마도 나에게는 남은 여생 동안 이곳에 올 기회가 꽤 많이 존재할 것이다. 엄청난 규모로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은 이상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으며 한 번 들릴 때마다 이해의 폭을 넓히는 또 다른 재미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투어리즘의 대상으로서의 갤러리는 위험하다. 많은 사람들은 유럽 여행을 통해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건축물들을 바라보는 것들을 유럽 여행의 재미로 꼽는다. 솔직히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나 역시 그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곳의 갤러리들은 투어리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투어리즘의 일환으로 갤러리를 찾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행동은 없기 때문이다.

이곳의 무료 갤러리와 박물관에서 가장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은 무지의 향연이다. 사람들이 갤러리를 찾는 이유는 낯선 땅에 와서 무언가 색다른 것을 보았다는 경험을 자랑하기 위해서이다. 지난주에 브리티쉬 뮤지엄에서 난 내 나이보다 세 살 아래 정도의 건장한 청년 셋을 보았는데 이오니아식과 도리아식, 코린트식의 기둥 장식에 관하여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던 그 전시실에서 그들이 나눈 대화는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의 대화를 지배하는 것은 그들이 눈으로 보고 느낀 사실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에 기반을 둔 지루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도리아와 이오니아, 코린트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그 전시실에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불만이었다.

문화지향은 오늘날 시대의 화두다. 하지만, 과연 양적성장을 위주로 이루어지는 문화지향이 올바른 것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경제적 풍요는(과거에 비해서) 문화 경험의 빈도와 범위를 넓혔지만 이해의 깊이까지 넓혔는지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다.

어떤 독서론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론이 주변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의 말대로 소설 따위는 읽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어린 벗을 보면서 문학이야말로 논픽션보다 더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법이라고 설명하는 내 자신이 귀찮아졌다. 위대한 생각과 영혼을 낳는 것은 항상 허구라는 상상력에서 태어난 진실이다. 사실이 낳을 수 있는 것은 사실에 불과하다. 사실은 진리를 낳지 못한다. 하지만 귀찮음에도 불구하고 ‘1미터의 책과 5만엔 돈’이라는 인용구를 듣는 순간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지식의 방대함 앞에서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와 넓게 열린 접근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식 자체가 생명력 없는 객체에 불과했던 때는 단 한순간도 없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독서론은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독서론이 있는 만큼 경계해야 할 독서론도 있는 법이다. 어린 벗에게 무교양의 지름길을 안내하는 다카시의 독서론이 바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