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자의 아내

다양한 소설들이 지닌 수많은 테마가운데에서도 내가 가장 즐겨 읽는 테마는 바로 시간 여행이다. 다른 어떤 테마보다도 시간 여행이 지니는 복잡성과 아이러니를 지켜보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세간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는 말할 것도 없고>를 유쾌한 소설로 기억하며 <제인 에어 납치사건>이 묘한 매력을 지닌 소설이라고 평가한다.  결국 나는 세평이나 리뷰를 참고하는 일 없이 <시간 여행자의 아내>를 집어 들었다. -심지어 <타임라인>도 나에게는 몹쓸 소설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 여행이라는 테마에 익숙한 나에게도 <시간여행자의 아내>는 좀 낯선 소설이다. 이유를 분석해 보자면 난 아직 미혼이고,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으며, 한 사람을 평생 사랑한다는 개념을 공상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의지를 구현할 수 없는 고정된 미래를 혐오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여자들이 느끼는 욕구와 사랑이 낯설다. 내가 문학적으로 상상해 낼 수 있는 사랑이란 대부분 남성 중심의 에고를 담고 있는 수컷 작가들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여자들은 특별한 전환을 거치지 않는 이상 수동적인 표현자이며 고착된 사회의 부산물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내가 교육받은 언어로 표현해 내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짜임새나 완성도가 높은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이 안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세계가 있다. -그렇다 난 러브 스토리보다는 제레미 시겔의 책이 더 좋다-

사실 냉혹하게 표현하자면 이 책은 그리 잘된 소설이 아니다. 단언하건대 이 책의 운명은 평범보다 조금 뛰어난 소설들이 걷는 길이 될 것이다. 영화로 사람들에게 더욱 널리 알려지고 텔레비전에서 재탕이 되겠지만 십 년쯤 뒤에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작가의 이름과 원작을 기억할 것이 분명하다. 이 소설은 본질적으로 문학이 아니라 잘 짜인 스토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당 못할 후회가 밀려오는 것은 아니다. 혹평하자면 시간 여행이라는 껍질을 뒤집어 쓴 HR에 불과할지도 모르고 <키다리 아저씨>와 <앤>의 시간 여행 버전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밉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름답지도 않은 소녀가 견딜 수 없이 귀엽게 느껴지는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