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엔젤 (Archangel)

최근의 러시아는 지난 20년의 시간 가운데 가장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피아와 어린 창녀들로 묘사되었던 러시아의 거리는 이제 크렘린을 지배하는 새로운 짜르인 푸틴의의 통제 아래 나토에 대한 위력 시위도 하고, 자원을 무기로 서방 세계를 압박하며 러시아 혁명 이후의 산업화이래 가장 빠른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 시절 내가 본 러시아는 80년대 중반 소련의 경제 붕괴와 함께 개방이 시작되었으며, 실패한 쿠데타와 테러, 마피아의 유혈 사태로 얼룩진 혼란 그 자체였는데 불과 7년 사이에 러시아는 몰라보게 변해 버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소설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이런 변화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런 변화의 양상을 정확하게 집어내지 못하면 99년에 출간된 이 소설의 의미를 정확하게 집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공산주의의 거대한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 20년의 연구로 세계 대전에서의 스탈린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심도 있게 논의되었고, 전쟁의 사상자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스탈린의 독재로 죽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99년 시점에서 이 모든 사실은 조금 덜 불명확했으며 역사적 사실을 되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러시아는 어둠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었으며 두마에서 공산당은 어느 사이엔가 유력한 지위를 되찾았다. 차라리 가난하고 헐벗었을 만 정 마음 편했던 옛날에 대한 향수 역시 무시 못할 정도로 강했다. 정치는 불안했고, 엘친의 임기는 끝나가고 있었으며 ,구제국의 몰락이래 9.11 사태가 벌어지기 이전 가장 테러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도시는 다름 아닌 모스크바였다. 이 소설이 쓰이고 출간된 시기가 바로 이 즈음이다.

사실 이 소설은 전작만큼이나 빼어나지는 않다. 전작에서 볼 수 있었던 독창적이고 섬세한 묘사는 이 책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의 다른 히스토리 팩션보다 한층 농도 짙은 위트를 보여주고 있다. 유연한 캐릭터라이징과 사건 전개의 명쾌함은 분명히 전작보다 못하지만 작가가 걱정하고 준엄하게 비웃는 현실에 대한 통찰만큼은 전작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오늘날의 세계가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스탈린이 남겨 놓은 유산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패배한 독재자로서 히틀러는 대체 역사 속에서도 홀로코스트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없었지만 성공한 독재자로서의 스탈린은 비록 사후 그에 대한 평가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음에도 뚜렷하게 자신의 발자취를 남겨 놓고 있다. 냉전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USSR의 해체로 끝을 맺었지만 스탈린이 그린 거대한 지도를 따라 찢긴 민족과 나라들은 세계 도처에 넘친다. 무덤조차 갖지 못한 채 화장 당한 히틀러가 남긴 것들 대부분이 사죄 속에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것과 다르게 스탈린은 과거의 유령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유령인 셈이다. 게다가 스탈린이 남긴 롤 모델의 계승자들은 여전히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가 실험한 공포와 폭력, 죽음에 의한 지배는 그만큼 거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여전히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로버트 해리스는 스탈린의 비밀 노트를 통해 이런 현실 일부분을 그려내고자 했다. 스탈린은 관에 못질하는 것만으로 잊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닌 햄릿의 부왕처럼 부유하는 유령이라는 사실과 그 유령은 언제든지 되살아날 수 있는 망령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역사상 가장 잔혹한 독재자의 살아 있는 분신을 통해 그는 스탈린의 롤 모델을 계승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웃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러시아의 행보가 어떤 방향으로 선회할지는 백군과 적군, 적군과 연합군의 전쟁처럼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려보고자 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는 플루크 혹은 켈소로 불리는 옥스브리지 출신의 소련 전문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과연 얼마나 순수한지, 또 진실 그 자체가 얼마나 믿을만 한 것인지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히스토리 팩션 삼부작의 완성으로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말끔한 마무리가 아닐까 싶다.

P.S.
소설에서 등장하는 아크엔젤이란 도시는 실제로는 아르한겔스크를 뜻한다. 드비나 강 하류에 있는 가장 큰 북극권 항구 가운데 하나다. 덧붙여 이 소설의 역자 후기는 386세대들의 전형적인 역사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가끔 느끼는 사실인데 어째서 이 세대들은 후기가 소품의 위치에 머무르는 것이 독자에게 기분 좋은 끝마무리를 선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지 한심하다. 아울러 이런 후기는 원작자의 의도를 독자에게 왜곡하여 전달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타인의 개인적인 정치적 감회를, 더구나 역자의 그것을 읽고자 소설을 읽는 사람은 없다. 현실 문제에 대한 진단이나 노파심의 피력은 자비 출판을 애용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