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onement

이안 매큐언은 백 년쯤 뒤에는 영국 문학의 거장으로 문학사에 기록될 것이 분명한 사람이다. 근래의 그는 초기작에서 보여주었던 광기와 비정상에 대한 집요한 집중에서 벗어나 점차 인간적이고 폭이 넓은 시선을 소설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도리스 레싱에 이어 다음 노벨 문학상을 받을 가장 유력한 영국 작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기실 다른데 있다. 그의 소설 내포하고 있는 문제와 해결 방식이 지닌 의미에 무엇보다 크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실 이렇게 시작했지만 이 글을 소설을 위한 글은 아니다. 아쉽게도 난 이 소설의 서두밖에 읽지 못했다. 현대 영국 문학의 수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은 학생들을 위한 해설집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데 나로서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속죄』라는 제목으로 나온 번역본을 집어들기에는 이 작가에 대한 내 개인적인 기대감이 너무 컸다. 결국, 이런 저런 변명 덕분에 소설보다 영화를 먼저 본 몇 개 되지 않은 작품이 되어버렸다.

키이라 나이틀리와 『스타트 포 텐』으로 얼굴을 알리지 시작한 제임스 어보이가 공연한 이 영화는 꽤 흥미롭다. 우선 금기에 가까운 덩케르크의 철수를 화면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 지극히 세련된 표현 방식이 그렇다. 영화가 지닌 비극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은 관례에 어긋날 정도로 주인공 브로니가 세실리아와 로비의 침실을 바라보면서 구겨진 시트를 유심히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무례할 정도로 상대를 무시하는 그들의 키스를 보는 순간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굳이 마지막의 인터뷰가 아니더라도 이미 소설의 내용을 알고 있던 나로서는 그 과장이 지닌 슬픔에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 과장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강한 염원이 표현되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이 대목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소설의 전체적인 균형보다 감동과 속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재편하는 솜씨를 부린 영화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소설이 지닌 세부의 완전성 대신 절정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의 이완이 더 볼만하다. 다시 말해 13살 소녀였던 브로니가 이해할 수 있었던 이해의 한계와 소녀의 질투심, 감정이 거부되었을 때 소녀가 느끼는 감정의 극적인 변화. 아이가 아닌 한 사람의 존재로 인정받고 싶다는 어수룩한 생각이 낳은 태도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결국, 무지가 악마보다 무섭다라는 격언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그녀의 증언이 신빙성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되는 계급을 뛰어넘는 도전에 대한 처벌을 완곡하게 처리한 대목은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눈물 나는 속죄에 감동을 하게 될 것이다. 어설프게 무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본다면 서사구조의 복잡함(다시 말해 일목연하지 않다)이라는 문제점과 캐릭터의 묘사와 인과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마음이든 간에 분명한 사실 하나는 이 영화가 꽤 잘된 아름다운 영화라는 사실이다. 인물의 감정을 대변하는 듯 풍광 속을 흐르는 감정과 음악,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소화해낸 배우들. 뭐 이 정도면 두 시간이 시간 낭비는 아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