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바로크 회화전

<르네상스-바로크 회화걸작전>이란 전시회의 정식 명칭에도 불구하고 난 <르네상스-매너리즘> 전시회라는 명칭으로 이 전시회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엄격하게 말해 바로크의 전성기 시대의 작품보다는 후기 르네상스와 매너리즘의 시대 그리고 초창기 바로크의 작품들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립미술관의 야수파 전시회와 비교해 볼 때 value/cost의 만족 수준은 떨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시회를 찾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한 점의 유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value/cost>1인 조건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벨기에를 지도 위에 만들어 내고 앤트워프가 차지하던 국제교역항으로서의 위상을 암스테르담에게 넘긴 역사를 만들어낸 인물의 초상과 마주하는 경험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스페인 보병군단이라는 그 시대 최고의 전쟁 기계에 관한 전문가가 되기 이전 나이 많은 소년에 불과하던 파르마 공작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담긴 어색한 표정과 길고 희끄무레한 손이 담긴 화폭과 마주하는 색다른 경험을 어디서 할 수 있을까?

70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퇴색해 버린 템페라화의 색채를 바라보며 700년 전의 원작을 재구성하는 일은 즐겁다. 카라바지오가 미술사에 미친 영향력을 확인하는 일이라든지 원경으로 갈수록 흐릿해져 종국에는 가벼운 붓 터치로 변해버린 인물들을 발견하는 일과 과장된 운동성이 만들어내는 균형 감각을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감상들은 도록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런 즐거움은 유화를 실제로 볼 때에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틴토레토 스타일의 걸작을 감상하고 조선 회화의 전신성에나 상대를 찾아볼 수 있을 인물의 표정이 지니는 힘을 발견하는 일 역시 실제 작품을 볼 때에만 가능하다. 틴토레토 후기 작품에서 혹평 받은 붓 터치 스타일이 얼마나 조잡한지 깨닫는 일 역시 도록으로는 불가능하다. 오백 년 된 템페라화의 생생한 색채에 경의를 표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다빈치의 드로잉을 보고 그가 창조해 낸 걸작들의 흔적들을 찾는 일은 어떤 수수께끼보다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전시회에서 가장 즐거운 과정은 그림을 통해 이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새로운 화가와 조우하는 과정이다. 이전에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화가를 발견하고 그의 대가다움을 인식하는 과정이야말로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전시회의 꽃이다. 사람들이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 기둥에 몸을 기대고 하얀 벽 위에 떠있는 인물과 사건을 바라보며 혼자 망상을 즐기는 일을 다른 어디에서 할 수 있단 말인가?

레판토 해전이 일어나기 전에 그려졌음이 분명한 그림 앞에 서서 틴토레토 앞에 포즈를 잡고 있을 노제독에게 말을 건네보는 것은 단순히 그림을 감상하는 범주를 넘어간다. 그림 속에는 예술적 아름다움도 있지만 한 인간의 삶에 녹아있고, 문학적 열정과 이야기 그리고 그 시대의 가치관이 담겨 있으며 이것들은 오늘날 우리가 역사라 부르는 것들이 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