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페리움

서구의 북컬렉터들이 바라는 이상이 있다면 -물론 엄청난 비용이 소모되는 인큐내뷸러나 아메리카나 같은 것을 제외하고- 최상의 것은 저자 자신이 소유했던 수택본이나 원고를 손에 넣는 것이고 다음은 초판에 담긴 서명본을 얻는 것이다. 다행히 이런 기이한 취미는 우리네 문화와는 너무 이질적이어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지만 내 손에도 우연하게 저자 서명본 초판이 놓였던 적이 있다.

런던을 여행하는 동안 들린 워터스톤즈의 낭독회에서 본 로버트 해리스는 날카로운 눈초리를 빼면 마른 체격의 평범한 중년 남자였다. 주름진 얼굴을 가진 가진 이 작가를 좋아하게 될 것이란 사실을 당시에는 몰랐으나 그가 내가 흥미롭게 본 <이니그마>와 <파더랜드>의 원작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그가 낭독하는 책을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실 키케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새로운 시대극이라는 광고 문구보다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훌쩍 넘긴 어느 페이지에서 발견한 공화정 로마의 원로원이었다. 마치 현대의 리포터가 현장을 취재한 듯 펼쳐지는 공화정 로마를 상징하는 부조리와 치열한 경쟁의 장을 다룬 한 막 앞에서 작가의 특별한 능력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공화정 로마를 다룬 소설의 백미는 항상 콜린 맥컬러우의 『로마의 일인자』 시리즈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로버트 해리스의 『키케로 3부작』은 다른 의미의 백미가 될 것이 확실하다. 맥컬러우의 『로마의 일인자』가 캐릭터와 섬세한 묘사가 만들어 내는 인간의 본성의 치열한 장을 설명하고 있다면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은 정치 스릴러에 가깝다. 맥컬러우의 로마가 인간이기에 욕망하는 수많은 탐욕과 야망이 만들어 내는 향연이라면 로버트 해리스의 로마는 정치라는 경쟁의 장에 던져진 투쟁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이 경기장에서 키케로만큼이나 다양한 적을 가졌고, 험한 고초를 겪은 인물은 없으리라.

『임페리움』은 키케로의 삶의 단계를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베레스에 대한 기소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정치인 키레로의 본격적인 투쟁이 펼쳐질 무대를 마련한 집정관 당선과 함께 마무리 짓는다. 그 사이 몇년 동안 독자는 아무런 정치적 입지를 갖지 못한 이 지방 출신의 이 로마인이 어떻게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고, 포퓰라리스의 이익을 대변자였다가 얼마나 극적으로 옵티마테스로 변신을 했는지를 추적해 나간다. 키케로의 정치적 신념이 무엇이었다고 이 책은 규명하지 않지만 최소한『임페리움』 안에서 저자는 그 역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간 한 사람의 로마인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세대가 내전을 통해 소멸한 다음 로마의 주인이 된 지방출신의 새로운 로마인들이 만들어 낸 허울뿐인 공화국의 주인공들과 그가 얼마만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를 이야기 이곳 저곳에 뿌려두고 있다.

물론 이야기는 이제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카탈리나 탄핵을 통해 보여줄 키케로의 활약과 공화국의 프린켑스로써 삼두에 맞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할 그의 정치적 역경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그의 신념과 용기가 어떻게 드러날지는 아직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이제 겨우 기나긴 이야기의 서두만 풀어놓고 있음에도 이 소설의 재미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M_P.S.|less..|하지만, 번역에 대해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의 내용조차 이해하지 못하면서 문장을 옮기는 시도란 얼마나 무모한 용기인가? 그리고 이 번역자의 후기마다 끊이지 않는 386 타령은 이제 들어주기조차 지겹다. 무의미한 타령을 늘어놓은 여유가 있으면 지명과 관제, 소설이 묘사하는 시대에 대한 이해력이나 키웠으면 좋겠다.
_M#]

고스트라이터 (the Ghost)

