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폴리오

농담으로도 가당찮은 이야기지만 만약 누군가 나에게 두 권의 책을 훔쳐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한다면 일말의 망설임 없이 셰익스피어의 폴리오와 켐스콧판 초서의 캔터베리이야기를 고를 것이 분명하다. 시장성과 환금성, 가치저장과 희소성 측면에서 이보다 나은 대안을 찾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 두 권보다 진기하고 소중한 책들도 많지만 온전하게 소유의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면서 투자가치를 지닌 책은 이 두 권이 유일하다.

그렇기에 영문학에 발 좀 적셨다는 사람들 모두는 벼룩시장에서 단돈 50펜스에 이 두 권을 거저 줍기를 꿈꾸고, 에코 같은 양반은 그의 마지막 소설에서 조부의 서재를 정리하다가 폴리오를 발견한다는 다소 뜬금 없는 희망을 나열한 것이 아닐까?

Interred with bones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책은 이런 셰익스피어의 폴리오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다. 제목 하나만으로 나 같은 인간의 구매욕구에 불을 지르기에는 충분하지만 폴리오는 이 소설에서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the Folio와  folio를 구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폴리오가 이 소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형편없다.

또 하나 구름잡는이야기를 더하자면 푸코의 추를 기점으로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성당기사단이나 프리메이슨 같은 비밀 결사가 팩트 소설의 주요 소재였다면 근래 영미권의 팩트 소설의 주요 소재는 셰익스피어로 바뀌지 않았나 싶다. 물론 스페인어권이나 독일어권에서 줄기차게 나오는 결사형 팩트 소설과 의도적인 차별화를 노린 것이 사실이나 그리 얄밉지는 않은 것이 독자로서의 내 심정이다. 문학사에서 이보다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 또 누가 있을까? 절대 풀리지 않을 진실이란 이야기꾼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작업 환경인가?

서론이 길었지만 이 소설 꽤 괜찮다. 문학적 가치나 아름다움을 지닌 소설은 아니지만 대학교양 이상으로 셰익스피어를 공부했다면 저자가 지닌 박식함에 놀랄 것이 분명하고, 손에 잡힐 듯한 생생한 현장감에, 글로브 극장과 와이즈너 도서관에 불을 지르는 대범한 상상력에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난 몇 년 사이 출간된 셰익스피어 관련 소설들의 완전판이라고 부르기에 추호도 손색이 없다. 유행처럼 번지는 미발견 원고에 대한 해석도 참신하고, 누가 진짜 셰익스피어인가에 대한 진실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도 유쾌하다. 추리소설로서의 플롯은 아쉽지만 셰익스피어를 주제로 이보다 근사하게 소설 한 편을 엮어내기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카르데니오>도 좋지만 <Love’s labour’s won>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서운함이 좀 남긴 해도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마케팅과 제목 선정은 정말 최악이다. 분권은 용서할 수 있어도 『Interred with bones 』란 원제를 무시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출판사의 횡포다. 그 덕에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에도 영향을 받았고, 무엇보다 소설 자체가 공항소설처럼 누추해졌다. 제목에 담긴 아이러니가 인물과 사건에 연결되면서 독자에게 전달하는 묵언의 메세지는 반짝거리는 표지와 잔뜩 기운 조잡한 말장난 사이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