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란도트 (Turandot)

Puccini
<영 인디아나 존스 the Young Indiana Jones chronocles>의 미방영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는 인디의 어머니가 피렌체에서 푸치니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토스카 Tosca>와 <라보엠 La Bohéme>, <나비 부인 Madama Butterfly>과 <투란도트 Turandot>의 작곡가인 푸치니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예술적 창조력은 이미 1910년을 경계로 내리막길로 접어든 것으로 본다. 에피소드에서는 그런 푸치니의 창조력 결핍을 인디의 모친과의 결실을 맺지 못한 사랑 탓으로 돌리는 대범함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무엇이 그의 음악적 영감의 불꽃을 사그라지게 하였는지는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말년의 평범함을 뛰어넘는 지극히 천재적이고, 영광스러웠던 젊은 시절의 그가 우리가 알고 있고, 또 끊임없이 반복해서 보고 듣고 있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Turandot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투란도트>와의 첫 만남은 1990년 로마 월드컵에서 카라칼라 욕장을 배경으로 당대의 세 테너가 주빈 메타와 함께 공연했던 모습이다. 파파로티가 부르던 Nessen Dorma를 듣는 동안 마음속을 채웠던 감동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지워지지가 않는다. 처음으로 오페라가 지닌 매력을 맛보았던 그 순간을 잊게 된다면 내 삶은 얼마나 황량하고 공허한 것이 될까? 극 중에서 칼리프가 부르는 ‘내일 새벽까지 내 이름을 알지 못한다면 난 공주를 얻게 되리라’고 노래부르던 그 목소리에 담긴 자신만만함과 충만한 에너지가 나를 어떻게 매혹시켰는지를 표현하는 일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버겁기만 하다.

하지만, 오늘날 <투란도트>에 대한 내 느낌은 열 살 소년이 느꼈던 감동과는 또 다르다. 이것은 비단 <토스카>나 <라 보엠>에서 보여주었던 활기차고도 기민하던 푸치니의 스타일과 <투란도트> 사이에 놓인 간격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푸치니의 사후 <투란도트>를 완성한 프랑코 알파노의 잘못도 아니다. 기실 3막의 1장 중반을 경계로 느껴지는 이질감이, 리우의 죽음과 함께 갑자기 일관성을 잃고 흘러가기 시작한 음표의 기다란 행렬이 사실 푸치니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미완성작이 되어버린 오페라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문제는 바로 나의 편벽하고 고약한 습성 탓이다. 푸치니의 <투란도트>를 들을 때마다, 어느 까페에 앉아 무료한 표정을 짓는 동안 실내에 Nessen Dorma가 울려 퍼질 때마다, 만약 『제인 에어 납치사건』에서처럼 시간을 여행할 수 있게 된다면 푸치니에게 항암제를 먹이고 <미저리>의 케시 베이츠처럼 푸치니 곁에 앉아 <투란도트>를 완성하게 만들고야 말 거라고 다짐하는 내가 바로 문제의 진앙이다. 기이한 열정에 이끌려 1926년 밀라노의 라 스칼라 좌에서 토스카니니가 3막 1장에서 지휘봉을 내려 놓으며 ‘오페라는 여기에서 끝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에스트로는 숨을 거두었습니다.’라고 관객에서 고하는 장면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망상에 잠기는 일을 <투란도트>의 피날레보다 더 좋아하는 굼뜨고 하릴없는 내가 문제다.

Turandot in Sejong Centre directed by Pizzi
자금성에서의 말 많았던 공연 이후 <투란도트>는 만다린 풍의 무대와 의상이 표준으로 자리 잡은 듯싶다. 하지만, 이런 표준화 덕분에 우리는 수많은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다양하게 변주되었던 <투란도트>를 즐길 기회를 박탈당했다. 만다린이 중국 문화를 구성하는 하나의 색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항상 만다린 풍<투란도트>만 봐야 한다는 것은 꽤 슬픈 일이다. 오페라가 지니는 특성에 동양적인 색채를 가미하려는 의도에서 벗어나 이제는 중국적인 빨간 색조에 오페라라는 껍집을 뒤집어 씌운 듯 어색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에서의 피치 공연은 DVD로 접한 테아트로 레알 마드리드의 색채가 흐릿하다. 피치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토플리스 무용수들을 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올해에는 지난해의 공연에 비해 무대 디자인이 암담할 정도로 단조로와 졌기 때문이다. 3막 동안 바뀌지 않는 오페라 무대는 그것이 지닌 광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평면에 그려진 우울한 천조각과 다를 바가 없다. 양 대전 사이에 유행하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거장들의 무대를 재현해 달라는 것은 무리겠지만 관객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있어야 하는 법이 아닐까?