토니 블레어의 커리커쳐는 환하다 못해 고약하게 느껴질 정도로 커다란 웃음을 특징 삼아 그려진다. 존 메이저의 고루한 표정과 대비되는 이 웃음은 한때 블레어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기도 했다. 게다가 블레어의 젊고 매력적이며 배우처럼 잘 생긴 외모는 새로운 영국과 제3의 길로 상징되는 그의 정치적 행보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블레어는 90년대 노동당의 노선을 중도좌파로 옮기면서 보수당의 지배를 끝낸 극적인 승리의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PMship의 후반부는 테러와의 전쟁으로 점철되었고 그가 이룩한 업적에도 오늘날 그는 피로한 인상으로 퇴진을 종용받은 채 서서히 권력 기반을 잃어갔던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토니 블레어에 대한 이야기로 서두를 여는 까닭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영국의 전임 수상 애덤스 랭이 바로 토니 블레어를 모델로 그려진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퇴임 이후 어느 투자은행의 사외이사로 영입되었다든지, 미국이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을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부시 행정부의 충실한 추종자 역할을 자임한 것은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유사성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토니 블레어와 닮은꼴의 인물인 애덤스 랭을 통해 로버트 해리스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가디언에 실린 로버트 해리스와의 인터뷰는 작가의 의도를 읽는 가장 좋은 참고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기실 그가 주목한 부분은 대필작가와 의뢰인 사이의 관계였다. 의뢰인조차 제대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어떤 사실을 이끌어내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옮기는 사람. 진실을 끌어내는 것을 임무로 삼지만 결코 진짜배기 진실에 다가설 수 없는 한계 앞에 좌절할 수밖에 없는 직업. 사람들이 읽고자 하는 거짓을 진실에 가깝게 보이도록 포장하는 전문가. 비록 토니 블레어가 부시 행정부의 대외 정책에서 미국조차 알지 못하는 진실을 옹호했던 부시의 가장 훌륭한 대필작가라는 조소가 덧붙긴 했지만
기실 그가 가장 주목하는 대목은 진실의 문제였다. (이 소설은 블레어의 퇴임에 맞추어 발빠르게 출간되었다. 따라서 독자는 블레어에 대한 폴스태프식 캐리커쳐와 스릴러의 플롯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소설에서 대필작가인 주인공은 전범재판소에 기소될 위기에 처할 전임 수상의 자서전을 대필해주기로 하면서 음모에 휩쓸리게 된다. 하지만, 그가 진실이라 믿었던 것은, 그가 추적한 진실은 실상 그가 보고 싶었던 진실이 그려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고, 읽고 싶어하는 진실과는 조금 다르지만, 결코 확연하게 다르지는 않은 거짓에 가까운 진실이 이 소설에서 다루는 문제의 핵심이다. 진실의 문제를 제외하면 친미적인 성향의 랭의 정책, CIA판 옥스퍼드 링은 사건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기법상의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은 토니 블레어에 대한 문학적 초상이자 문학적 초상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모욕의 향연이다. 소설 속의 전임 수상 애덤스 랭을 전범으로 만들어 버리는 소설에서만 가능한 복수는 그가 신문지상을 통해 수없이 비난했던 블레어의 전쟁 지지에 대한 가장 강력한 조소다. 게다가 누구나 셰리 블레어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편보다 더 똑똑한 여자’인 루스 랭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대필작가와 벌어지는 전임 수상의 아내와의 정사는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악한 정치적 조크인 것은 분명하다.

얼마 전 로버트 해리스는 한 기고문에서 토니 블레어를 ‘짙은 안개가 낀 구불구불한 길에서 지도 없이도 버스를 몰 수 있는 운전사’로 묘사했다. 오늘날 영국이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현실은 기실 고든 브라운의 문제가 아니라 그 길로 버스를 몰아넣은 블레어의 잘못인 동시에 후임을 생각하지 않고 블레어에 대한 염증으로 그를 축출한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점이다. 아무도 블레어의 복귀를 바라지는 않지만, 블레어만큼 능숙한 운전사는 없었다는 사실을 로버트 해리스는 부정하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는 비운에 암살당하는 여편네에게 끌려다니는 오쟁이진 남편이자 덜떨어진 연극배우 같은 정치가로 묘사하고 있긴 해도 말이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진실의 문제는 대필작가와 의뢰인, 독자로 이루어지는 꼭짓점 사이의 진실만이 아니다. 소설의 배경으로 묘사된 21세기의 현실은 소설이 그려낼 수 있는 또 하나의 진실을 독자 앞에 내던진다. 블룸즈버리에서 걸어오던 주인공이 토트넘 코트 부근에 테러 때문에 유스턴을 돌아 메릴리본을 거쳐 패팅턴에 이르렀다가 그의 집인 노팅힐로 접어들었다는 간략한 단락은 실제로 피가 튀는 폭력보다 더 진지한 불편함을 독자에게 호소한다. 이슬람 도축업자들과 모스크가 보이는 지역에 사는 주인공에게 테러는 단순한 폭력일 뿐만 아니라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등장한 빅브라더스의 현실판이다.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박물관에 들어가기 위해 금속탐지기를 거쳐야 하는 세상은 폭력의 위협 앞에 질식해 버린 감옥 속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구두를 벗고 허리띠를 풀어야 하는 세상에서 이런 블랙 유머야말로 이 소설이 지닌 진짜 강점이다.

