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

주제 사라마구의 『도플갱어』는 노대가의 범작이라는 평판이 딱 어울릴만한 소설이다. 짜릿함을 자극하는 극적인 맛과 섬세한 구성은 아니지만 무난함 가운데에서 이야기는 손쉽게 풀려나간다. 백점 만점에 83점 정도의 소설. 두고두고 회자될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의 재미란 것에 중독된 독자에게는 아껴두고 먹고 싶은 간식 정도랄까? 하지만 이런 평판도 다 사마라구라는 노대가의 소설이기에 조금은 평가절하된 것이다. 아마 다른 이가 이 소설의 작가라면 조금 더 후한 평가를 얻었을 이 소설을 박대하는 이유는 그가 사라마구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실 『도플갱어』의 도입부는 조금 지루하다. 도입부의 전개는 중반부터 후반부까지 이어지는 전개에 비하자면 하품 나올 정도로 느리고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왜 이렇게 더딘가 싶을 정도로 별무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도플갱어의 설정은 영화 속에서도 보았고 다른 삼류 소설 속에서도 읽었다. 하지만 주인공의 반응은 뭐랄까 ‘신경 쇠약 직전의 여자’ 같다 싶은 무언가가 있었다. 물론 도플갱어에 대한 느릿한 추적과 그 속에서 겪는 주인공의 불안감. 역사교사로서 평범하기만 했던 주인공의 삶에 나타난 놀라운 발견이 일으키는 파문은 정말 느릿한 어조 속에 차분하게 진행된다. 물론 여기까지 읽었을 무렵 난 뒷이야기를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지루한 파문 속에 예민했던 내 신경은 바스러져 버렸고 그 당시 내가 원했던 것은 이 만성적인 과민 신경의 상태에서 주인공이 벗어나는 것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말을 놓고 생각해 보면 놀라운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도플갱어라는 소재를 상상하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 봤을 완벽한 바꿔치기의 삶을 어째서 난 떠올리지 못했던 것일까? 만약 내가 누군가의 도플갱어라면 상대의 삶 속에 침입해서 그의 아내를, 그의 연인을 아무도 모르게 한번쯤 농락해보게 될 것이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왜 내 머릿속에 울려 펴지지 않았는지 의아할 뿐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 상대에 대한 가장 치명적인 복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내가 착하고 바른 사람이라서 그런 생각을 떠올릴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고약한 거짓말일 테지만 수없이 튀어나오는 강력한 신호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외면한 내면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찌되었건 『도플갱어』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 소설이 본질적으로 사랑에 대한 소설이고, 운명에 관한 소설이며 나약함에 대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도플갱어라는 장치는 그저 이런 주제를 효과적으로 살리기 위한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 혼란 속에서 주인공은 극적이지는 않지만 평범한 ‘진짜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인간의 나약함과 운명의 변덕 앞에서 부셔지게 되며 주인공은 또 다른 Gyges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지만 칸달루스왕의 아내이자 주인공이 살아야만 하는 새로운 운명의 아내는 전작에서 의사의 그려진 의사의 아내의 분신이다. 그리고 소설의 맨 마지막장에 이르러서야 주인공은 운명의 희롱에 맞서 싸울 각오를 다지게 된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이 소설에서 역사교사인 주인공을 제외하면 나머지 캐릭터는 고정된 주인공에 종속된 캐릭터라는 점이다. 중요한 인물은 희한한 이름을 지닌 주인공 한 사람뿐이며 이 남자의 심리와 상태 변화가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여겨 보아야할 부분이다. 사실 모든 이야기는 반복된다. 도플갱어라는 삼류 소설에나 등장할 소재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플라톤의 Gyges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라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두 도플갱어에게 마지막으로 정체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맡는 소설적 장치가 반지라는 사실은 이런 느낌에 보다 강한 확신을 준다. 사라마구판 Gyges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