칼리프 역을 맡은 테너의 작은 성량, 단조로운 음색은 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넘어가 줄 수도 있다. 자부심과 충만한 에너지를 느낄 수 없는 Nussen Dorma도 참아줄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참아주고 나면 이 공연에 대하여 할 수 있는 말은 핑, 팡, 퐁이 모두 바리톤인 줄 착각했다는 말이나(사실 핑만 바리톤이고, 팡과 퐁은 테너야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셋의 릴리프가 극에서 제일 나은 부분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길이 없다,) 티무르가 눈이 먼 상태라기보다는 그저 늙고 병든 힘없는 노인으로 보였다는 것밖에 없다. 또, 핑, 팡, 퐁이 모두 대신처럼 보였다는 점에서 내 좌석에서는 셋을 구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던 가를 설명하는 지난한 작업 외에는 이 공연에 대하여 더 쓸 말이 남지 않게 되어버린다. (실제로 핑은 재상, 팡은 시종장, 퐁은 요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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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지갑 덕에 벽에 붙어서 봐야만 했던 공연. 하지만, 돌이켜 보면 공연의 수준에 딱 맞는 지출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리 너그러워지려고 해도 난 편익/비용의 노예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젊은 처자처럼 차려입은 십 대 소녀들이 인터미션에 취하는 몸짓은 참으로 다채로웠다. 라파엘 전파에서 빈 분리파까지 그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의 모델을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에곤 실레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으로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그  순간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전율 그 자체다. 짧은 치마를 맵시 나게 차려입었지만 그 어린 몸으로 흉내 낼 수 있는 우아함은 제한 시간 10분짜리 한정 쿠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공연. 그리고 수수께끼를 푸는 데 너무 쉽게 풀어서 도무지 재미가 없다는 그네들의 감상은 극적 긴장감이 거의 없었더라는 표현으로 치환해도 될 듯하다. _M#]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인 <라 트라비아타>의 전주곡을 듣고 있노라면 음악이 마음을 매만져주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고독과 방황으로 점철된 삶을 누군가가 바라보고 있으며 말 없는 응원을 보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지금도 울적한 마음에 술 한 잔이 청하고 싶은 날이면 어김없이 이 곡을 찾게 된다. 뒤마 피스의 본래 이야기가 졸렬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말이다.

기억을 돌이켜 보면 내가 처음 라 트라비아타를 접한 것은 17 살 봄으로 기억된다. 지금에야 클래식 음반들의 주요 판로가 된 패키지 판매지만 그 당시만 해도 패키지 상품의 수는 다양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당시 내가 노리던 패키지는 EMI의 세라핌 시리즈였는데 썩 나쁘지 않은 공연을 저렴한 가격에 CDP안으로 초대할 수 있다는 장점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사들인 세라핌 시리즈의 오페라 시리즈에 포함된 것은 <라 보엠>과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와 <토스카> 였고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들이다. 물론 그때의 나는 특별히 누구의 지휘를 좋아한다든지, 소프라노와 테너를 차이를 구분하는 수준에 이르지도 못했고, 사실 그것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La Traviata performed by ENO

어찌되었던 이렇게 시작된 라 트라비아타와의 만남은 꾸준히 계속되었음에 도 기실 오페라를 직접 본 것은 작년의 일이다. 런던을 여행하는 동안 토트넘 코트에 클래식 매장이 어마하게 큰 버진 레코드숍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국내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디뉴 리파티의 음반을 찾으러 갔다가 친절하고 예쁘기까지 한 점원으로부터 ENO에 대한 소개를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ENO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과거 새들러즈 웰즈 컴퍼니였다는 부연 설명을 듣는 순간 한물간 삼류 소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전쟁이 끝난 이후 식민지의 이탈과 함께 시작된 오페라단의 감원으로 어려움을 겪던 난 소프라노가 지친 몸을 의탁하던 문제의 장소. 뭐 나처럼 소설에 미친 사람에게 이 정도라면 충분히 들려볼 만한 이유가 된다. 더욱이 소설 속에 묘사된 런던 팰러디움과 함께 20세기 초반 제국주의 양식의 건축물의 화려함을 보여준다는 런던 컨실리움을 보고 싶은 욕망을 꺾을 수 없었다.

