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광인

지금껏 어머니는 책 읽는 내 모습을 좋아하시지 않는다.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책 대신 공부를 더 좋아했다면 수월하게넘어갔을 다양한 장애물들이 못내 아쉬우신 모양이다. 하기야 우리 집 형제들에게는 책에 관한 어딘가 뭇사람들이 이해 못할 기이할 열정이 있었고, 책을 읽는 것은 공부와 별개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며 자라나야 했다. 그런 형편이니 책에 대한 내 탐식도 알고 보면 어머니로부터 기이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 누이들이 책 안 읽는 아이를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책 읽는 것을 억압하라고 주변에 조언하는 모습을 보면 말문이 턱 막힌다. 지금까지도 어머니는 내가 본가에 내려갈 때면 서재방에 추가되는 책들을 꼼꼼하게 살피시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은 온갖 감정이 교차하는 전쟁터가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어찌 되었건 지난 가을 ‘뭐 읽을 것이 없느냐’는 어머니의 요구에 김탁환의 『열하광인』을 집어 드렸는데 어머니의 말씀이 가관이다. ‘그 녀석은 어딘지 의뭉스러워서 싫어. 생김새도 그렇고, 말하는 품새도 그렇고, 소설도 그래.’ 사실 어머니의 한 문장에 딱히 뭐라 드릴 말이 없었다. 어머니의 의견에 100% 수긍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여현감귀신체포기』이래 그의 소설을 읽어오면서 충분히 재미난 이야기들에 정치적 사견을 섞어 놓기 바쁜 작가를 보면서 비웃음 반, 비아냥 반이 섞인 웃음을 던졌던 것이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추리 구조가 치밀한 것도 아닌 그의 소설은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화광 김진이라는 캐릭터와 어수룩한 이명방이라는 캐릭터의 조합이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18세기 말엽의 인물들에 부여한 광채와 생동감이 시선을 붙잡는 것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내 시선을 붙잡는 것은 이제는 좀처럼 보기 어려워진 어휘와 표현들에 대한 순수한 감탄이다. 김탁환이라는 작가 개인이 의뭉스럽고, 추리 소설을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그 추리 기법이 졸렬하고, 인물들의 생동감을 숨겨진 의도로 훼손하고 있지만 사라진 우리말을 찾아내고, 문장으로 복원한 공로만큼은 인정해줘도 좋지 않을까 싶다. 알고는 있지만 문장 속에서 볼 기회가 좀처럼 없는 낱말들과 우연히 만나는 일은 항상 즐겁다. 각각의 낱말들이 가진 낯선 울림들이 만들어낸 문장은 설령 그것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언어유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 만족감이 줄어드는 일은 없다.

서른을 눈앞에 둔 가을이 되면 아무래도 이 이야기의 마지막 장이 펼쳐지지 않을까 싶다. 어떤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질지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나 훗날의 즐거움을 위해서 이쯤에서 멈추어야겠다.

P.S.
김탁환의 플롯은 한국의 추리소설 독자들을 감각을 의심하고 무시하는 처사이다. 다만, 18세기를 압도하는 연애담은 신선하고 즐거웠다. 모든 남자들의 꿈이지만 꿈일 수밖에 없는 그런 연애담은 하이틴 로맨스의 중독성과 마찬가지로 때때로 시선을 붙잡는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