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탄 세 남자

불과 보름 전까지도 『자전거를 탄 세 남자』에 대한 내 평은 한 계절을 풍미할 수 있는 베스트셀러는 될 수 있으나 고전으로 살아남을 만큼의 문학적 가치는 없다는 것이었다. 『 보트 위의 세 남자』가 불멸의 고전이 될 수 있는 요소를 두루 가지고 있는 반면 『자전거를 탄 세 남자』의 과장된 풍자는 되려 소설의 완성미를 떨어뜨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하지만, 고립무원의 설국에서 보낸 설 연휴 동안 소설을 읽어가는 관점에 변화가 생겼다. 자전거를 타고 떠난 세 남자의 여행이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는 세 남자의 숨겨진 이유에 더욱 끌렸기 때문이다. 『보트 위의 세 남자』가 삶에 찌들지 않은 젊은 남자들의 유쾌한 소극이라면 『자전거를 탄 세 남자』는 적당히 삶에 찌들고, 포기를 배운 중년 남자들의 탈출극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진짜 재미를 느끼려면 그들의 좌충우돌 여행보다는 그들이 내뱉어 내는 대화와 에피소드 뒤에 숨겨진 불안감에 동감을 표하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탬즈강을 여행하는 동안 우리가 볼 수 있었던 나른하면서도 유쾌한 세 남자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얼마나 변했는지 발견하는 것은 이 두 권의 소설을 통해서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깨달음이다. 세 남자만큼이나 멋진 캐릭터였던 몽모랑시는 더이상 짖지 않고, 젊음이 주는 특권을 누리던 게으른 사내들은 누군가의 남편이, 혹은 나이 먹은 노총각이 되었다.

이들의 삶에서 느긋함에 대한 열정은 사라졌고, 그 대신 삶에 대한 투덜거림이, 불안감을 숨기고자 과장하는 버릇이 들어섰다. 가볍게 아페리티프를 마신 듯한 흥쾌함을 앗아간 대신 시간이 채워넣은 것은 빈정거림과 자기파괴적 성향의 유머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나도 이제 슬슬 이들의 처지에 동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탬즈강을 여행하는 유쾌한 세 남자를 상상하며 이들의 여행에 동참했던 난 사라지고 글래스에 폭탄을 제조하며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는 현재의 모습이 남았다. 보드카를 연속으로 몇 잔 들이켠 듯 혀가 꼬이고 얼굴에 핏줄이 솟아오른 남자들에게 남은 일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처럼.

보트 위의 세 남자

이 소설의 존재를 안 것은 스무 살 무렵의 일이지만 실제로 그 소설을 인용한 것을 본 것은 코니 윌리스의 『개는 말 할 것도 없고』를 읽는 동안이다.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 주인공은 우연히 ‘보트 위의 세 남자와 한 마리 강아지’를 조우하게 되는데 코니 윌리스는 이 소설에서『보트 위의 세 남자』가 지닌 명랑하면서도 경쾌한 분위기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마도 그때부터 이 소설을 읽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게 된듯 싶다. 해적판으로 100쇄나 찍어냈다는 전대미문의 소설. 영국문학의 정수로써 평가받지는 못하지만(비평가들은 대체로 이 작품에 냉소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가장 가벼운 소설을 읽지 못한다면 내 看書癡歷에 가장 미진한 부분이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세 남자와 한 마리 강아지가 떠나는 탬즈강의 보트 여행을 따라가는 일은 즐겁기 짝이 없다. 준비만으로 충분히 부산스런 런던의 하숙집, 갑문, 강둑을 지나치는 세 남자가 벌이는 게으름의 대결. 처량하게 내리는 빗속에서 벌어지는 대탈주. 사실 경쾌한 유머만으로 재미를 느끼기는 어렵다. 유머는 이야기를 돋보이게 하는 소재가 될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캐릭터에서 비롯된 유머와 시의적절한 위트는 독자의 시선을 붙잡기에는 충분하지만, 독자에게 만족감을 전달하긴 어렵다.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사람들의 기호와 만족감을 느끼는 순간은 그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채로운 요소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보트 위의 세 남자』는 이런 주장에 부합되는 가장 좋은 실례다. 유머와 위트가 돋보이기 때문에 일견 스탠딩 코메디의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와 탬즈강 보트 여행 동안 지나치는 지역들에 대한 생생한 서술, 인간성에 대한 장난기 넘치면서도 따스한 통찰은 소설의 저변에서 이야기에 풍미를 더한다. 웃음을 이어가되 지나치지 않고, 여정을 진척시키되 지리하지 않다. 한꺼번에 몰아서 읽기에는 쉽게 배탈이 날 것 같은 책이지만 한 장(章) 한 장씩 읽다 보면 입가에 멀리는 만족스러운 달콤한 웃음을 쉬이 보게 된다.

눈에 띄는 유사성이 없음에도『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이나 독일동화집에 실린 슈라라펜란트 혹은 코케인의 이야기를 읽으며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꼈던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봄이 좋을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