ENO의 특이한 점은 오페라를 영어로 부른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이탈리아어가 아닌 영어라는 사실이 귀에 거스렸지만 편견과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수 십 년 동안 개작에 개작을 거듭한 번안이 놀랄 만큼 선율에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배우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노래 부른다는 점에서 표현의 전달력이 이탈리아어보다 높았다. 사실 몇 단어 알지 못하는 언어로 듣는 아리아보다는 그래도 귀에 익숙한 언어로 듣는 노래가 한결 더 마음에 와 닿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더욱이 이런 언어적 특성은 배경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내가 본 <라 트라비아타>는 1830년대 더블린을 배경으로 당시 더블린이 자랑하던 환락을 원작의 파리만큼이나 빼어나게 묘사하고 있었다. 연극처럼 잘 꾸며진 배경과 과감하게 손 본 번안은 매끄럽게 맞물러 돌아가고 있었고, 가수들은 넓은 극장을 가득 채울 만큼 풍부한 성량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여기에 그들의 목소리가 지닌 풍부한 감정과 젊고 아름다운 소프라노까지 더해 진다면 더 이상의 공연에 대한 감상은 쓸모없는 첨언이 될 것이 분명하다.

La Traviata performed by Teatri Real Madrid

화려한 명성에도 비싼 입장권이 아까운 공연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예상보다 이런 공연들은 많다. 피치라는 당대에 가장 유명한 예술 감독의 지휘에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라 트라비아타>는 그저 그런 공연임이 분명하다. 양분된 무대의 화려함은 빼어났으나 어람용 공연장의 음향 반사는 오페라에 적합하지 않았고, 가난한 내가 살 수 있었던 3층에서 보기에 주역들의 성량은 모기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었으며, 관능미 넘치는 육신의 아름다움에도 그들의 목소리는 벨칸도 창법은 고사하고 단조로움의 재배 아래 있었다.  브린디시를 주도해야 할 합창은 얼음처럼 뻣뻣했으며, 프라마 돈나는 리릭 소프라노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이기보다는 수브레토에 가까웠고, 주연 테너는 베이스 부포에 가까웠다. 뭐 그래도 2막의 제르몽과 비올레타의 앙상블부터 3막의 알프레도, 비올레타, 제르몽, 듀폴의 앙상블은 그나마 좀 나았지만 이 오페라의 수준은 진행 중에 브라보가 고작 한 번 밖에 터지지 않았다는 사실로 충분하다.

관능적인 소프라노와 모델처럼 시원하게 생긴 테너들이 무대의 장악한 이 시대는 한 편으로는 눈이 즐거워서 반갑지만, 한 편으로는 이것은 좀 아니다 싶기도 하다. 아름답고, 노래까지 잘 부르는 재주 많은 가수들을 원하지만 선량한 마음보다는 심술을 부릴 때가 잦은 신은 결코 재능과 행운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지 않는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눈이 즐거우면 귀가 좀 덜 즐거운 법이고, 귀가 즐거우면, 눈이 좀 덜 즐거운 법이라는 법칙에 순응하는 수 밖에.

오페라를 보기 전 친구에게 피치의 전매특허인 상반신 누드의 무용수들이 등장할 것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 말을 전반만 맞았고, 나머지 절반은 틀렸다. 차라리 나오지 않는 편이 나았을 자신감 없는 무용수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설픈 것만큼 나쁜 것은 없다는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지 쏜살처럼 사라져 버린 무용수들 앞에서 무어라고 말해야 하나. 관객들이 바라보는 것은 벌거벗은 무용수 한 사람이 아니다. 관객의 처지에서 벌거벗은 무용수는 그저 극의 진행상 보이는 배경의 하나일 뿐이다.

사실 화려한 투우사의 노래와 멋진 집시의 춤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이만저만 실망인 공연이 아니었지만 객관적으로 보자면 꼭 집어 말할 만큼 큰 실수는 없었던 듯싶다. 그러나 무언가 탁월한 감동으로 내부를 진탕 시킨 것 또한 없었다. 그저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무대와 아름다운 가수들의 재주를 바라보는 동상이 된 기분을 빼고는 내가 얻은 것은 없다. 음악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 채 양철 인간이 된 것처럼 객석에 앉아있는 나는 두 번 다시 이 같은 경험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낯설고 또 낯설었다.

