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실수

무엇이 좋은 추리소설의 기준이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십인십색일 것이 틀림없다. 혹자는 추리의 공정성을, 다른 이는 속임수의 독창성을 어떤 이들은 추리의 난해함을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꼽는다. 여기에 문학적 완성도를 덧붙이는 이들도 있고, 캐릭터의 매력을 첨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각양각색의 기준들보다 중요한 것은 오랜 경험이 말해주는 감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비록 객관적이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실 『치명적 실수』는 추리의 공정성, 추리의 난해함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긴 어렵다. 추리 과정에서 제공받는 단서가 추리에 충분하다고 보기에는 보편성이 떨어지고, 범행에 사용된 총기가 리볼버가 아닌 피스톨일 경우에만 작가가 사용한 트릭이 온전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소설은 추리소설 애호가들에게는 조금 불쾌한 면도 없지 않다. 추리소설에서 사용되는 전형적인 미끼 캐릭터가 진짜 범인인 경우에 속하기 때문이다. 오랜 경험으로 볼 때 아무리 완벽한 동기를 가진 캐릭터라도 너무 노골적으로 암시를 뿌린다면 반전을 위한 미끼일 가능성이 큰데 이 소설에서는 반전이 없다는 사실이 되려 반전인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소설은 충분히 읽어볼 만한 아름다움이 있다. 반유대주의를 내세웠던 칼 뤼거가 빈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회공학자이자 직업정치인 가운데 하나인 히틀러에게 영향을 미쳤던 그 시대를, 겉으로는 평온하고 아름답지만 이미 정신은 병들대로 병든 벨 에포크의 빈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로 대표되는 새로운 빈의 지성과 전기치료에만 매달려 있는 그루거의 대비, 슈베르트와 베토벤이 남긴 문화적 유산과 말러, 클림트로 대표되는 전통을 터부시하는 새로운 성향의 예술가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영지주의와 무신론자들의 범람이 묘사되고, 절제 이면에는 문란한 성생활과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남성과 억압된 여성의 관계, 유곽으로 대표되는 퇴폐적 성향의 빈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살인의 해석』을 읽으면서 열광했던 이유는 근대와 현대의 여명의 혼란기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치명적 실수』역시 다르지 않다.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문화가 지닌 저력을 여실히 보여줬던 시대의 이면에서는 퇴폐와 어리석음, 용서할 수 없는 반문명이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추리와 심리 분석이라는 형태를 빌려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