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와 불멸의 색채 화가들

언제부터인가 군중으로 붐비지 않는 전시회는 낯선 것이 되어 버렸다. 군중의 멈추지 않는 발걸음 소리에 언제부터 길들여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아이들과 녀석들의 모친 사이에서 벌어지는 악다구니도 흔쾌히 보아 넘길 수 있고. 그림을 만져보려는 아이들과 스태프들의 실랑이에도 익숙하며, 단체 관람 나온 여고생들이 누드화 앞에서 포즈를 잡으며 쓰러질 듯 웃는 기세나 계모임에나 어울릴 대화를 주고 받은 아주머니들의 부산스러움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앞 뒤에서 들려오는 ‘빨리’라는 의미를 지닌 문장들과 연인 앞에서 가방 끈 좀 살려보려는 사내들이 내뱉는 얄팍한 거짓말들과 작품을 앞에 두고 말하는 얼뜨기 유머만큼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결국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가벼운 신발과 편한 옷차림만큼이나 꼭 필요한 것이 전시회에 어울리는 음악이다. 아 한가지 더 체크할 항목이 있다. 도록을 구입할 생각이 있다면 전시회 마지막 5일을 노려야 한다. 거의 대부분의 전시회에서 마지막 5일 동안 도록과 포스터들을 30% 할인해 판매한다.

개강 둘째 날 ITT 클래스의 오리엔테이션을 불참하기로 마음먹고 서울시립미술관까지 가는 길은 무척이나 험난했다. 때마침 불거진 철도노조의 파업은 어깨 너비 공간의 감옥을 경험하게 만들었으며 등뒤에 딱 달라붙은 젊은 처자의 찌부러진 육신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내려 덕수궁의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서 마음은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갔다. 지하철에서 고르기로 했던 마음 먹었던 음악 선곡도 실패했고, 가방과 옷차림까지 무거웠지만 야수파와의 만남은 이내 나를 흥분으로 밀어 넣었다.

미술사에서 야수파는 하나의 조류나 아카데믹한 유파로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된 흐름이 아니라 섬광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 움직임이며 유파의 창시자로 불릴 만한 작가들이 말년에 가서는 그들 자신을 야수파로 구분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초반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기로에 서 있던 화가들이 그려낸 ‘마지막 구상’은 강렬한 색채를 자랑한다. 시선을 가득 채우는 그 강렬한 색채에 관해서, 빛이 투영되는 사물을 점령한 색채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언어 양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에서 특징적이었던 것은 단순히 야수파 시기의 작품들 만이 아니라 야수파에 속한 화가들의 발전 단계를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이 폭넓게 전시되었다는 사실이다. 후기 인상파의 영향 아래에서 어느 순간 추상에 근접할 정도로 급변하는, 그럼에도 끝까지 추상을 거부한 화가들의 전통과 남 프랑스의 따스한 색감은 정말이지 강렬했다.

더구나 마티즈의 드로잉과 세잔의 영향이 풍부하게 느껴지는 유화 작품을 발견하게 된 것은 매우 값진 경험이었다. 촉망 받는 인상파의 젊은 화가에서 20세기 미술의 거장으로 거듭나는 과정과 병마가 강요한 탐구심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친구들과 소위 문화 생활이라 부르는 일련의 행동 패턴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는 말을 하곤 한다. 우리에게 호기심은 있을지 모르지만 전문가가 되기 위한 시간과 재원이 우리에게는 없다. 결국 아마추어로써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작품의 손짓을 거부하지 않는 모범적인 수용자 정도다.

하지만 콘서트 홀에 울리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화랑의 벽에 걸려진 유화 한 점을 보고 있노라면 글로 쓰여진 백마디 설명보다 더 많은 앎과 감정들이 밀려 온다. 예술은 책을 통해 공부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책보다 한 번의 경험이 더 많은 것들을 설명한다. 이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없는 시간을 쪼개 인파를 헤치고 작품 앞에 서며 나름의 신성한 의식을 치른다. 누군가로부터 잘난 척한다는 근거 없는 비난을 받거나 감상적인 사내라는 꼬리표를 다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