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고대사박물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2차세계대전

Inter arma silent leges라는 라틴어 문장은 만나는 매 순간 기이한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평온한 표정 뒤에 숨겨진 광기와 폭력을 이끌어 내는 주문이랄까? 극적인 무대장치를 통해 대중의 이성을 현혹할 수 있었던 선동정치가 혹은 사회공학자 겸 정치깡패들이 세계를 이끌던 시대의 순종적인 군중이 된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있어 불행은 저 문장을 통해 전쟁의 피해나 고통을 먼저 생각하는 선량한 면모가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이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역사를 통해 법이 침묵이 강요당하는 순간에는 이미 양심 따위를 지킬 여유가 없다는 것, 전쟁 기계의 부속품이 되어 살아남는 투쟁 외에는 어떤 선택지도 남아있지 않다는 깨달음은 얼마나 나를 망쳐놓았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서양고대사박물관(Warfare in the classical world)

고대를 다룬 수많은 역사서의 전투 기술은 다분히 문학적이다. 작가들이 묘사하는 것만으로 상황을 이해하기란 여의치 않다. 이 책은 이런 문제점에 대한 대안이다. 모든 전투를 개괄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복해서 읽다 보면 어느 전문가 못지않게 까다로운 어조로 잘못된 고증에 대한 비판 능력을 지닐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화려한 삽화다. 나처럼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으로서는 결코 머릿속으로 그려내지 못할 문헌상으로만 만날 수 있던 존재들과의 해후는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P.S. 장르소설을 긁적거리는 아이들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기도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The First World War: the war to end all wars)

Great War 혹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으로 불린 1차세계대전이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전쟁을 위한 서곡이었다는 사실을 오늘의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시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비록 일관된 전략 아래 수행되는 대전략의 부재에도 국지적인 각 전선의 규모의 합은 그 전시대까지 인류가 전쟁에 쏟아부은 모든 자원을 능가하는 규모였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이 책의 초점은 바로 여기에 맞추어져 있다. 현대적 관점에서 아예 벗어나지도 않지만 기술된 관점의 상당수는 당시 사람들이 지녔던 견해를 수용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무엇보다 다른 1차세계대전사에서 다루지 않았던 동부전선에 대한 고찰과 현대의 군사적 개념을 토대로 당시의 전략을 비판하지 않은 점은 후한 점수를 줄만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영연방군에 호의적인 서술에 호오를 드러낼 수도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그것 역시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였음을 밝혀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2차세계대전(The Second World War)

존 키건은 리처드 홈즈와 더불어 영국이 자랑하는 전쟁사가 중의 한 명이다. 그가 내놓은 저술의 범위는 14세기부터 21세기에 이르는 광범위한 시간대이지만 특히 그가 장기로 삼는 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이다. 그만큼 제2차 세계대전의 다양한 전장을 다룬 사가는 아직까지는 없다.

수많은 개인적 수기는 넘쳐나지만 개별 전선을 전문적으로 다룬 역사서는 턱없이 부족한 1차세계대전과 달리 제2차세계대전은 개별 전선을 다룬 책이나 제너럴십을 다룬 책은 넘쳐나지만 전쟁의 전방위를 조망한 책은 찾기 어려운 것이 실제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존 키건의 2차세계대전은 비록 태평양 전쟁을 가볍게 다루고, 유럽전쟁에 치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쳐도 유용성만큼은 후한 점수를 주기 충분하다. 영미의 전쟁위원회가 겪은 진통, USSR을 향한 히틀러의 돌격과 풍전등화와 같은 스탈린의 운명을 반전시킨 48시간, 무엇보다 태평양 전쟁의 당사자인 일본인이나 미국인이 아닌 영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태평양 전쟁의 양상과 해전이 아닌 해상력, 공군력과 결합한 해상력에 대한 이해 부족이 광대한 제국을 유지하던 마지막 숨결에 어떻게 치명적 일격을 가했는지를 고백한 글을 읽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전쟁은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지만 전쟁만큼 인간의 본성을,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의 물러날 수 없는 한 걸음을, 나약한 인간으로 이루어진 국가지휘부의 무모함과 부도덕성, 무책임함을 배우기 좋은 교재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순히 사실을 아는 것보다 더 남은 시사점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