아크엔젤 (Archangel)

최근의 러시아는 지난 20년의 시간 가운데 가장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피아와 어린 창녀들로 묘사되었던 러시아의 거리는 이제 크렘린을 지배하는 새로운 짜르인 푸틴의의 통제 아래 나토에 대한 위력 시위도 하고, 자원을 무기로 서방 세계를 압박하며 러시아 혁명 이후의 산업화이래 가장 빠른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 시절 내가 본 러시아는 80년대 중반 소련의 경제 붕괴와 함께 개방이 시작되었으며, 실패한 쿠데타와 테러, 마피아의 유혈 사태로 얼룩진 혼란 그 자체였는데 불과 7년 사이에 러시아는 몰라보게 변해 버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소설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이런 변화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런 변화의 양상을 정확하게 집어내지 못하면 99년에 출간된 이 소설의 의미를 정확하게 집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공산주의의 거대한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 20년의 연구로 세계 대전에서의 스탈린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심도 있게 논의되었고, 전쟁의 사상자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스탈린의 독재로 죽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99년 시점에서 이 모든 사실은 조금 덜 불명확했으며 역사적 사실을 되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러시아는 어둠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었으며 두마에서 공산당은 어느 사이엔가 유력한 지위를 되찾았다. 차라리 가난하고 헐벗었을 만 정 마음 편했던 옛날에 대한 향수 역시 무시 못할 정도로 강했다. 정치는 불안했고, 엘친의 임기는 끝나가고 있었으며 ,구제국의 몰락이래 9.11 사태가 벌어지기 이전 가장 테러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도시는 다름 아닌 모스크바였다. 이 소설이 쓰이고 출간된 시기가 바로 이 즈음이다.

사실 이 소설은 전작만큼이나 빼어나지는 않다. 전작에서 볼 수 있었던 독창적이고 섬세한 묘사는 이 책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의 다른 히스토리 팩션보다 한층 농도 짙은 위트를 보여주고 있다. 유연한 캐릭터라이징과 사건 전개의 명쾌함은 분명히 전작보다 못하지만 작가가 걱정하고 준엄하게 비웃는 현실에 대한 통찰만큼은 전작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오늘날의 세계가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스탈린이 남겨 놓은 유산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패배한 독재자로서 히틀러는 대체 역사 속에서도 홀로코스트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없었지만 성공한 독재자로서의 스탈린은 비록 사후 그에 대한 평가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음에도 뚜렷하게 자신의 발자취를 남겨 놓고 있다. 냉전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USSR의 해체로 끝을 맺었지만 스탈린이 그린 거대한 지도를 따라 찢긴 민족과 나라들은 세계 도처에 넘친다. 무덤조차 갖지 못한 채 화장 당한 히틀러가 남긴 것들 대부분이 사죄 속에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것과 다르게 스탈린은 과거의 유령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유령인 셈이다. 게다가 스탈린이 남긴 롤 모델의 계승자들은 여전히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가 실험한 공포와 폭력, 죽음에 의한 지배는 그만큼 거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여전히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로버트 해리스는 스탈린의 비밀 노트를 통해 이런 현실 일부분을 그려내고자 했다. 스탈린은 관에 못질하는 것만으로 잊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닌 햄릿의 부왕처럼 부유하는 유령이라는 사실과 그 유령은 언제든지 되살아날 수 있는 망령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역사상 가장 잔혹한 독재자의 살아 있는 분신을 통해 그는 스탈린의 롤 모델을 계승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웃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러시아의 행보가 어떤 방향으로 선회할지는 백군과 적군, 적군과 연합군의 전쟁처럼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려보고자 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는 플루크 혹은 켈소로 불리는 옥스브리지 출신의 소련 전문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과연 얼마나 순수한지, 또 진실 그 자체가 얼마나 믿을만 한 것인지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히스토리 팩션 삼부작의 완성으로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말끔한 마무리가 아닐까 싶다.

