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스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

레이 황의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 하다』를 읽기 전까지 난 중국 역사에서 한수와 위수가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북쪽의 기마문명권 군사력의 작전 행동은 마량이 되는 초지를 벗어나지 못했고, 남북조의 치열한 전장 역시 한수와 위수를 오가며 연강우량 600밀리미터의 초지를 토대로 펼쳐지곤 했다. 사실 이런 작은 지식은 의외로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강수량 지도와 등고선 지도를 함께 펼쳐 놓고 보면 각종 역사적 사건들의 흐름이 일목요연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잭 워더포드의 『칭기스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 는 레이 황에서 한 발짝 살짝 더 나아간다. 칭기스칸의 딸들이 통치하는 지역이 몽골 제국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를 분석한다. 후방의 안정, 중국 쪽 실크로드를 제압하기 위한 전진기지, 대흥안령산맥을 중심으로 한 오아시스에 대한 무력 투사. 딸들이 공주로서 통치하는 지역들은 칭기스칸의 디딤돌이었고, 이 디딤돌을 통하여 몽골은 최초로 실크로드 전역을 제압한 제국이 되었다.

어린 시절 함락당한 금나라의 도성에서 포로가 되는 야율초재와 칭기스칸의 만남을 읽으며 몽골족은 황량한 고비사막을 어떻게 넘어 금나라를 정복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낙타도 없이, 말로 사막을 건너 몽골만큼은 아니지만, 강력한 기마력과 중국인 보병을 거느린 금나라에 충격을 가할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은 고비 사막을 건넌 기마 부대가 말을 살 찌우고, 군사력을 재건할 수 있었던 고비 이남의 전진기지의 존재로서 설명할 수 있다. 지속적인 원정이 가능한 전진기지의 운영은 영민한 딸의 역량에 달려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전략적으로 배치된 디딤돌이 강력하고, 빠른 군사력의 전개 및 무력 투사를 용이하게 만들어 칭기스칸의 군대를 실크로드의 지배자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몽골이란 사회 체제 안에서 칭기스칸의 딸들인 공주들이 지니는 위상과 정치적 역할, 지배당한 초원의 부족 출신의 며느리들이 지닌 외교 네트워크. 그리고 영민한 딸들과 술 취한 아들들, 야심 찬 며느리들 사이의 투쟁과 제국의 몰락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칭기스칸이 지닌 남녀의 역할관과 세계관이 어떻게 그의 제국이 적용되었고, 얼마나 절묘하게 운영되었는지를 따져보는 일은 즐겁다. 아울러 제국의 황혼이라 부를 수 있는 몽골 귀족들의 정체성 상실과 권력 게임이 얼마나 손쉽게 세계 제국을 파탄에 빠트렸는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교훈은 충분하다. 르네 그루쎄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같은 걸작은 아니지만, 몽골제국의 성립과 몰락을 이해하는데 충분하다.

완전한 승리, 바다의 지배자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걷는 일은, 피레우스의 향기를 맡고, 수니온 곶에서 지중해를 항해하는 배들은 바라보는 일은 어린 시절부터의 소망이었다. 만약 그리스 재정위기만 없었더라면 이런 내 소망은 작년에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의 그리스는 관광객들에게마저 위험해 보인다.

현대의 그리스는 잠시 접어두고 찬란했던 지중해의 여왕이었던 아테네 제국의 수도 아테네로 돌아가 보자. 앙드레 보나르의 ‘그리스인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그 시대 아테네가 단순히 찬란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야만과 문명, 합리적인 지성과 비이성적 광신이 묘하게 섞여 있던 고대의 이 도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를 격파하며 중흥을 이룬 도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패배를 거치며 잠시 주춤했다가 이내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나 맹위를 떨쳤다. 종국에는 대왕의 장군들에게 피레우스가 함락당하며 독립된 도시 국가로서의 영광에 종지부를 찍지만, 플루타르크가 그려낸 영웅들의 삶은 현대에도 거대한 영감의 원천이다.

헤일은 이런 아테네에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다. 해군이라는 시스템을 통하여 어떻게 도시를 발전시키고, 아테네 제국이 되었으며, 부활과 쇠락을 반복했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사실 이런 역사 해석의 궤적은 나폴레옹 전쟁과 대영제국의 성립이라는 고전적 주제의 아테네 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대포와 해상 제국’의 성립이라는 담론의 고대판 버전일지도 모르겠다. ‘노잡이 아테네 시민과 해상제국’이라는 제목으로…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옛날이야기에 가까웠던 역사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신화에 가까웠던 영웅들의 전투가 아니라 피레우스에 거주하던 평범한 하류층 노잡이들과 배를 지휘하던 상류층 선장들이 어떻게 흑해 연안의 밀을 토대로 상업 도시를 유지하고 경쟁국을 제압했는지를 그려낼 뿐만 아니라, 오만이 만들어낸 패배 과정을 손에 잡힐 듯 그려낸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나,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문학성에 사실적 색채를 더하기를 원하는 독자에게 이보다 나은 선택은 없다.

