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

개인적인 기록에 의하면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2004년 여름의 일이고, 번역의 조악함에 원서로 읽어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2005년 봄의 일이며, 실제로 책을 산 시기는 2007년 2월의 일이란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읽기는 삼일절 다음날이 되어서야 끝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실 이 책에 대한 너무나 놀라운 서평들 때문에 이 책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멀고 험난한 길로 돌아가야만 했다. 어째서 아무도 나에게 주인공이 행동장애를 앓고 있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을까? 어쩌면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서평을 통해 얻은 정보들을 잊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에 쫓기는 사이 역서가 아닌 원서로 꼭 읽어야 했던 까닭 역시 망각의 저편 어딘가로 내던져 버린 것이 분명하다. 편집증적일 정도로 정확하고, 컴퓨터의 언어처럼 단조로우며 변화가 거의 없는 문장들. 이런 문장을 통해 재빨리 주인공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한 나의 멍청함은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다. A-level 테스트를 밖은 사람이 여태껏 아무도 없었다는 문장을 읽고서야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나의 어수룩함에 절로 얼굴이 화끈거린다.

하지만, 이 책에 받쳐진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불편한 소설이다. 나로서는 정신 장애를 앓는 한 소년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고, 그의 섬세하다 못해 끔직할 지경인 관찰력과 기억력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 폭탄이 도시를 걸어다닌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애당초 나처럼 사악한 사람에게는 이런 상황 자체를 유머러스하게 수용할 능력이 없다. 그렇기에 스위스 아미 나이프로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한 소년의 모험이 이리도 끔찍한 것이 아닐까?  끔찍할 정도로 사실적이어서 되려 현실 같지 않은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은 주인공이 지금껏 내가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유형의 사람이기 아닐까? (혹은 파악하지 못했거나, 너무 어려서 그런 장애 자체를 몰랐거나)

사실 이 소설은 나로서는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는 책이다. 작가의 의도를 모르지는 않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바와, 그가 시사하고자 하는바, 그가 그리고자 했던 삶 모두가 나로서는 가벼운 마음으로 태도를 결정할 수 없는 것뿐이다. 엉킬 때로 엉켜버린 고르디우스의 매듭 같은 이 난제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름조차 모를 신에게 현재의 나에 대해 약간의 감사를 표하고 결코 이런 삶이 나를 찾지 않도록 기원을 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