P.S.
소설에서 등장하는 아크엔젤이란 도시는 실제로는 아르한겔스크를 뜻한다. 드비나 강 하류에 있는 가장 큰 북극권 항구 가운데 하나다. 덧붙여 이 소설의 역자 후기는 386세대들의 전형적인 역사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가끔 느끼는 사실인데 어째서 이 세대들은 후기가 소품의 위치에 머무르는 것이 독자에게 기분 좋은 끝마무리를 선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지 한심하다. 아울러 이런 후기는 원작자의 의도를 독자에게 왜곡하여 전달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타인의 개인적인 정치적 감회를, 더구나 역자의 그것을 읽고자 소설을 읽는 사람은 없다. 현실 문제에 대한 진단이나 노파심의 피력은 자비 출판을 애용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니그마 (Enigma)

냉전이 조금만 더 늦게 끝났더라면, 정확하게는 스파이물의 전성시대가 조금 더 오랜 시간 지속하었다면 미래 직업에 대한 내 몽상에는 암호해독가라는 직업이 하나쯤 추가되었을지도 모른다. 스파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아니지만 언제나 빠질 수 없는 역할. 그가 없다면 주인공은 그저 몸으로 뛰어다니는 흥신소 직원이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나를 유쾌하게 만들었던가? 거만한 표정으로 주인공이 듣기에는 너무나 진부하지만 나로서는 고혹적이기만 한 이야기를 한참이나 읊어대다가 ‘아! 그것 말이세’하며 간단하게 해독한 암호문을 건네는 캐릭터들은 때로는 전형적이지만 주인공이 감내해야만 하는 운명이라는 점에서 항상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하지만, 스파이 소설 속에 묘사된 그들의 모습이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공개된 암호해독가들의 모습은 박식한 노년의 학자라기보다는 초조함에 쫓기는 창백한 안색을 지닌 체크무늬 자켓 차림의 사내들이다. 그리고 이런 그들이 치른 그들만의 전쟁을 새로운 시각으로 되살린 것이 바로 로버트 해리스의 『이니그마』다.

원스턴 처칠은 대서양 전쟁을 그 의미가 그래프로만 보여지는 가장 중대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전쟁이라고 묘사했다. 평시 영국 경제가 필요 5500만 톤의 수입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해상 운송 전쟁. 전시체계에서 4400만 톤의 수입물량을 맞추기 위한 노력과 이를 좌절시키기 위해 전개된 독일 잠수정과의 전쟁이 역사에 기록된 대서양 전쟁이다. 『이니그마』에서는 이 대서양 전쟁의 한 복판에 블레칠리 파크로 불리는 통신부호암호학교의 샌님들을 등장시킨다. 상선단을 U보트의 공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독일측 이니그마를 해독해야 하는 일단의 옥스브리지 출신에 수학자들이 사건의 중심에 놓여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독일 측 U-보트를 막기 위한 전개와 함께 사라진 수수께끼의 연인을 찾는 어느 암호해독가의 이야기가 같은 축선에서 동시에 전개된다.