트로이의 여인들

지금 생각해 보면 용맹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17살 무렵 내가 가장 좋아하던 비극의 주인공은 안드로마케였고 이를사람들에게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프랑스 비극 좀 읽었다고 자부하는 이들로서는 그 유명한 연극을 떠올리며 17세기 연극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라고 생각할 법도 하건만 애석하게도 당시 내 주변에 에우리피데스는 고사하고 라신을 읽은 사람도 없었던 암흑의 시기였으니 만큼 사람들에게 안드로마케는 안드로메다 성운의 자매쯤으로 여겨졌을 것이 분명하다.

어찌 되었건 『트로이의 여인들』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중에 꽤 알려진 작품 가운데 하나다.  <전쟁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로 규정되지만 사실 이 세 편의 희극 사이에는 <복수 3부작>과 다르게 이야기의 연속성이 없다. 오히려 『트로이의 여인들』은 훨씬 이전에 출품된 『안드로마케』와 더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두 연극 모두 일리아드의 후일담을 다루고 있으며 등장인물들의 인생 역경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매끄럽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연극은 같으면서도 조금 다르다. 『트로이의 여인들』이 전쟁이란 외부성으로 말미암아 한 가정이 어떻게 파괴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면 『안드로마케』에서는 가정 갈등으로 말미암아 한 가정- 보다 정확하게는 한 여성이- 어떻게 파괴될 뻔했는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극을 비평하기에 앞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항상 제기되는 문제지만 희극의 텍스트를 읽는 것과 연극을 보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똑같은 대사라도 연출가의 의지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캐릭터 간의 비중 분배도, 극을 이끌어 가는 힘도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범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머릿속에 떠올릴 공통분모라는 것이 존재한다. 결국, 고전의 경우 이 공통분모에 충실할수록 원전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여기서 멀어질수록 실험 정신이 투철하다는 평판을 얻게 되는 셈이다.

사실 내가 본 『트로이의 여인들』의 연출은 파격적일 정도로 인물 간의 균형이 깨져 있었고 기존의 해석에서 멀리 벗어나 있었다. 대부분의 해석에서 카산드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 목소리를 내지만 아무도 그것을 듣지 못하는 진공의 벽에 둘러싸인 인물로 그려진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그녀의 정신은 신과 운명의 희롱 앞에서 처참하게 부서져 있으며,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을 알고 있기에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연약한 처녀이자 한편으로는 다가올 미래를 알고 있기에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기뻐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반면 안드로마케는 남편에 이어 아이까지 잃고, 가장 증오 해야 할 적의 아내가 되는 운명을 지닌 여성으로서 전쟁으로 파괴된 가정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헤카베는 트로이의 여왕이자 최후의 생존자로서 국가의 소멸과 폭력의 재생산이라는 메커니즘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주체다. 결국, 보통의 연출에서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이야기의 주재자는 헤카베가 되며, 안드로마케의 여성성은 비극을 심화시키는 중요 도구다.

하지만, 이 연출에서의 중심인물은 헤카베가 아니라 카산드라다. 그녀의 선이 굵은 연기는 신들의 장난에 가장 처참한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 순수한 처녀가 아니라 지독한 광기를 품은 처벌자로써 그려진다. 헤카베는 마지막 남은 자식인 카산드라의 변화와 손자의 허무한 죽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며, 안드로마케는 그저 원작이 있기에 등장하는 수준으로 전락한다(그녀의 격렬한 몸짓으로 표현되는 고뇌는 솔직히 아무런 공감도 자아내지 못했다)

아니 애둘러 말하는 것은 이제 멈추어야겠다. 이 연극은 태평양 전쟁을 배경으로 위안부 문제를 조금 언급하고 있기는 하나 본질적으로 전쟁에서 무고한 희생자 역할을 도맡는 것은 가장 연약한 여성과 어린아이라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지는 못하다. 기본적으로 배우들의 대사는 원전에 기초하며 나레이션 역시 원전에 충실한 편인데도 그리스 비극의 특징인 등장인물의 운명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강렬한 동화 현상이 없었고, 배우들의 연기를 선이 굵고 움직임이 컸으나 단지 그것뿐이었다. 연극은 시각적 효과를  통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무엇이 그들을 진정으로 아프게 만드는지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찰하기 보다는 절규 자체를 보여주는 데 치중하고 있었다.

