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품평

사람마다 제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천성에 가까운 고약한 버릇이 하나씩 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이 천성에 가까운 버릇이 거친 말버릇이 되기도 하고, 고약한 술버릇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 경우에는 무엇일까? 사실 열거해 보자면 내 고약한 버릇이 한두 개로 끝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반드시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제약이 가해진다면 까까머리 중학생 시기부터 지금까지 친구들과 길을 함께 할 때면 단 한번도 빼먹지 않은 그 일을 골라야 할 것 같다.

장황한 서두에도 불구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 일은 이른바 ‘미인품평’이다. 좋게 말하면 서로의 미적 감각을 뽐내는 치열한 경연의 장이고, 냉정하게 말하면 겁 많은 사내 녀석들의 시답잖은 입담에 불과한 이 버릇이 내가 혐오해 마지 않으면서도 도무지 빠져 나올 수 없는 수렁이 된 까닭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알 수 없다. 그저 내가 아는 사실이라고는 언제부터인가 ‘품평회’에 끼어들어 말하는 나를 저주하고 욕하는 자성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한 번 뱉은 말을 거둘 수는 없다. 한 번 끼어든 노름판에서는 쉬이 빠져나올 수 없듯이 내가 빠진 수렁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깊게 나를 빨아들인다. 설령 그것이 스스로를 천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해도 말이다.

물론 아주 가끔은 ‘의견 거절’이라는 표현으로 이런 난처한 상황에서 빠져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의견 거절’ 뒤에 숨겨진 말들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저렇게 보여도 민낯은 아마 다를 꺼야’ ‘저 몽롱한 안개 눈썹 덕분에 눈에 총명함이 없네’ ‘간장 녹이는 살품!’ ‘가선 진 목 때문에 실격’ ‘잠이 사이를 진지하게 탐구해 볼만 하다’ 때로 아주 가끔은 나 스스로에게 ‘넌 지금 여신의 개입 이전에 갈라테아를 바라보는 피그말리온일 뿐이야’하고 세뇌를 걸기도 한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진지하게 이 못된 버릇을 내 몸에서 지워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하는 행동이 본질적으로는 익명이란 그림자 속에 숨어 거칠고 치졸한 말을 쏟아내는 쏟아 내는 무리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같은 진지한 깨달음 때문은 아니다. 나도 모르게 발견한 거울에 스스로를 비추어 보며 내쉬는 어떤 이의 한숨 때문이다. 며칠 전 학교를 배회하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획 돌린 채 친구에게 밑도 끝도 없는 말을 쏟아낸 적이 있다. ‘도대체 술을 얼마나 쏟아 부었으면 그 미색이 저렇게 된 거야? 그 놈팡이는 제 놈이 하는 짓이 무엇인지 나 알까?’ ‘뭐가 누군데 그래’ ‘3시. 작년 봄 내가 열광했던’

차를 사러 들어간 매점에서 다시 그녀와 마주친 나는 표정 없는 눈으로 무심한 듯 한데를 바라봤다. 그리고 시선을 돌렸을 때 커다란 전신 거울에 비친 스스로를 사슴 같은 눈으로 바라보며 내쉬는 한숨을 목격했다. 그 순간에나 그녀가 우리의 대화를 전부 들었음을 내가 의도적으로 그녀를 처음 본 사람처럼 모른 척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부지불식간에 깨달을 수 있었다. 잘못을 인정하고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는 사실이 흔들리지 않는 진리로 다가왔다. 지독하게 운이 없는 하루라고 웃어 넘기기에는 그 한숨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그 날 이후였던 것 같다. ‘미인품평회’에서 쏟아냈던 수많은 말들이 형틀이 되어 내 주리를 틀어대기 시작한 즈음은. 실상 형틀이 자극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마음의 짐이다. 무언가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는데도 불구하고 누구한테도 책망 받지 않는 상태야말로 극악하지도, 그렇다고 지선하지도 않은 인간으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형벌이다.

‘미인 품평’ 없이 친구들과 함께 하는 산책은 어딘지 허전하다. ‘미인 품평’ 마저 할 수 없다면 갑갑하게 막힌 내 삶은 소소한 일탈 마저 허락되지 않는 극도로 무미 건조한 것이 되고 만다. ‘미인 품평’ 이 없다면 무슨 핑계로 귀에서 이어피스를 뽑고,  책에서 눈을 떼야 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만 두어야 할 때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는 사실을 믿어보는 것을 빼고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