쌍전

어린 시절의 난 내가 또래의 아이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거친 땀 냄새를 풍기며 ‘코기’처럼 또래 아이들이 뛰어다닐 무렵, 난 이미 『데미안』의 세계에 빠졌고, 『플루타크 영웅전』을 읽으며, 『일리아드』를 머리맡에 두고 잠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른 중반에 가까워진 어른의 눈으로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 역시 느리든 빠르든 누구나 겪은 특별할 것 없는 성장의 과정이란 생각에 낯이 뜨거워진다.

 가끔 아내는 어린 시절 무엇을 하고 시간을 보냈느냐고 묻곤 한다. 그때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학교에서 집까지 1.5킬로미터를 걸어다니는 동안 읽곤 했던 『초한지』와 『삼국지』, 『수호전』과『서유기』의 재미다. 신문연재 소설의 감칠맛이 살아 있던 김팔봉의 『초한지』의 카피라이터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역발산기개세의 항우’라니……. 아! 『수호전』을『수호지』라고 부를 때마다 상대를 어이없어하던 부끄러운 잘난척쟁이였던 나도 기억난다. 조금 더 자라 이문열 『삼국지』와『수호지』를 또래들이 읽을 때 난 박종화와 김팔봉이 아니면 명대 소설 편집 방식에 따른 판본이 최고라고 으스대기까지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난망할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실 『쌍전』을 여는 이야기로 어린 시절을 고백하는 이유는 동양인이라면 누구나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에 얽힌 추억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장과 함께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은 기억 한편에 약간의 불편한 감정과 함께 고이 모셔두게 된다. 『쌍전』은 바로 이런 약간의 불편한 감정을 파고든 책이다.

 지성이 성장하면서 우리는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을 읽으며 마냥 즐거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유비의 가식이나 조조의 잔인함이나 99.9%의 백성에게는 똑같은 고통일 뿐이라는 사실을,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가 위∙진 시대의 혼란한 정국을 연장한 이기적인 계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양산박의 108 호걸들은 양상군자에 불과한 잔인한 파괴자들이란 사실을 깨닫고 나면 더는 책장을 넘길 수 없게 된다. 게다가 현대의 작가들이 이런 불편함을 없애기 위하여 저마다의 필치로 편집본을 양산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면 ‘쌍전’에 대한 사랑은 봄날 눈 녹듯이 녹아 사라지게 된다.

 『쌍전』의 저자인 류짜이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중국인들의 정서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쌍전’을 숭배하는 기류 저변에 자리잡은 흉성을 고찰하고, 그것이 어떻게 현대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파헤친다.『쌍전』은 결국 『삼국지연의』와 『수호전』비판을 넘어셔서 중국인의 의식구조 비판에 접근한다.

 그리고 이런 중국인의 의식구조 비판은 정도는 덜하지만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비판하는 도구로 빌려와도 무방하다.『수호전』의 몰인간성, 잔혹함, 집단 밖에 대한 차별, 『삼국지연의』의 뻔뻔함과 비양심적인 행동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의식기저를 설명하는 유용한 도구다. 『삼국지연의』와 기계와 『수호전』의 잔혹함이 판을 치는 2013년 오늘의 우리에게 따끔한 일침인 것은 물론이고…

파리의 심판

 인생을 살다보니 내게도 클로드 모네와 에두아르 마네를 구분할 필요가 없는 주변으로 포위된 시기가 왔다. 마네와 모네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호인의 화가’ 메소니에란 이름도, 살롱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파리의 심판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린 시절의 나였다면 로스 킹의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을 읽은 시기를 아련하게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시스타냐 예배당 천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미켈란젤로의 고난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가에게 보내는 경외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사용자 삽입 이미지

 로스 킹은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에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를 병렬시켜 율리우스 교황 시대의 로마를 그린 것처럼 <파리의 심판>에서도 메소니에와 마네라는 걸출한 두 대가를 주인공으로 처음으로 낙선전이 열린 1860년부터 파리코뮌이 무너지고 마네가 이끄는 바티뇰파가 인상파라는 이름을 얻은 1870년대 중반까지의 파리를 그리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위대한 순간들을 재현함으로서 미술이 역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아카데미에 도전하여 작고 소소한 일상의 삶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승리를 일구어낸 마네를 기억한다. 플라뇌르 아래 스튜디오가 아닌 야외작업을 통하여 빛이 만들어내는 인상을 견고하게 잡아냄으로서 싸움에 종지부를 찍은 모네와 르느와르를 사랑하며, 고전주의에서 인상주의로 이어지는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반면 내가 18세기의 와토라고 부르는 세밀한 붓놀림을 자랑하는 메소니에는 고작 영국의 콘스타블의 아류로 말을 잘 그리는 화가로 지칭되거나, 부르주아를 위한 소품을 그린 화가로만 기억된다. 당대 제일의 화가라는 명성은 인상파의 약진 속에 갈가리 찢겨졌고, 거대한 역사화들이 숨쉬는 루브르에서도, 인상파의 성전인 오르세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작가는 고전주의에 매몰된 샬롱의 보수주의자들과 마네를 중심으로한 젊은 화가들이 벌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투쟁을 담담한 어조로 서술한다. 인상파의 수퍼스타라 말할 수 있는 모네, 세잔, 르느와르의 비중도 그리 크지 않다. 되려 메소니에라는 미술사에서 잊힌 불운한 한 화가를 복권시키는 것으로 미술사상 가장 첨예했던 시기에 작가만의 색채를 입히고 있다.

