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해석

붉은 글씨로『살인의 해석』이라고 인쇄된 표지를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따온 또 하나의 오마주라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하는 나는 스스로 보기에도 꽤 한심스럽다. 더욱이 『interpretation of murder』라는 원제를 보고서야 『interpretation of dream』과의 유사성을 파악할 수 있었던 그 때늦음을 떠올리고 있노라면 얼굴이 다 화끈거릴 정도이다. 거만한 포즈로 ‘기억력은 다양한 정보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상호 접촉시키며 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 지 고작 이틀만의 일이기에 낯 뜨거움은 도를 넘어간다.

하지만 아직 고백할 것이 더 남았다. ‘노라 액튼’이란 이름을 보면서도 소설의 끝까지 문제의 ‘도라’를 기억해 내지 못한 내 기억 장애다. 2003년 봄을 마지막으로 ‘도라’를 언급하는 일은 나에게 금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꿈의 해석』을 집어 들며 남의 이야기를 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은 어떤 이의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서야 그녀의 경험이 또 다른 ‘도라’의 이야기이며 현실에서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기 힘든 엄청난 사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도라’라는 낱말에 나도 모르게 잠금쇠를 걸어버렸다. 세상에는 기억한다는 사실 마저도 숨기는 편이 나은 사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살인의 해석』을 읽는 동안 난 까닭 모를 기분에 빠져 있었다. 책장을 넘기며 ‘노라’의 베일이 벗겨지면서 연원을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마음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노라’의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실제 내 머릿속을 떠다닌 이미지는 금발이 아니라 검은 머리를 지닌 흐릿한 실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혼란은 소설의 추리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심란한 마음에 평소라면 놓치지 않았을 뉘앙스의 차이를 구분하는데 실패한다가 마케터에게 속아 주된 흐름과 곁가지 흐름을 반대로 생각하는 오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과 무관하게 『살인의 해석』은 꽤 괜찮은 추리 소설이다. 서스펜스가 떨어지고 빠른 장면 전환에 추리의 흐름이 불연속적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약간은 불공정한 내러티브가 버티고 있음에도 이 소설이 서스펜스와 본격적인 추리가 난무하는 소설이 되었다면 되려 이 소설은 품격이 떨어지는 공항 소설로 치부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가 소설을 쓴 동기를 명확하게 헤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최소한 그가 쓰려고 마음먹은 것은 어쭙잖은 스릴러가 아니다. 그가 묘사하고자 했던 뉴욕은 놀랄 만큼 생동감이 넘치며 여러 전기를 통해 알려진 그 시대 뉴욕의 삶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추리소설에 서스펜스는 분명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때로는 서스펜스 덕분에 잃는 효과도 있는 법이다. 서스펜스와 생생한 현장감 가운데 하나를 고르자면 최소한 『살인의 해석』에서 만큼은 현장감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게다가 햄릿에 대한 해설과 이를 통한 결말의 암시, 융과 프로이트의 긴장 관계까지 더해진 이 소설은 흐뭇한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좋은 선물과 같다.

이 소설은 한편으로 편이하면서도 배경에 흐르는 기조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baronial age’와 ‘diplomatic age’간의 과도기에 일어난 격정적인 반란에 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반란과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예리한 설정(인물과 배경 모두 예리하다) 앞에서 독자가 봐야 할 것은 극적 긴장감이 아니라 일견 모순되면서도 그 모순을 모순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의식 구조와 사람들이다. 이 소설의 백미는 추리가 아니라 인물과 시대에 있다. 어쭙잖은 주인공들이 짧게 짧게 등장하여 정신 없이 벌이는 추리가 아니라 한 시대를 묘사하는 정수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소설 속에서 프로이트가 남긴 마지막 언급과 ‘코르세어號’와 극장에서 벌어졌던 당대의 추문들을 비교해보면 제드 러벤펠트가 목적했던 그림이 보다 명백하게 들어난다. 이보다 더 진짜 같은 픽션이 어디 있을까?

P.S.
개인적으로 종범을 추정하기는 했으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동기를 밝혀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작가가 초반의 불공정한 내러티브 이후 수없이 조잘댄 살인의 역증명이 가능하다는 힌트를 난 가볍게 보았던 것 같았다. 종범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동기에 대한 힌트가 있었더라면 보다 쉽게 추리를 완성시킬 수 있었을 텐데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이 소설이 지닌 추리의 묘미가 일목요연한 사건의 전개가 아니라 나선 계단을 내려가면서 목격하게 되는 다양한 군상과 가능성에 대한 암시라면 그 아쉬움은 절반으로 줄어들 듯 싶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배치한 더미들이 궁극적으로는 이야기에 꼭 필요한 고유한 목적을 가진 캐릭터라는 사실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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