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타임스

과거를 바라보는 내 시각에는 일관성이 없었다. 때로는 구조주의와 결정론에 따라, 때로는 한 인간의 자유의지가 역사에 미친 영향력을 중심으로 과거를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영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가야만 하는 미약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그려내는 절망이란 드라마의 장엄함에 매료되기도 했다. 이름 높은 타인의 시선에 쉽게 끌렸고, 실체적 진실보다 미사여구로 포장된 사변적 논의의 세계에 몰입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더 이상 이른바 정치철학이라 부를 만한 사상이 만들어 낸 정의에 입각한 해석에 끌리지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정치철학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정의와 역사란 인과의 거울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정의는 사뭇 다르다. 정치철학이 부르짖는 정의의 대부분은 공허한 문구 안에 담긴 프로파간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이어지다 보면 말과 문자로 이루어진 바벨탑에 불과한 이른바 ‘진지한 논의’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모던타임스』는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요란한 프로파간다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역사적 진실을 여과 없이 펼쳐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와 거짓 믿음이란 의심스런 안개 저편에 보이는 진실은 소름끼치도록 잔혹하며 어리석은 인간군상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준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모던타임스』를 아우를 수 있는 서평을 쓰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출판사의 홍보문구나 역자의 후기를 앵무새처럼 반복하지 않으려면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아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격동의 20세기’란 말처럼 지난 세기가 만들어 낸 생각들과 사건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현재진행형이다. 결국, 나에게 남은 선택이란 기껏해야 이렇게 변죽을 울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좌파 저널리스트에서 보수주의 역사가로 변신한 폴 존슨은 그가 지닌 냉소적 태도 때문에 일급 역사가임에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가는 아니다. 그가 지적하는 진실이 때로는 불편하고, 불쾌하기 때문이다. 폴 존슨은 말랑말랑하고 따듯한 시선으로 솜사탕 같은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는다. 대신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폭력과 광기, 개인의 권력욕, 특정 집단의 이기주의와 인간의 허약한 지성과 정신이 만들어 낸 파괴와 살육의 처참한 역사다. 더욱이 그는 빈틈없는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실체적 진실에 대한 끝없는 추적과 실존하는 힘에 대한 인정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사고체계 안에 언어가 만들어내는 환상과 지식인들의 공론이 설 자리는 없다. 그렇기에 『모던타임스』에 담긴 사건들은 우리가 부정하고자 노력하는 20세기의 결함이며 사람들이 핏대를 세우고 논쟁하는 정의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돌이켜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물론 폴 존슨도 완벽하게 탈정치사상적인 것은 아니다. 그는 개인주의와 자유의지에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좌파의 견해에 따르면 보수반동이라 부를만한 사항에 대해서 가족주의가 전체주의에 대한 해법이며, 보수반동을 통해 획득한 성과가 공론에 그친 이상주의 보다 더욱 실질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안정을 선사했음을 설파한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핵심은 지식인들과 직업정치가들, 사회공학자들이 만들어낸 유토피아를 가장한 디스토피아에 희생된 사람들에 위한 우울한 조곡이며, 상대주의적 세계가 만들어 낸 불합리와 불의에 쉽게 타협하고 무너지는 인간 본성의 나약함에 대한 경종이다.