물론 나레이션을 창으로 처리한다든지, 격렬한 안무를 통해 신 내림를 표현함과 동시에 강간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는 점이나 인물의 내적 고뇌를 형상화 시켰다는 점에서는 약간 점수를 줄 수도 있으나 뭐 그 정도야 요즘 세상에 흔해 빠진 것이 아닌가? 표정이 없는 배우는 그저 대사를 읊는 마리오네트에 지나지 않는다. 연출의 지시에서 벗어난 배우 개인의 캐릭터 해석이 있었더라면 한층 나은 극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이 연극에서 배우는 그저 연출의 의도를 문자 그대로 충실하게 투사하는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P.S.연휴동안 본가에 내려갔다가 트로이의 여인들을 다시 읽는 동안 처음 시작 장면과 카산드라와 관련된 부분을 다른 희극과 헷갈려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내 기억이 그리 온전한 편은 아니라는 반면 교사로 삼아야지 싶다.

포킨의 춘향, 에이프만의 뮤자게트

독설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독설이 예의에 벗어난 과격한 행동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 이전에 타인에 대한 비난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상대를 찌름과 동시에 나 역시 무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설을 퍼부어야 할 순간이 있으니 바로 함부로 기사를 쓰는 후안무치한 작태이다.

최근 발레계의 가장 큰 이슈는 보그에 게재된 김주원의 사진이었다. 나이 지긋한 노신사의 훈계조의 칼럼도 읽었고, 지극히 도식적인 논리 구조에 따라 몸이 상품이 된 시대라는 개탄의 목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나라면 그런 글을 쓰기 이전에 최소한 사실 확인 정도는 했을 것 같다. 김주원이 무엇이 아쉬워서 몸으로 유명세를 얻어야 하며, 까닭 없이 보수적이기만 한 발레계에서 주홍글씨를 받을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물론 누드- 인지도 및 포지션 향상 – 몸의 상품화로 이어지는 해석이 꽤 정확하게 핵심을 집어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모든 경우를 설명할 수 있는 최적의 구조는 아니다. 차라리 나라면 ‘몸’의 역동성을 겨우 그 정도 밖에 해석해 내지 못한 자칭 전문사진작가들이 망쳐놓은 좋은 기회에 관해서 이야기했을 것이다.

다음은 불성실한 기자의 한심한 작태이다. 어느 일간지에 실린 이 공연의 논평은 정말이지 두 번째 인터미션에서 재빠르게 자리를 뜬 채로 대충 기사를 작성했음을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기사의 초점은 <포킨의 춘향>을 통해 한국 발레 역시 세계에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방향으로 논지가 전개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논조는 공연을 단 한 순간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포킨의 춘향은 너무나 낡은 스타일의 안무라 무대와 의상에 대단히 공을 들였음에도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없다. 본격적인 현대 발레로 재편하려고 투입해야 할 자원과 노력은 예측하기조차 힘들 정도이고 설령 그것에 성공하더라도 이 발레는 결코 한국적인 것이 될 수 없다. 그저 한국적인 옷을 빈에서 벌어진 어느 코미디에 덧씌워놓은 것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 공연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에이프만의 뮤자게트> 였다. 인터미션에서 재빠르게 얼굴이 꽤 알려진 발레리나의 코멘트를 따낸 다음 콧노래를 부르며 조기 퇴근을 즐겼을 그 기자의 모습을 생각하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종을 잡을 수가 없다.

어찌 되었건 첫 번째 공연인 <레 실피드>는 상쾌한 바람 대신 춘곤증을 유발하는 졸린 바람이 부는 다듬어지지 않은 고전 발레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고, <포킨의 춘향(사랑의 시련)>에서는 소재가 지닌 반복의 지루함을 덜고자 도입한 새로운 배경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무언가 새롭거나 탁월한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듯이 가볍게 움직일 수 있는 무용수들의 가능성을 낡은 안무에 가두어둔 속박이 매 순간순간 느껴졌다는 것 이외에 여기에 관하여 더 남길 말은 없다.

