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ifornication

드라마를 보고 주인공에게 정서적 일치감을 느끼는 일은 이미 오래전에 졸업한 줄 알았는데 기실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그 허무하면서도 상황을 조금씩 씹어 삼키는 듯한 표정 앞에서 남 이야기인 마냥 초연하기란 쉽지 않다. 점잖은 에세이와 소설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불량한 대화로 점철된 드라마지만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재미있게 다가서는 것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한 남자의 삶이 내 삶의 축소판처럼 느껴지는 순간들 때문이리라.


책의 행간을 읽는 순간 독자는 작가와 머릿속으로 이어져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의 고뇌와 직접적인 ‘접촉’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첫째로 고뇌의 현실성이 떨어지고, 둘째로 감정의 파동이 극적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속되는 좌절 앞에서 허탈한 표정을 짓기는 쉬워도 그 허탈함 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고의 흐름과 관조의 결과, 그리고 변화하는 태도까지 보여주는 경우란 꽤 드물다.


십 대 시절 내 문학 선생님은 ‘왜 사냐면 그냥 웃지요.’에 해당하는 정서가 지니는 강력한 힘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즐겼다. 그렇기에 스물넷 겨울 국가에 적을 둔 세 명의 지기들은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대사에 그렇게 울적했으리라. 시간은 흘러도 상황은 변해도 문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 남자의 표정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사람이 단지 시청자뿐이라는 사실이 그지없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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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ork ’06

Keynote3
군대에서 Powerpoint병으로 2년을 보낸 최모군과 달리 난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Keynote를 애용한다. 사실 내가 powerpoint를 쓰지 않을 특별한 이유같은 것은 없다. 그저 구축된 작업 환경과 덜 어울린다는 정도가 지금의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이유의 전부다. 하지만 때로는 합리성이 중요하지 않은 순간도 있다. 개인의 선호 앞에서는 그 대단한 합리성도 기를 펴지 못하는 법이니 말이다.

사실 꽤 무거울지도 모른다는 세간의 추측과 달리 오래된 골동품 모델인 iBook G3에서도 부드럽게 돌아갔다. 덩치는 커졌을지 몰라도 저사양의 스펙에서는 과거 버전보다 휠씬 매끄러운 편집이 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새로운 버전은 과거에 개발된 각종 tip들을 무력화시켰다. 무엇보다 오브젝트를 move out – move in시키는 과정에서 개발된 포개기라는 가장 유용한 tip를 사장시켰다. 결국 나에게 남겨진 중요한 사실은 바쁜 시간을 쪼개 전문적인 템플릿 디자이너들이 내놓을 새로운 tip들을 다시 배워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새로운 버전의 애플리케이션은 양날의 칼이다. 보다 세련된 기능도 좋지만 재학습을 위한 시간 소모라는 경제적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P.S.
3D차트 기능을 사용해 보면서 가볍다는 표현은 시기상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기존의 템플릿들에서는 3D차트가 매끄럽게 지원되지 않았다. 결국 제대로 된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Macbook pro와 keynotepro의 새로운 템플릿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나이를 먹은 까닭으로 앞으로 발표 수업은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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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ionism

2월 마지막주 금요일 오전 8시 17분. 1호선
텅 빈 지하철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자니 멀리서 뛰어오는 한 형체가 보였다. 평소라면 절대 나오지 않을 커다란 보폭, 달리기의 기본 자세가 잡힌 날렵함으로 계단을 뛰어내려온 그녀는 겨우 지하철에 올라탄다. 그리곤 이내 텅 빈 차량을 쓱 둘러보더니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옆자리에 앉는다.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 그녀는 팔목의 단추를 정리하고, 덜 마른 머리칼을 매만진다. 익숙한 향기가 코를 감는다. 이 향수와 린스는 누가 쓰던 것이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머리칼을 만지는 손가락에서 반지가 빛을 낸다. 오똑한 콧날과 작은 입술이 시선을 붙잡는다. 무엇보다 쌀쌀함이 반, 귀찮음이 반 섞인 눈빛이 마음에 든다. 갑자기 하루키가 기술한 어느 장면이 머리 속을 스친다.

중요한 시험을 보는 아침. 옆자리에 앉은 한 여자의 아름다움과 오래 전에 읽은 한 이야기를 되새기고 있는 난 어딘지 이상하다. 하지만 난 정말 심각하게 그녀에게 말을 걸어볼까 고민하고 있었고, 혹은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 한쪽에서는 이런 망상의 재발이 시험 부담감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라고 나름대로 진단을 내리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런 잡스런 생각이 오늘의 불행을 자조할 것이라는 거의 미신에 가까운 상상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몸을 조금씩 줄여 그녀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아직도 나에게는 사소한 접촉으로도 생각을 읽힐 수 있다는 연원을 알 수 없는 뿌리 깊은 미신이 남아있다. 지독한 긴장감 때문이라고 변명하기에는 귓가를 울리는 음악이 매우 평화로웠고, 시간 여유도 충분했으며, 무엇보다 긴장의 징후인 목소리 톤의 변화도 없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어댄다. 자켓의 왼쪽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결국은 몽상과 현실의 경계에 놓인 눈꺼풀을 힐끗 쳐다본다. 그리곤 이내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으로 얼굴이 화끈거린다. 하지만 이 정도는 핸드폰을 꺼내려다 발생한 실수쯤으로 봐줄 수 있다.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텅빈 맞은편의 차창을 통해 내가 눈한번 깜빡이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幻의 세가지 의미와 실제
흥미로운 사건이다. 우연히 수첩을 넘기다가 발견한 이 메모는 지난 2월 이후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이 파렴치한 메모를 읽는 순간 당시의 상황에 또렷이 기억났다는 데 있다. 이 메모에는 몇가지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투명한 차창에 비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바라보기에는 내 시력은 너무 약하다. 무엇보다 난 옆자리에 앉은 작은 아가씨를 곁눈질로 볼 수 있을 만큼 작은 체구가 아니고(사실 이런 경우 허공만 보인다), 고개를 돌려 세심하게 관찰할 만큼 뻔뻔스럽지도 못하다. 내가 받은 교육은 꽤나 보수적인 것이고 위험확실등가액이 상당히 높은 위험기피자이기에-말은 어렵지만 겁이 많다는 이야기다- 애초에 이런 일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결국 이 메모는 순간의 포착을 영속화 시킨 우를 범한 전형적인 환상이다. 더블 스크린을 읽으면서 환의 세가지 의미에 대해서 이제야 또렷하게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되었는데 내가 쓴 글은 명백한 일루젼니즘이다.

아마 이 글에서 실제했던 것은 급하게 뛰어나오니라고 머리칼을 미쳐 다 말리지 못한 한 아름다운 사람이 지하철에 뛰어 올랐다는 한가지 사실 뿐일 것이다. 덜 마른 머리칼을 매만지는 것은 오래된 다른 친구의 버릇이고,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 팔목의 단추를 정리하는 것은 내 버릇이다. 머리카락을 말아쥔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반지의 이미지는 내가 사랑했던 한 여자의 버릇이며, 오똑한 콧날과 작은 입술은 이보다 두해 전 어느 수업시간에 봤던 모습임이 틀림없다. 단 한가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신비는 그녀를 보자마자 Anna Karenina에 등장하는 Kitty가 생각났으며 그 인상이 반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일루젼네이션을 넘은 마법적 작용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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