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17살 때부터 어제에 이르는 그 긴 시간동안 가능하면 난 뮤지컬에 관하여 언급하는 것을 자제해왔던 것 같다. 한국에서 초연되기 시작한 수많은 공연들에 흥분하면서도 애써 초연한 척 굴었던 것 같다. 왜냐고? 정확한 이유같은 것은 시간의 흐름에 지워져 기억나지 않지만 뮤지컬의 대중화와 함께 매우 특별한 기호였던 뮤지컬 감상이 평범함의 굴레에 속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뮤지컬이 내 인지의 영역에 포섭된 97년경에는 아직 뮤지컬이 대중화되기 이전이고 요즘처럼 20대 여성들이 열광하는 하나의 문화적 트렌드로 정착되기 이전의 시점이다.

폴 오스터에 대한 언급이 주변에서 사라진 것처럼 snobbery한 경향을 지닌 나에게 대중화는 견고한 regime의 붕괴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비난하려는 의도에서 이런 서두를 쓰는 것은 아니다. 뭐랄까? 유명세와 대중화는 항상 타인에게 무언가 소중한 것을 빼앗긴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시오노 할머니가 공화정 로마에 대한 혼자만의 은밀한 소유욕을 박탈한 것처럼 2000년대 들어 관객 100만 시대에 접근한 뮤지컬 또한 그런 바람직하지 않은 박탈감을 선사했노라고 투정부려 보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다시 97년으로 돌아가서 누이의 입을 통해 전해들은 그 화려함에 매료된 나는 록뮤직을 들으며 반항적인 태도로 똘똘 뭉쳐있어야 할 그 시기에 뮤지컬 스코어를 들으며 시간을 보낸 듯 싶다. 친구들의 생일 선물로 주말 하루를 꼬박 받쳐 근사한 뮤지컬 테이프를 만들며 지겨운 십대를 어서 벗어나 건장한 청년의 모습으로 레스터 광장에 군집한 수많은 극장을 순례하는 방랑자가 되고 싶다고 되뇌였던 것 같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캐츠가 한국에서 초연되던 그 즈음에 티켓 가격과 공연의 질을 저울질 하던 나는 한국에서는 절대 뮤지컬을 보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는데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옹졸한데다가 분별이라고는 하나도 담기지 않은 다짐이 분명하다. 하지만 다짐은 결심이 되는 법이고 결심은 행동을 제약한다. 아니 그후의 삶이 나에게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옳다. 굳이 소소한 이유를 한 가지 더 들자면 절친한 나의 지기 모는 대학 신입생 시절 사모하던 처자와 ‘키스 미 케이트’를 보고 난 후에 채인 적이 있는데 그 사건이 나에게 영향을 미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 속으로 ‘뮤지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샤콘느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만큼 분별없는 짓이다’하고 되뇌였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제의 시작은 사실 순탄하지 않았다. 연휴를 포함한 토요일 저녁 공연의 티켓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난 오피셜 에이전트가 아닌 리셀러의 문을 노크했다. 전화기 한 대와 재털이, 현금 박스와 티켓이 담긴 작은 가죽 가방이 전부인 사무실의 문을 말이다. 한국에서의 나라면 절대 과세를 회피해서 얻는 수익에 일조하는 일을 피했겠지만 상황이 안좋았다. 아니 호기심이 작동했다는 것이 더 옳다. 뭐 그렇다고 내가 암표를 거래한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 만큼은 암표상이나 진배 없었다.

이곳의 시스템은 한국의 90년대 초반의 극장을 연상시킨다.(멀티플렉스 이전의 조직폭력배에 의해 운영되는 극장을 상상하면 된다) 촌평을 하자면 전혀 선진국답지 않다. 모든 시스템이 경제적 합리성에 의해 조직화되기 보다는 가능한 많은 단계를 거쳐 과세를 회피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한국의 티켓 가격이 상한이 정해진 네덜란드경매 방식에 의해 점차 가격이 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면 이곳은 경매 참가의 기탁금이 높은 상태에서 가격이 점차 오르는 보통의 경매 방식으로 가격이 결정된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암표가 아닌 이상 한국의 가격은 아무리 수요가 많아도 액면가 이상으로 상승할 수 없지만 이곳은 최적 가격의 하한은 정해져 있지만 수요에 따라 상한은 꽤 높게 형성될 수 있다. 사실 내가 구매한 표는 이미 발권된 취소표의 일종이었다. 한국에서라면 박스오피스에서 수수표를 떼고 취소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재판매되는 것이 주를 이루겠지만 이곳에서는 티켓 리셀러가 하나의 직업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어찌되었건 재패니즈가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표를 보내달라고 전화기에 말하는 리셀러의 담배 연기에 익숙해질 무렵 티켓이 도착했다. 리셀러가 나한테 언급한 어퍼 서클보다 좋은 자리에 위치한 스톨스의 자리였다. 너무 좋은 티켓을 가져와 손해를 봤다는 혼잣말이 이어졌찌만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속담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통하는 법이다.

