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난 새책을 사랑한다.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새책을 읽는 것은 내 은밀한 소유욕을 채워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때로 타인의 손때가 묻은 헌책에도 새책 못지않은 즐거움이 남아 있을 때가 있다. 그것은 책 속에 남아 있는 흔적을 통해 누군가의 흥분과 긴장감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극도의 흥분 상태와 긴장감은 손가락 끝 마디를 습하게 만드는 법이고, 책장에는 이런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는 동안 내가 발견한 재미도 바로 이런 흔적에서 비롯되었다. 얼굴조차 모르는 타인의 흥분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을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가능하다 하더라도 비정상적인 범주에 속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책이란 매개체를 통해서, 책장 끝에 남은 진한 손가락 자국을 통해서 낯선이의 감정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어째서 그녀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소년의 기억에 남아 있는 한나가 스타킹을 신는 장면에 매료되었을까? 또 나와는 다르게 알몸으로 등에 다가선 한나보다도 책을 읽어주기를 청하는 그들의 의식에 더 매료되었을까? 수영장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진 한나의 뒷모습을 부정한 소년의 절규에 왜 그들은 눈물을 흘렸을까? 한나의 방에 남아 있는 사진 한 장이 왜 그렇게 그녀들을 슬프게 만들었을까?

독후감이나, 독서회의 점잖은 대화와 달리 책에는 문장으로 숨길 수 없는 진짜배기 감정이 남아 있을 때가 있다. 재미없는 부분을 재빨리 넘기는 손가락의 투표는 발의 투표만큼이나 정직하고, 소설의 백미를 알려주는 지표 역시 더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엄격한 평가의 기준을 들이대자면 『책 읽어주는 남자』는 우리가 수없이 접한 소년과 중년 여자의 사랑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는 이미 <아름다운 청춘>을 통해 이 장르에 대한 혐오감을 희석시켰고, 책을 읽어준다는 행위가 지니는 독특한 매력을 제외하면 이 책은 권터 그라스를 비롯한 47그룹의 아류라는 인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잘못이겠는가? 시간을 뛰어넘는 고전이 되지 못하더라도 우리에게 사랑에 대하여, 부끄러움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였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의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