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조국

HBO의 <Fatherland>를 본 것은 첩보물이 미스테리물에 권좌를 내준 90년대 중반으로 기억된다. 사실 고작 두 편짜리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것은 곰브리치가 언급한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도 세계사는 달라졌을 것이다’라는 말이 하찮은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뿐이었다. 역사에 있어 만약이란 가정은 흥미롭지만 사라예보에서 총탄이 누군가의 흉골을 꿰뚫지 않았다 하더라도 지리한 참호전의 역사는 여전히 세계사의 한 장으로 남아 있을 것이란 뜻이다. 만약이란 가정이 존재하더라도 역사의 거센 흐름 앞에서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흐름을 잠시 늦추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런 멈칫거림은 장구한 인류의 역사에 비하면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당신들의 조국』에 앞서 <Fatherland>를 언급한 이유는 『Fatherland』가 바로 이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자 번역된 소설의 원제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전략사가들이 즐겨 분석하는 ‘히틀러를 위한 IF 가정’을 택한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을 분기점으로 다룬 대체 역사 소설 가운데 발군으로 평가된다. 심지어 로버트 해리스는 단 세 권의 소설만으로 조지 오웰에 비견되는 영광을 쟁취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소설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유는 영국인들이 2차 세계대전의 가장 극적인 분수령으로 생각하는 무제한 잠수한전의 승리를 이니그마의 암호 체계가 뒤바뀜으로써  종국에는 독일이 승리했다는 식으로 바꾼 설정에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영국식 블랙 유머가 시작된다. 원래 역사에서라면 되니츠의 마지막 전투에서 사라졌어야할 할 U-보트의 함장이 1964년까지 살아남아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반사회적이라는 낙인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능한 수사관이 되어서 말이다. 그리고 그는 자유롭게 사고하는 ‘문제적 인간’이 되어 뒤바꾼 역사의 저편, 안개 속에 숨겨진 진실에 접근하게 된다. 게다가 주인공의 상대해야 할 악역을 맡은 게슈타포 장교는 영국식 냉철함에 독일식 복종을 결합한 캐릭터이다. 거기에 덧붙여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은 외관은 원대한 히틀러의 베를린 구상에 의해 메트로폴리탄이 되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실제 역사의 동독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밀실과 경찰 지배의 온실이다. 게다가 주인공은 나찌 치하의 독일에서는 너무나 위험한 농담을 일삼으며 주변의 분위기를 냉각시킨다. 구동독 시절에도 존재했던 지배자를 대상으로 삼은 유머가 애초에 사라진 세계는 당혹스러울 만큼 냉소에 가까운 블랙 유머의 밑그림이 된다.

사실 드라마 속에서 SS 수사관 자비어는 지적이면서도 행동력을 잃지 않은 노인과 장년 사이의 사내였으며. 미국인 저널리스트 샬롯은 30대의 산전수전을 다 겪는 베테랑 기자의 냄새를 품기는 암여우 같은 이미지였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이들의 이미지는 조금 다르다. 소설 속의 자비어는 당당한 투사라기 보다는 햄릿에 가까운 연약하고 고뇌를 멈추지 못하는 캐릭터이다. 무엇보다 샬롯은 귀여움과 젊음의 무모함을 두루 갖춘 신출내기 기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조합은 드라마의 속의 조합보다 휠씬 호소력이 있게 받아들여진다. -어쩌면 이것은 첩보물에 대한 향수는 이미 뇌리에서 사라질 정도로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지난 봄 <타인의 삶>에서 본 게르트의 파란 눈망울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소설 속의 캐릭터들은 연약하기에 그들이 목숨을 걸고 내리는 결정과 행동들에서 사건의 심각함을 엿볼 수 있다. 제임스 본드가 매 영화마다 해결해야하는 직업적 문제가 아닌 삶 전부를 걸어야 하는 숙명으로 말이다.

이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역사의 흐름은 심지어 병렬 역사 속이라 하여도 수렴될 수 밖에 없으며, 역사적 책임은 ‘만약’이란 가정에도 불구하고 면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윤리적, 도덕적 책임은 정치적 결단 이전에 휴머니즘과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절대적 제약 조건이다. 결국 이의 위반은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해결할 수 없는 해결 불능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런 양심의 가책은 강박적인 행동이나 광기의 표출로 표면화 된다. 결코 지울 수 없는 스스로에게만 보이는 카인의 낙인이 되어 말이다. 애당초 살해당한 자나 살해한 자나 모두 이 낙인에 종속된 노예들이었을 뿐이다.

P.S.
이야기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기 전 샬롯이 자비어를 뒤에서 안을 때의 묘사는 간결하지만, 그 동작이 의미하는 암시를 읽어내는 순간의 재미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오묘하다. 마지막으로 독일과 스위스의 국경을 통과해 다리를 건너는 샬롯에게 부는 바람이 소설에서는 왜 그리 상쾌한지 모르겠다. 한 남자의 죽음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