사실 이 소설 역시 원작보다 영화를 먼저 본 경우에 속한다. 2003년의 어느 아침 케이블채널을 돌리다가 케이트 윈슬릿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보기 시작한 이 영화가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이야기의 중반이 넘어서였다. 주인공 제리코의 사라진 옛 연인인 클레어 역을 맡은 새프런 버로우즈의 아름다움에 둥근 안경테를 낀 헤스터 역할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던 케이트 윈슬릿의 연기가 다소나마 빛이 바랬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케이블채널에서 아주 가끔 만날 수 있는 보석 같은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아니 복잡한 이니그마의 시스템과 해독 과정을 설명하는 일 없이 시각적 묘사만으로 관객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숨겨진 대서양 전쟁의 일면을 이끌어 냈다는 점은 영화나 소설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엔딩은 소설과 영화가 조금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의 마무리에 비해 영화의 마무리가 촌스럽긴 해도 한결 사랑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 소설은(영화는) 총탄이 난무하는 전쟁과는 거리가 멀다. 전선과 멀리 떨어진 후방에서 벌어지는 전선만큼 중요한 또 다른 전쟁을 다룬 이야기다. 이들이 치른 전쟁 역시 잠 못 드는 밤과 지켜야 하지만 지키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로 점철된 기나긴 여정이다. 등화관제로 어둠에 휩싸인 도시와 안개 낀 풍광을 뒤로하고 전시배급제 아래에서 헐벗은 채 싸웠던 이들의 무훈은 오랫동안 다양한 정치적, 군사적 이유로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암묵적으로 두 가지 위선을 비웃고 있다. 하나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스탈린을 두려워하는 처칠이 내린 결정이고 다른 하나는 제2차세계대전에 대한 미국중심적인 혹은 야전 중심적인 시각이다. 루즈벨트가 처칠과 함께 독일 우선 원칙에 동의했지만 펜타곤의 장군들이 유럽보다 태평양 전쟁에 주력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아울러 1943년은 유럽의 전쟁 주도권을 영국이 미국에게 넘긴 시기와 일치한다. 많은 희생을 치렀으면서도 들러리가 되어버린 상황에 대한 표현하지 못할 불쾌함. 먼 훗날의 관점으로 보자면 유럽 전쟁에서 수행한 미군의 역할은 과대평가 되었고, 전쟁의 실질적인 승패는 이미 야전이 아닌 전략물자와 후방 전쟁에서 이미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항상 전쟁의 극적인 순간만을 묘사하는 펜과 영상에 대한 조소다.

하지만, 이보다 한층 심각한 블랙 유머는 1943년 시점에서 처칠이 스탈린의 유럽의 제2전선을 열어달라는 요구 때문에 상당히 곤혹스런 처지에 처해 있었다는 사실이 기초한다. 소설에서 묘사된 사라진 비밀 메세지 역시 이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전쟁 후 스탈린에 굴복한 처칠이 폴란드 문제나, 공산권에서 탈출한 USSR 병사들의 송환 문제에서 얼마나 무력한 모습을 보였는지 소설은 직접적으로 거론하고 있지는 않지만 영국식 블랙 유머로 그 역설적인 상황을 풍자하고 있는 셈이다.

폼페이

잘 쓰인 소설이 항상 재미난 법은 없는 모양이다. 사라진 도시를 섬세하게 눈앞에 그려내는 필치. 실제와 상상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세부 묘사. 한편으로는 전형적이지만 너무나 전형적이어서 되려 애정을 쏟게 되는 인물들. 빠른 템포와 나무랄데 없는 사건 전개. 분명한 의도. 숭고함을 돋보이게 하는 욕망. 사실, 이 정도면 소설이 재미없게 느껴질 이유는 없다 해도 무방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하지만, 대가의 반열에 오르기까지는 좀 두고 봐야겠지만 히스토리 팩션에서는 수준급의 작가로 불리는 사람의 소설로는 그래도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이다. 딱 집어서 비판할 여지는 없지만 교과서처럼 잘 쓰인 모범 답안을 읽는 기분이라 어딘가 재미가 덜하다고 해야 할까? 100% 실력을 발휘하는 대신 가벼운 마음으로 80% 정도만 연습 삼아 써본 습작의 느낌이다. 아무래도 이 소설은 『당신들의 조국』, 『이니그마』, 『아크엔젤』로 대표되는 히스토리 팩션의 새장을 연 작가가 키케로 트릴로지로 불릴 고대 로마의 히스토리 팩션을 쓰고자 연습삼아 쓴 습작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여기에서 얻은 자신감을 토대로 본격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던지.

그렇지 않다면야 폼페이를 살아가고 있던 인물들에게 이리 흐릿한 색채를 입힌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충분히 다채로운 성격의 인물을 창조해낼 수 있는 작가가 그려낸 인물은 입체적이라기보다는 모자이크 속의 인물화처럼 또렷한 형체를 가지고 있긴 해도 색채만큼은 흐릿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인물들이 지닌 색채는 수도관이 지닌 이미지보다 못하다.

근래들어 지하철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책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로버트 해리스의 다른 역작에 비하자면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거장에 의해 영상으로 옮겨져 올 한 해를 소란스럽게 만들 것임이 분명한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