무어씨가 예약한 자리는 스톨스의 2/3지점에 왼쪽 사이드로 시야 확보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고 나처럼 체격이 큰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선호하는 자리였다. 게다가 옆자리에는 소설에나 등장할 ‘100%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유럽인답지 않게 늘씬하고 예쁜 그녀 덕에 좌석을 여유롭게 쓴 것은 차제하고 사람들이 오갈 때마다 나를 향해 멋적게 웃어주는 웃음이 꽤나 시원스러웠다. 불어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이 또 다시 후회스러웠지만 한국에서 홀로 다닌 그 많은 공연에서는 한번도 누려보지 못한 행운에 내심 신바람이 났다.

오페라 글라스를 빌려달라는 속삭임이 귓볼에 닿을 때의 짜릿함과 왼팔을 통해 전해지는 포근함에 브레이크 타임에도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30초쯤 전방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리면 이내 눈이 마주치고 이방인들 끼리만 통하는 선량한 웃음이 우리 사이를 배회했는데 친구들 사이에 통하는 농담으로 치자면 ‘비포 선라이즈’를 찍을 절호의 찬스였다. 하지만 사람의 본바탕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이곳에서 매일 느끼게 되는 하나의 자각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보수적인 한국 남자임이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결국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레미제라블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은 CD를 들어보는 일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일은 힘들더라도 시간을 내어 레미제라블을 정독해 보는 일이다. 어려서 읽은 장발장이 아니라 두껍고 읽기 힘든 위고의 원작 소설을 말하는 것이다. 위고가 술회한 혁명의 끝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면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아도 생략의 묘와 진지한 연출 관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하이라이트 버전의 CD를 통해서 들었을 때 원작 소설에 비해 부족하다고 느껴지던 많은 빈 공간들이 뮤지컬에서는 매우 명확하게 묘사되는 것은 물론이고 중요성까지 부여받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의 짜릿함을 정확하게 설명하기란 지난한 일이다.

사실 나를 즐겁게 한 것은 나의 영원한 우상인 ‘에포닌’이었다. 소설에서부터 미친 듯이 빠져들었던 그 역할을 되새김하는 즐거움은 물론이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넘버인 ‘On my own’를 현장에서 듣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흥분때문에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Phantom of the opera를 뮤지컬의 수작으로 평가하지만 심장을 울리고 사랑이라는 난해한 테마에 사람들을 동조하게 만드는 힘은 레미제라블만 못하다.

무엇보다 이 뮤지컬의 압권은 ‘Drink with me’가 귓가에 스며들때 느껴지는 감정의 격랑이다. 티켓 가격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된 시점이, 두 번 세 번을 다시 반복해서 봐도 괜찮을 뮤지컬이라는 생각이 든 순간이 바로 이때였기 때문이다. 마리우스의 Empty chairs, Empty tables 역시 하이라이트 버전에서 느낄 수 없는 호소력을 지니고 있으며 자베르의 자살로 불리는 부분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개인적으로 평가하기에 내가 본 공연의 경우 성인 코제트를 연기한 배우를 제외하면 내가 가진 하이라이트 버전보다 더 나은 음색과 표현력을 보여준 공연이었고 장발장과, 자베르, 에포닌과 마리우스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는 기립 박수가 쏟아질 만큼 정말 빼어난 공연이었다. 누군가 뮤지컬에 대해 물을 때면, 혹은 스물 여섯을 지나간 가장 인상깊은 사건들을 회상할 때 반드시 생각날 그 어떤 것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