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눈물

만화책 ‘히스토리에’가 나오지 않았다면 플루타르크의 ‘비교 열전’에서 세르토리우스와 짝으로 등장하는 에우메네스가 널리 알려졌을 것 같지는 않다. 배타적인 마케도니아 제국의 권력 구조에서 그리스인 서기에서 출발해 기병대장을 거쳐 장군이 된 사람. 조금 더 운명의 여신에게 총애를 받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했다면 조각나는 제국을 이어 붙었을 수도 있었을 사람. 그리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풍운아’라는 표현에 딱 적합한 인물. 그 시대 수많은 다른 인물들처럼 허상을 좇다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 불운한 천재. 물론 ‘히스토리에’는 이제 겨우 아홉 권이 나왔고, 이 속도로 가늠해보자면 20년쯤 지나야 에우메네스의  죽음에 이르게 될 것 같다.Untitled

사실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눈물’은 에우메네스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알렉산드로스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쪼개진 마케도니아 제국의 분열상을 묘사한 책이다. 하지만 불과 십여 년 동안 알렉산드로스의 장군들이 어떻게 제국을 갈라먹었는지, 또 그 과정에서 덧없이 사라진 인물들과 하루아침에 폐기된 제국의 유지를 보고 있노라면 그 극적 상황에 놀랄 수밖에 없다. 배신과 책략이 난무한다는 점에서 ‘쌍전’은 우스운 정도이고, 이 거대한 내전은 아수라장은 그 격렬함의 근원이 신념이 아닌 포장되지 않은 날 것의 권력욕이라는 점에서 세계사의 다른 내전과 궤를 달리한다.

저자는 알렉산드로스의 급사로 시작해 왕위를 가졌지만 통치에서 절처하게 배제당한 소년 알렉산드로스의 죽음으로 거대한 내전을 마무리한다. 죽음 이후에나 주어진 왕의 위엄에 어울리는 무덤에 대한 묘사는 아름답다. 무엇보다 훌륭한 점은 저자가 ‘비교 열전’ 곳곳에 흩어진 다양한 인물들을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에우메네스의 삶을 서술의 시간 축으로 삼아 마케도니아 본토, 그리스, 소아시아, 아시아, 이집트의 공간축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인물들의 갈등을 묘사하는 실력이 압도적이다.

‘히스토리에’ 덕분에 아마도 우리는 만화가의 상상력으로 복원된 에우메네스의 ‘왕궁일지’를 읽게 될지도 모른다. 이민족- 또는 열등한 그리스인-이라는 이유로 배척받는 에우메네스의 육성으로 그의 추구했던 진짜 목적을 듣게 될지도, 어쩌면 알렉산드로스의 비밀 유언이 이야기에 가미될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던 앞으로 20년 동안 작가가 머리를 싸매고 이야기를 그려나갈 동안 우리는 먼저 이 책을 읽으며 나름의 상상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맹목’의 정영목 선생의 번역은 훌륭하고,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 원정, 인도 원정을 위해서 후방에 남겨 둔 고집 센 노인들이 어떤 실력을 발휘해서 그의 제국을 산산조각냈는지를 음미해보는 재미도 풍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