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투스

몇 해 전 앤서니 애버릿의 키케로를 읽을 때 난 공화국의 현실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공화국의 이상에는 동의했던 한 남자를 소설처럼 극적으로 그려낸 것에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그가 지적하는 사실들이, 작가가 사실로부터 그려내는 거대한 형상에 이성은 침묵했고 그가 그려낸 키케로의 비장함에 숙연함을 느끼기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과연 그가 그려낸 것에 경탄한 내가 과연 옳았던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문가가 쓴 연구서들이 줄기차게 번역되어 나오면서 아마추어 역사가가 쓴 로마사를 바라보는 시선에 감탄 대신 냉혹함이 서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통찰력이 때로는 뻔뻔한 표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생긴 비웃음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샤임의 로마혁명사를 읽은 사람이라면 앤서니 에버릿이 그린 아우구스투스에 다소간의 실망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우구스투스라는 인물이 지니는 잔인함과 비겁함, 불굴의 의지력을 섬세하게 그려낸 점이나, 노련한 정치가로 성장하기 전의 젊은 도살자의 모습은 꽤 재미있더라도 말이다. 그가 그려내는 것들은 공화국이란 치장을 뒤집어쓴 황제정의 어두운 일면이나, 상식이지만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로마사의 상식을 변주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그레이브스의 소설적 영향력을 완벽하게 종속되어 있다. 리비아와 티베리우스로 대표되는 구공화정 주도 세력의 힘을 인정하는 것과 리비아를 악녀로 그리는 것은 별개다. 그녀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것은 너무나 단편적이어서 역사적 사실로 어떤 해석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천년 전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를 지탱하던 주요 파벌의 숨겨진 알력을 속속들이 알 수 없다. 파벌 사이의 경쟁은 있었겠지만 애버릿이 그린 바대로의 공화정 말기와 다를 바 없는 일인자가 되기 위한 소리 없는 내전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자리바꿈이었는지 우리로서는 추정할 뿐 추론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로마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 어떤 책보다도 악티움에서 안토니우스를 격파하기 이전의 옥타비아누스가 겪었던 험난한 젊은 모험가로서의 십 년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