하지만 <에이프만의 뮤자게트>의 경우에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좋은 공연이라는 사실에 이견이 없을 것 같다. 바흐의 바이올린 콘체르토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이 이토록 발레와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전에는 알지 못했었다. 업라이트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뭉텅한 소리와 콘체르토를 끌고나가기에는 3% 부족한 제1 바이올린만 제외하면 연주도 훌륭했고, 김형웅의 신들린 듯한 춤사위 역시 아름다웠다. 조명과 암전이 조화를 이룬 무대와 진중하면서도 빠른 움직임, 현대 발레가 보여주는 아카데믹한 모든 동작들을 완벽한 호흡으로 맞추어내는 솜씨에 감탄하지 않는다면 무엇에 감탄해야 할까?

두 해전 우연히 <뮤자게트>의 공연 클립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공연이 그리 나쁘지 않은 공연이었음에도 국립발레단의 솜씨는 기립 박수조차 모자랄 호연이었다. 물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춤사위의 흐름을 보고 있노라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잔 실수 하나 없이 아귀가 착착 맞아떨어진다고 해야할까? -여기에서 피날레의 군무가 지니는 논리적 불완전성과 전형성은 에이프만의 현기증으로 의제로 해 두자!- 그동안 국립발레단의 정기공연은 클래식 발레에 머물러 있었고, 최근에서야 러시안 모던 발레로 영역을 확장했는데 이제는 현대 발레 역시 정기공연에서 보게 될 날이 머지않았나 싶다.

P.S.
그렇다면, 근래들어 자주 공연되기 시작한 해외 무용단들의 내한 공연이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것은 순전히 기회비용을 심각하게 따지는 미친 내 사고의 탓이다.

포킨의 안무는 키로브 이전 마린스키 발레의 원형을 느끼기에 딱이다. <레 실피드>의 경우 <불새>보다 더 유명한 작품이지만 오늘날의 관점으로는 <불새>가 더 볼만하다.

VIP석에는 근래 들어 회사 협찬으로 나누어진 초대권을 들고오는 넥타이 부대들의 출현이 잦다. 남자들 셋만 모이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이 제멋대로 군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지만 -나 역시 이 범주에 속하지만- 게다가 이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유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발 ‘브라보’는 한 번만 하자. 괴성으로 이어지는 ‘브라보’를 삽 십 초 간격으로 계속 듣는 것은 누구에게나 심적으로 괴로운 일이다. 대신에 공짜 초대권으로 꽃다발을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매 공연 빈손으로 무대 인사를 하는 발레리나를 보는 것은 이제 지겹다.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
희극 역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가운데 하나를 뽑으라면 열에 아홉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린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난 이 걸출한 희극을 연극 무대에서 본 적이 한번도 없다. 너무 널리 알려진 작품이기에 되려 만나기 힘들다고나 할까? 아니면 이미 너무나 다양한 변주를 접해왔기에 여간 특이한 해석이 아니라면 성에 차지 않기 때문일까?

어찌되었건 난 올리비아 핫세 보다는 루즈 바어만의 <Romeo + Juliet> 세대에 속한다. <바스켓볼 다이어리>의 이미지를 더욱 섬세하게 스크린에 투사한 레오에 열광했던 누이들을 바라보았고, 결코 미인은 아님에도 눈길을 끄는 클레어 데인즈를 극장에서 목격한 세대에 속하기 때문이다. 사실 라디오헤드의 ‘exit music’과 카디건스의 ‘lovefool’이 들어 있는 O.S.T.를 들으며 입가에 걸렸던 만족감이 십 년이란 시간에도 불구하고 선하다. 그런데 발레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이 글이 어째서 이런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일까? 아직 베로나에서 만난 줄리엣은 시작도 못했는데 말이다.

