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마법을 쓴다

돌이켜 보면 황망한 노릇이지만 만화책에 빠져 있거나 여자 아이들의 고무줄을 끊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평범했을 무렵 나를 매료시킨 것은 『4차원의 세계』라는 전집이었다. 영매부터 부두, 저주와 흡혈 습관, 사라진 문명과 외계인까지 이 전집은 기담 르뽀르타쥐의 결정판이라고 부를만한 것이었는데 이 전집을 읽는 동안 되려 나는 자연스럽게 이런 종류의 책들을 무시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시기 유행하던 문고판 미스터리 시리즈의 최종판을 읽고 나니 오히려 흥미가 사라졌다고 할까?

그렇기에 조금 더 나이가 들어 <X-file>과 함께 불기 시작한 신비주의에 조소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세로쓰기에다가 국한문혼용체로 인쇄된 책 속에 그런 내용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던 사람들은 어려운 책도 쉽게 읽어내는 영민한 학생이라 나를 추켜세웠지만 돌이켜 보면 그 전집은 내 세계관을 보수적으로 만들었으며 어린 시절 누릴 수 있는 커다란 재미 가운데 하나를 앗아 버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실 이런 고백 아닌 고백으로 글을 여는 이유는 『아내가 마법을 쓴다』를 읽는 동안 내가 얼마나 이 장르를 부당하게 취급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장르에서 문학적 감수성이라든지, 아이러니와 이미지의 세련된 형상화를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난 겨울 로버트 실버버그의 『두개골의 서』를 읽는 동안 이런 편견이 조금이나마 호의적으로 선회하긴 했지만 결정적 단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내가 마법을 쓴다』앞에서는 지금까지의 내 믿음이 치명적인 오판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기실『아내가 마법을 쓴다』를 읽는 동안 내 머리속을 떠다닌 것은 사실 『메데이아』의 한 장면이었다. 메데이아가 이아손을 위해 벌인 일들을 나열하며 남편들이란 존재를 연인과 남자들이란 존재의 부조리함을 들어내는 순간에 느꼈던 문학적 긴장감이 소설을 읽는 내내 함께했다. 남성은 감성과 충동에 대비되는 이성과 합리를 강조하는 지배 구조를 통해 평화롭게 세상을 지배하던 여성으로부터 권력을 탈취했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려 한다는 이론 역시 함께 떠올랐다. 여신에서 남성의 부속물이 되어버린 신격들이 흔적들 역시 마음속을 배회했다. 하지만 정말로 진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바보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도록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여전히 예언자와 마법사, 그리고 주술사의 세계에 살고 있는 셈이다. 

세상의 절반에서 이성과 합리성을 강조하여 그들만의 게임에 열중하는 동안 세상의 또 다른 절반에서는 이성과 합리를 강조하지만 실상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바보들을 위한 진짜 위험한 경쟁이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매혹적이지 않다면 무엇이 매혹적일까?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최초의 주술사이자 마법사이며 예언자의 후예라는 말이 지니는 의미를 그 누가 이보다 재치 있게 그려낼 수 있을까? 게다가 장을 넘길 때마다 고조되는 소설의 호흡은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었다. 얇은 두께임에도 불구하고 쉬는 시간이 필요할 정도로 말이다. 미지의 존재와 낯선 상황이 가져다주는 공포감을 섬뜩할 정도로 그려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