 로스 킹은 인상파의 약진이 그들의 천재성에 열광한 관객과 평단에 하루 아침에 인정받은 것은 아니라 역사의 격변 속에 매우 긴 시간에 걸쳐 느릿하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 다는 사실을 적시한다. 또 인상을 포착하려는 시도가 바티뇰파의 전유물이 아니며, 많은 화가들 역시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인상을 탐구했다는 사실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전쟁과 혼란의 파리라는 드라마틱한 춤판 속에 그려지는 대가들의 삶은 덤으로 생각해도 될 정도로.

수상한 라트비아인

 아직은 웃음도 마음도 지금보다 더 앳되던 청년 시절에는 하얀 종이를 보는 순간 문장이 쏟아 나오곤 했다. 그 시기에는 산책하는 동안 흘러가는 생각을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흡족하게 채워주던 서평이 완성되곤 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내 삶의 다른 일들처럼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변명을 하자면 꺼리는 많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나를 찾는 전화벨 소리 사이로 진지한 생각이 빠져 나가서 그런 것이라 자조도 해보고, 옛날 달라진 빠르고 즉흥적인 세상 때문이라 투정도 부려본다. 하지만, 얄팍한 변명 사이로 선명하게 보이는 진짜 이유를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이유란 간단하다. 이제는 글을 쓰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고백하고 나니 이제야 서툰 문장으로 나마 서평을 쓸 용기가 생긴다. 이제 진짜 다시 시작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반장 시리즈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소설이다. 추리 소설 경력을 이어 나가는 동안 ‘심농의 매그레 반장’이란 언급과 조우할 기회는 있었지만 내 관심은 딱 거기까지였다. 영국식 추리 소설의 전통이랄 수 있는 어수룩한 경찰에 대한 불신 혹은 조롱에 나 역시 깊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셜록 홈즈나 미스 마플, 포와르가 경찰 반장이라면 얼마나 어색할 것인가? 항상 허둥거리고 잘못된 단서만 추적하는 경찰이 없다면 유머는 어디에서 찾으란 말인가? 살인과 폭력이 난무하는 범죄 소설에 필요한 휴머니티는 단연 멍청한 경찰이다. 게다가 뛰어난 지성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 대신 귀찮은 일도 도 맡아야하고, 비웃음의 대상으로 주인공을 돋보이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반장 시리즈는 이런 영국식 추리 소설의 전통과 배치 된다. 주인공인 매그레는 용감한 거인이면서, 지적이며, 무엇보다 감수성이 풍부하다. 게다가 그는 아편도 피워야 하고, 클럽에도 가야하는 바쁜 파트타임 탐정들과 다르게 사건의 일선을 떠나지 않는다. 메그레는 수사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인물이자, 다양한 정보 수단을 통제하는 인물이며, 사건의 단서들을 충실하게 독자에게 보고하는 인물이다. 매그레 시리즈에는  파트 타임 탐정들이 자신들의 천재성으로 줍게 되는 완전 범죄를 꿈꾸는 범인들이 놓친 단서 대신에 매그레와 함께 수사를 진행해 가는 동안 획득한 작은 단서들이 그려내는 큰 그림이 있다. 영국식 추리 소설에 비하면 트릭이 떨어지긴 해도 말이다.

 『수상한 라트비아인』은 매그레 반장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첫 작품이지만 꽤 충격적인 소설이고 아름다운 문체를 지닌 작품이다. 플롯 자체는 매우 간결하다. 열 페이지도 넘기기전에 독자는 사건의 얼개를 그릴 수 있다. 하지만, 매그레 반장과 함께 뒤쫓는 사건은 일반 추리 소설과 궤를 달리한다. 실제로 파리의 거리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은 보통이고, 탐정과 조력자의 안전이 보장되는 다른 소설과 다르게 반장이 아끼는 부하는 무참하게 살해 당하며 매그레 본인은 거리에서 총격을 받는다. 심농의 간결한 문체는 비스케이만의 차가운 바닷물과 빗물. 안개와 더러운 하인숙, 독한 술냄새를 자유자재로 그려내며 독자를 몽환의 세계를 이끈다.

 어쩌면 일반적인 좋은 추리 소설의 기준에서『수상한 라트비아인』은 좋은 평가를 받긴 어려울지도 모른다. 추리 소설의 본분인 추리라는 얼개가 뛰어난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물들이 지니는 개성과 심리 묘사, 분위기 만큼은 탁월하다. 때로는 사건 그 자체보다 등장 인물이 지닌 삶의 비극적인 요소가 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 슬픈 결말을 향해 처연하게 걸어가는 인물들의 뒷모습을 함께 바라보기에는 강인하면서도 예민한 매그레 반장은 좋은 친구다. 매그레와 함께 걷는 길이 즐거운 것은 아니지만 그가 있기에 위안이 된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