Romeo and Juliet Op.64 composed by Sergey Prokofiev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스코어를 처음 접한 것은 시기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밤이었다. 그 시절에나 지금에나 난 좀처럼 라디오를 듣지 않는데 그 날에는 까닭 모르게 친구의 워크맨을 빼앗아 들었고 야간자율학습 시간 내내 이름 모를 클래식 프로그램에서 나온 연주에 심취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로얄 오페라 하우스 혹은 코벤트가든으로 불리는 장소에서의 실황 연주라는 말에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기행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런던을 떠올리던 내 표정은 지금도 선하다. 어두운 창문에 반사되는 그 표정을 발견하는 일은 그 후로도 수 없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프로코피예프의 곡은 3막 전반부까지는 경쾌하기 그지없다. 언제인가 내 친구는 이런 분위기를 ‘steppe-like’라고 설명한 적이 있는데 아직도 난 이 말 이상으로 그 느낌을 설명하는 적절한 단어를 발견하지 못했다.-물론 지리학에서의 의미는 다르다- 빠르고 적당히 경쾌하며 못내 사랑스러운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 가운데에서도 난 3막의 ‘Romeo bids Juliet farewell’를 가장 좋아한다. 이 시점을 경계로 긴장감이 점차 고조되면서 비극이 최고조로 이르기 때문이다. 마치 톨스토이를 읽다가 갑자기 도스토예프스키로 넘어가는 분위기랄까? 하지만 3막 후반부의 ‘Dance of the girl with lillies’ 분위기는 정말 독특하다. 어찌 보면 극적 긴장의 최고조이고, 다르게 보면 통일성을 깨는 불필요한 스코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발레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확연하게 달라지게 된다. 평범한 비극으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비극을 뛰어넘는 가슴을 찌르는 절규로 남느냐의 경계선이기 때문이다.

BRB’s R&J choreographed by Kenneth MacMillan vs Universal Ballet’s R&J choreographed by Oleg Vinogradov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아직 리뷰를 쓸 정도로 다양한 발레를 보지는 못했다. choreographer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각자의 특징을 구분하며 발레를 즐기기에는 내 몰입의 정도는 미천하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발레 안무의 스타일을 구분하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한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난 가을에는 Birmingham Royal Ballet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볼 기회가 있었고 지난주에는 Kirov Ballet로 구분되는 유니버셜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볼 기회가 있었다. 사실 확연히 다른 스타일의 안무를 볼 기회는 많지 않다. 게다가 설령 본다하더라도 그 차이를 구분하는 작업은 녹녹하지 않다. 더욱이 나처럼 발레의 문외한이라면 말이다.

키로프 발레(혹은 마린스키 발레)는 상페테르부르크에서 비롯되었다. 아직 러시아가 차르의 지배하에 있을 무렵에는 임페리얼 발레로 불렸던 이 발레단은 이후 수많은 클래식 발레를 새롭게 안무했고, 결국 스탈린 시기에는 클래식 발레와 구분되는 모던 러시안 발레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이 스타일은 <스타르타쿠스>에서 절정을 보인다. 이후 키로프의 명성은 볼쇼이 밀려 점차 희미해지지만 여전히 키로프 발레가 배출한 안무가들은 활동은 전설에 가깝다. 반면 로얄 발레의 경우 그 성격은 모호하다. 과거의 로얄 발레의 코리어그래퍼들이 연출한 발레는 확연하게 키로프 혹은 볼쇼이 스타일과 차이를 보이지만 오늘날에는 볼쇼이보다 더 볼쇼이적인 발레를 선보이는 것으로 정평이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이 라는 발레로 주제를 한정시키면 로얄 발레의 맥밀런의 스타일이 조금 더 낫다. 그는 키로프 발레 스타일의 완성된 동작을 광범위하게 사용하면서도 극의 서사 구조 안에서 죽음이 가져다주는 불쾌한 증거와 운명의 부조리함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반면 비노그라도프는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너무 클래식하기 때문이다. 맥밀런의 안무가 서사극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무언의 몸짓이 만들어내는 절규를 관객에서 전달했다면 비노그라도프의 안무는 흐름은 아름답지만 평범하다. 물론 이런 비판에는 발레리노의 잦은 실수가 한몫 거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그의 안무에서 러시안 발레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안무 동작을 발견하기란 되려 쉽지 않았다. 설령 pas de deux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전개되었다 하더라도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고전 희극을 해석하는 능력과 이를 안무로 형상화하는 능력은 맥밀런이 한 수 위다.

하지만 비노그라도프가 키로프 발레가 변신하는 과정의 부산물이라면 이런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그의 발레는 완성작이 아니라 변화를 모색하는 진행형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과거와 변화가 함께 공존하는 기인한 발레로 연출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최근 유니버설 발레단의 외도와 연습 부족으로 클래식 발레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기에 너무나 평범한 인상의 발레로 전락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의 문제가 아니다. 기나긴 그의 삶에 대한 헌사로 받쳐진 졸렬한 발레 한편이 그의 세련되고도 우아한 태도와 도대체 어울리지 않은 점만 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